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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고양이 Jul 03. 2021

여름의 베이킹이란?

극복해야만 할 슬럼프가 찾아오는 순간에 우리가해야 하는것들.


여름이라는 지뢰밭


여름은 개인적인 베이킹 프로젝트에 있어서 매우 힘든 시간이다. 이스트든 발효종이든 부푸는 속도는 엄청나고 반죽 온도 맞추려면 냉장고에서 꺼내 상온화 할 것도 없이 반죽기에 직행해도 망하지 않을 만큼 덥고 습한 것이 한국의 날씨. 전문적인 설비가 되어있는 공간에서 작업하는 프로 파티시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방구석 베이커들에게는 전기료와의 싸움도 시작된다. 누진세라는 무시무시한 덫에 걸려드는 동시에 너무 더우면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는 수많은 아이템들.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는 이 머나먼 땅 한국의 습한 여름을 겪어보고 이 신박한 물건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상황에서는 에어컨 없이 드높은 습도를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 습도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다가 탈수증으로 쓰러지는 일 없이 오븐 앞에 무사히 서 있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아니면 에어컨과 오븐처럼 전기를 많이 먹는 기계를 다른 전자제품들과 동시다발적으로 돌리는 경우 아주 흔하게 두꺼비집이 내려가 암흑에 갇히게 된다. 가장 더운 낮 시간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울 때는 스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콘 지옥을 만든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이 방구석 홈베이커에게는 그래서 여름이 가장 위기의 순간이다. 연초에 결심한 베이킹 프로젝트를 계속해나가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순간이 6월 말에서 7월 초다. 물론 8월이 되면 내 두뇌에 연결된 모든 신경망이 알아서 손을 잡고 사고 회로의 두꺼비집을 아예 내려버리기 때문에 그 어떤 활동도 여의치 않다. 그저 더위를 견디며 에어컨 바로 옆에 붙어서 책이나 읽으면서 방학인 아이들과 씨름을 이어나가는 동안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는 이외에는 가능한 일이 없다.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오게 마련이고, 권태기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베이킹에 있어서 여름은 딱 그런 순간이다.


올해의 나는 그런대로 결심을 잘 이어나간다고 생각했다. 평생 제대로 된 실행력을 발휘한 일이 결혼과 출산 빼고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만하면 기준선을 넘었다. (아 물론 나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잠시 우쭐했지만, 이내 6월이 찾아오자 위기도 함께 왔다. 불행은 늘 동무하고 온다고 했던가. 더위와 이상한 스콜 같은 비로 급강하한 체력 이외에도, 지난해의 팬데믹을 방불케 하는 바이러스의 위협이 동네를 뒤집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방학의 어머니 노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예측 불허로 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다짜고짜 변이 바이러스까지 동네를 덮쳐서 원어민 강사와 홍대 주점 발 바이러스가 동네를 쓸고 있다. 그래서 무계획이 계획이 된다. 늘 대기 중이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살고 있는 그림자 노동자의 신분은 나를 우울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계획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일이 이렇게도 힘듭니다 여러분.




망하고, 그슬리고, 태워먹는 일상.



슬럼프의 본질, 하던 일이 엉망이 될 때.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10년 먹은 오븐은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빵을 태우고, 어떤 날은 밀가루 반죽을 내놓았다. 어떤 부분이 미처 익기도 전에 바닥을 숯덩이로 만드는 날도 있었다. 이런 것을 가족들과 먹는다면 응급실에 실려가서 코로나 검사부터 받게 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들도 나왔다. 이따금씩 윗부분이 다 익기도 전에 오븐 양옆에 달린 환풍구 같은 것에서 연기가 추운 날의 콧김처럼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노쇠한 오븐의 문제와는 별개로 사고 회로가 습기와 더위를 맞아 생각을 셧다운 시키기 시작했으므로 때로는 다 아는 과정을 망해먹기도 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해야 할 것을 빼먹는 날도 있었다.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불사르는 겨울왕국 엘사의 사막왕국 버전처럼, 나는 핸드믹서를 무리하게 돌리다가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기도 했고, 케이크에 바를 시럽을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고 굳이 굳이 냄비에 끓이다가 온 집안을 시커먼 연기로 가득 채우는 아찔한 사건도 일으켰다. (그렇게 10년 넘은 나의 첫 아이의 이유식 냄비이자 밀크팬은 영면하였다. 명복을 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부엌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말 못 하는 밀가루 아기를 향해 미친 사람처럼 분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필시 그 모습은 먹는 것을 만드는 중이 아니라 지구를 멸망시킬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 악마처럼 보일 터였다. 







포기를 구워내는 사이클


물론 인생은 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에 관한 한탄을 수십 년쯤 해온 사람으로서, 그 처량한 기분은 늘 나를 작아지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끝장을 보지 못하고 모든 일을 하다가 중단하거나 포기하게 될까. 왜 나는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것일까. 태워먹은 시나몬 롤 하나가 인생과 우주 전체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꽂았다. 순식간에 나의 즐거움이었던 베이킹은 나의 가장 아픈 신경 줄 하나를 잡아 꼬집어 비트는 존재가 되었다.


케이크 만드는 시간

직업이 무엇이고 취미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축복받은 존재들은 좌절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어딘가에 그런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나이를 이만큼 먹었으면 현실을 알 때도 되었으니까. 나는 이런 베이킹의 싱크홀로 추락해 본 경험이 숱하게 있었다. 그때마다 손을 떼고 다른 길로 빠져버리거나 그저 매일 어떤 레시피를 앞에 놓고 죽상을 한 채로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계절이 무척 선선해지고 제법 맑고 청량한 공기가 신경을 깨울 때면, 내가 그간 놓치고 흘려보낸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저 생각만 하면서 일상의 주위를 빙그르르 미끄러져 돌아다녔다. 




