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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기적 Aug 25. 2024

분노의 시기

공포의 13호

13호는 유일한 1인실 병동이었다. 1인실 비용이 비싸서 극히 드물게 VIP환자가 사용하거나 대부분은 격리 중인 환자가 자리를 채울 때가 많다. 격리라 하면 1인실을 사용해야만 하는 접촉주의 감염균 VRE, CRE 환자들인데 보통 병원 생활을 오래 한 장기 환자들일 때가 많다.


트레이닝 때부터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힘든 환자가 있었다. 독립 후 혼자 그 환자를 보는 나이트 근무 때였다. 모든 바이탈이 비정상적이었다. HR가 떠서 인턴을 불러 portable EKG를 찍고 나니 BT가 뜨고 BP가 떨어졌다. 새벽시간 담당 주치의였던 인턴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의사의 처방이나 지시 없이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사한테 노티를 해야 하는 일인데 담당 의사마저 연락이 두절된 상태.


신규였던 나는 비정상적인 환자의 상태에 안절부절못하면서 선임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임 간호사 선생님께서 담당 의사가 연락을 안 받으면 다른 당직 의사한테라도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과를 보는 당직 의사인 레지던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환자의 상태를 노티 하자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환자가 그 상태인데 왜 자기한테라도 노티를 안 했냐는 꾸중과 화뿐이었다. 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화까지 받아주려니 설움이 북받쳤다.


노티 후 lab과 검사 처방이 한가득 났고 또다시 일을 하기 위해 그 환자를 찾아갔다. 혈당을 재니 저혈당 상태였고 urine 검사를 하려니 소변에 경결들이 생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인 나는 경험치와 능력이 부족해 이러한 상황에서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에게는 너무 벅찬 상황들이었었다. 환자가 사용하는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병원에서 흘린 첫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려 시뻘게진 눈이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 얼른 추스르고 일을 해야 했다. 환자의 저혈당 상태를 알리니 선임 간호사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그 사람 먹을 수 있는 사람 아니야? 빨리 주스라도 먹여!"

'아차' 싶었다. 재빨리 환자에게 가서 보호자에게 저혈당이니 주스를 마시게 하라고 말했다. 보호자인 어머니도 밤새도록 옆에서 지켜보느라 지쳤는지 힘든 기색이 역력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쪽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환자의 혈압이 그새 또 떨어졌다.

밤새도록 쉼 없이 일하고서 벌써 해가 밝아 데이번이 출근한 지도 몰랐다. 노티를 해야 하는데 인턴이 새롭게 바뀐다고 했다. 새로운 인턴에게 환자의 정보의 압축해 전달하고 급한 상황을 노티 했다. 수액을 loading 하라고 했다. 이미 내 근무 시간도 넘어선 상황에 인계를 줄 시간도 없이 환자한테 가서 infusion pump를 설치하고 수액을 loading 했다. 등에 땀이 범벅된 채 데이번에게 나이트 동안 있었던 상황을 인계 주고 내가 놓쳤거나 실수한 부분을 처리하고서 한 시간 오버타임 후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화가 났고, 환자의 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 화가 났고, 의사와의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화가 났다.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풀리지 않은 화를 뒤로한 채 쏟아지는 졸음을 잠재우기 위해 잠을 청하고 또다시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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