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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Aug 08. 2023

정류장

  늦은 오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다리를 비틀 거리며 걸어간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었다. 고개를 들어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8분 정도 남았다. 헤드셋을 귀에 꾹 눌러쓴 채 빠져나가지 않는 노래를 귀에 눌러 담았다.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르신 한 분이 핸드폰에 화면에서 뿜어 나오는 빛에 의존해 정류장 안내판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껐다. 노래 가사와 이어진 채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침침해서. 늙으니깐 눈이 어둡고 그러네요. 밤에는 하나도 안 보여. 글이.“

  어르신이 내게 입을 열었다.

   “아아···.”

  나는 헤드셋을 완전히 벗고 두 귀를 열었다.

  “어디 가시는 데요?”

  내가 물었다.

  말문이 트이자 어르신은 이곳저곳을 설명하시며 목적지를 말씀하셨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길목도 몇 개 들렸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이도 어린 학생이 우리 아들보다 친절하네.”

  “아드님이 몇 살 정도 되세요?”

  “29살.”

  “헐. 선생님 되게 동안이세요!”

  “내가 무슨···. 머리도 백발인데.“

  어르신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만지시더니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염색을 하고 미용실에서 샴푸를 받을 때면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어르신은 나이가 들고 허리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눈도 어두워지고, 허리도 수시로 아파오고. 어르신의 말씀이 끝나자 버스가 들어왔다. 나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고 버스가 출발하자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8분이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인생이라는 책이 있다면, 젊음은 몇 장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라는 흔한 말. 오늘도 의미 가득한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젊음을 태워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마냥 뿌듯하지는 못했다.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늙어가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름답게 끝맺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자. 넘어간 페이지는 신경 쓰지 말고, 남은 페이지를 빽빽이 채워나가자.

  하루의 끝이 유독 아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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