이런 식으로 한참의 시간을 낭비하고 나면, 우연히 마주친 괜찮은 베이킹 레시피북이나, 좋아하는 베이커의 예쁜 사진에 강타당해 다시 정신이 든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나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때서야 부엌을 돌아본다. 쓰지 않고 묵혀둔 도구들이 눈에 띈다. 이미 유통기한을 넘겨버린 재료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접어두었던 레시피북의 한 귀퉁이에도 시선이 꽂힌다.





그저 계속 걸어가기 위해서 해야 했던 것.


그저 걸어 들어가 만들기 시작한 잡곡식빵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그만두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날이면 그저 드러누워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틀고 좋아하는 베이커들의 동영상들을 보고 또 봤다. 어떤 동영상은 수백 번도 보았다. 그저 드러누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물론 슬럼프는 힐링한다고 극복되는 따위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저 다시 부엌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용기를 위해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지우고 몸을 움직이면 하나씩 극복이 된다. 어떤 날은 부엌에 들어가 멍하니 서있기만 하다가 두서없이 이런저런 정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재료 손질을 하고 밑준비를 한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뭔가 내가 오래전에 만들고서 다시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시도해본다. 그렇게 근육은 내가 해야 할 일로 나를 끌고 간다. 





새 오븐 친구, 지에라

그리고 나는 어느 날 베이킹 카페들을 뒤적이다가 그간 언젠가는 구입하려고 따로 돈을 모으고 있던 벤츠급 오븐을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질러버렸'다. 취미에 이런 투자를 한다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사교육 지옥의 학령기 아이들을 둘이나 둔 나에게는 아주 큰 도박임에 분명했지만, 그래야만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로맨틱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 더 늙고 난 뒤에는 장비병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다. 이번에도 슬럼프에 지고 만다면, 결국 또 같은 사이클의 도돌이표에 갇힌 채로 스스로를 책망하는 우울한 결론으로 또 이어질 것 같아서.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매우 잘하고 즐기면서 하는 순간에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럴 때는 좋은 장비를 누리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대접이라고도 느낀다. 그러나 슬럼프가 닥칠 때는 다르다. 슬럼프가 닥칠 때 하는 투자야 말로 진정한 투자이다. 그것은 내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외부적인 장치이다. 





슬럼프는 정말 좋아하는 일에서 찾아온다.


새 오븐으로 처음 구웠던 커피 빵.

경험을 통해 베이킹하는 기술은 얼마나 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슬럼프에 관해서만큼은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슬럼프를 가져오는 무엇이란 직장 일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고, 춤일 수도 있으며, 독서이거나 글쓰기일 수도 있다. 아, 공부일 수도 있다. 어떤 책에서는 슬럼프가 찾아오면 별달리 방법이 없으니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믿어보라고도 말한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것도 유효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터널에서 걸어 나가기까지 늘 시간이 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럼프가 포기로 이어지는 유명한 순간들은 비일비재하다. 그 좌절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슬럼프가 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경험이 벌크업 시켜놓은 삶을 다루는 '근육'과 '장치'의 힘이다. 



이 비 오는 여름처럼 힘든 순간은 반드시 있다. 지금까지 내 삶의 핵심 영역에서 해온 것들이 공중분해되는 것 같은 순간에 처하거나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날들도 있다. 더 어렸을 때에 슬럼프와 좌절에 관해 지금만큼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경험 부족과 통찰력 부족은 그렇게 쉽게 메꿔지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취미 영역의 어떤 슬럼프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서 삶 전체에 대해서 중요한 말들을 해준다. 꾸준히 잘 살아갈 수 있는 '근육'을 기르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투자할 수 있도록 '장치'를 남겨두라는 것. 언젠가는 꼭 한두 번쯤은 슬럼프와 괴로움에 빠져드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숯덩이가 되어버리는 스테인리스 냄비와 회색 연기를 내뿜는 오븐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좌절하고 있는 지금이 슬럼프이고 포기하지 않고 근육을 키운다면 언젠가는 걸어 나갈 테니까. 


여름의 디저트, 파블로바

다만 차이는 슬럼프를 걸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이고, 걸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더 괴로운 슬럼프를 겪는다면, 그건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슬럼프가 동반하는 무기력과 갈등의 순간에 내가 더 괴롭고 두려워진다면, 그 일은 그만큼 자신이 좋아했던 일이다. 흘려보내도 괜찮을 만큼만 하기 싫어진다면 그것은 그저 별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을 뿐이니 괴로울 필요 없이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된다.


나는 여름마다 무척 괴로웠다. 그리고 올여름도 괴로울 계획이다. 수많은 여름을 괴로워도 내가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맛있고 멋진 것들이 될지는 장담은 못하겠다. 우리는 대개 인생에서 그런 목표를 세운다고 거창한 일류의 반열에 모두 오르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각자가 가는 길은 그저 각자의 길일뿐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극복한 경험들과 즐거웠던 감정들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올여름의 나는 좀 더 슬럼프를 향한 벌크업을 해두어야겠다. 


(아, 그래도 노동의 댓가로 얻은 오븐은 나를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솔직히 조금은 하고 있으니 장비병은 끝끝내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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