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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un 23. 2023

잘 지내고 있습니다.

뒤늦은 감사의 말


그동안 정말로 바빴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바빴다. 글도 과제 제출용이나 겨우 집필하는 정도였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1월에는 개인적인 가정사로 바빴고, 2월에는 밸런타인데이 행사 준비, 3월에는 화이트데이 행사 준비, 4월에는 운영력 평가 준비는 물론이고 원가로 천만 원이 넘는 점간 이동 물품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5월이라고 바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이라는 행사가 존재했고 여름 성수기 매출 상승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달이었다.


사실 이런 큼직한 일거리가 아니더라도 월간 보고서와 주간 보고서를 매번 작성해야 했고 월마다 변경되는 전략 상품에 따라 매장 내의 진열 배치도를 뒤엎거나, 행사 홍보지 등을 만들어야 했다. 다들 우습게 보고 가볍게 생각하는 편의점 업무라는 게 이렇게 힘들다.


그런 중에 학과 내에서 크고 작은 모임이 여러 번 있었다. 시간이 안 되어 불참했던 때도 있었고, 가까스로 여유가 나서 참석 의사를 밝혔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모임 며칠 전에 다치거나 독감에 걸려 불참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아주 어렵사리 5월 31일에, 학과장님과 학과 임원진 분들을 뵙게 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거의 듣기만 했었지만 즐겁고 좋았다. 피로로 절은 내 얼굴이 괜한 오해를 일으키진 않았기를 지금도 절실히 바란다. 나는 그 자리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그날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과장님과 헤어진 후 공원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여유가 참 좋았다. 바람은 선선했고 가로등 불빛이 따스했다. 낭만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작년에 학과 대표직에 임하셨던 미진 전 대표님께서 문득 내게 말을 거셨다.


“유정 학우님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학우님이랑 저랑 꽤 많은 과목을 겹쳐 수강했어요.”


나는 당황하여 어색하게 웃었다. 올해가 특히 바쁘다 뿐이지 작년도 재작년도 바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 나는 타인의 글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당연히 줌 수업의 참여율도 저조했고, 나는 완전히 학과 내 아웃사이더였다. 이런 내가 학과 부대표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영광이고 죄송스러울 만큼.


뇌리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글들은 몇몇 있었으나 그게 미진 전 대표님의 글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혹시라도 주제가 그쪽으로 흘러갈까 봐 긴장했다. 정확히는, 내가 전 대표님의 글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실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전 대표님께서는 내게 당신의 글에 대한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우님이 자유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몇 개 읽었어요. 굉장히 어둡고, 현실적이고, 시크하면서도 눈물을 자아내는 참 따뜻한 글이었어요. 그래서 학우님이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고 댓글도 남겼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사실 전 대표님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신 몇몇 학우님들이 내 글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남겨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과분할 만큼 타인의 애정을 받으며 이 학과로 전과해왔으니까.


“아, 기억나요.”

“기억이 나기는! 기억 나는 척 안 해도 돼요.”

“아니에요, 어렴풋하게 기억나요. 그런 댓글을 봤던 것 같아요. 무척 힘이 됐어요.”


나의 글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텍스트가 아닌 ‘입에서 나오는 말’로, 눈앞에서 들으니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치솟았다. 마음이 뭉클했다. 나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분들이 내가 글쓰기를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는 건 곧, 나의 안녕을 비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나는 문득 사이버대에 입학한 후의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았다. 미치도록 바빴고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배움의 힘으로 인해 죽을 만큼 우울한 나날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내가 어제보다 덜 힘들고, 어제보다 덜 고독하고, 어제보다 덜 슬프고, 어제보다 더 웃고, 어제보다 더 행복하며, 어제보다 더 나아진 미래를 꿈꾸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힘냈다.


그래서 나는 전 대표님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비록 그 자리에서는 화제가 금방 바뀌는 바람에 전달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나마 말한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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