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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경 Jun 05. 2024

말년병장과 만 원

만 원의 행복

안녕하세요. 말년병장입니다. 

다리를 다쳤고, 수술을 했습니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태풍이 불던 지구가 무너지던, 복귀 날에는 복귀를 해야합니다. 복귀 날이었습니다. 버스를 탔고, 버스서 내렸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을 받으며, 기사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며, 타 부대 일병 아저씨가 가방을 받으며 충주터미널에 무사귀환했습니다. 목발을 딛고 걷다 보면 겨드랑이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땀이 삐질삐질 납니다. 그래서 잠시 서 있었습니다. 누가 날 부릅니다.


모르는 얼굴입니다. 

어머니뻘 아주머니입니다. 어머, 어떡하냐는 말에 괜찮습니다. 라는 형식적 대화가 오가고 당신 아들이 평택에 있고, 얼마 전 병장을 달았고, 나와 같은 운전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걱정이겠다는 진심 어린 걱정이, 사실은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한 발로 서있기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부대 정문까지 태워줄까라는 호의는 함께 택시를 타기로 한 일행이 있어 받지 못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주차장으로, 나는 앉을 곳을 찾다 눈앞 햄버거집으로 들어갑니다.


저녁식사 시간이었지만, 시원한 아이스크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습니다. 소프트콘 아이스크림 하나 주문하고, 할짝할짝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통화 사이, 누가 날 또 부릅니다. 엄마 잠깐만. 그 아주머니입니다. 만 원을 주셨고, 햄버거를 사 먹으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셨을지 모를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몇 시간 전 일입니다. 대중교통은 아무래도 무리인, 아들을 터미널까지 안전히 에스코트하겠다는 결의에 찬 어머니 차 안이었습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이럴 때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침묵은 어색하니, 엄마 차는 뭐가 이리 더럽냐며 투정 대봅니다. 그러면 그러려니 하다 짜증을 내고, 자연스레 화제가 바뀝니다. 어머니 차례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봤는데, 식당서 군인들이 밥 먹던 걸 아무개가 계산해 줬답니다. 아무래도 종종 커뮤니티에 올라와 뉴스거리가 되는 뉴스를 보았나 봅니다. 그래서 당신도 돈 좀 멋있게 써야겠다며 다짐했다는 다짐을 듣다 보니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햄버거를 주문합니다. 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했고, 게걸스레 먹기 시작합니다. 아주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온 세포를 햄버거에 집중합니다. 군인에게 복귀 전 마지막 사제 음식이란,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 같은 겁니다. 배가 고프던 부르던, 배탈이 나건 말건 일단 욱여넣고 봅니다. 말도 안 되게 부드러운 빵과 말도 안 되게 따뜻한 패티와 말도 안 되게 아삭한 양상추를 씹으며 당장의 행복과 후일의 아쉬움을 동시에 도모합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그 치즈버거는 상당했습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3분 만에 해치우고, 콜라를 빨다 보니. 아주머니가 주신 만원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콜라의 달달함이 치즈버거의 고소함을 중화시킬 무렵. 나는 내가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혼자서 버티는 게 능사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게 가장 멋있어서가 아니라 그것 외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걸, 배워왔습니다. 날 위해준다는 말이, 알고 보니 날 현혹시키려던 장사치들이었던가. 둘도 없이 내 편이라 생각했는데, 둘 다 내 편이 아니었다던가. 그러다 보니 ‘따뜻함’이라는 건, 생경하고 어색한 개념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어머니의 다짐이 결기 어린 다짐일지 모른다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만원을 다시 펼처보고, 뒤집어보고, 거꾸로 보고, 똑바로 봐봅니다. 분명 20 몇 년간 봐온 만 원인데, 뭔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 만 원은 조금 따뜻한 거 같습니다. 지폐는 더러워 만지지 말라던 어머니도 이건 뭐라 안 할 거 같습니다.


부대로 복귀해 그날을 복기해봅니다. 아주머니뿐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걱정도 있었고, 기사 아저씨의 부축도 있었고, 타 부대 일병 아저씨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계단서 날 업어주는 동기도 있고, 가방을 들어주는 후임도 있고, 목발을 들어주는 후임도 있습니다. 여전히 내 아픈 다리를 명분 삼아, 포상휴가를 벌려는 사람도 있고, 그 기회를 놓쳐 시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어쩌면 여지껏. ‘악한 마음씨’는 논리적 규명이 가능하고, ‘선한 마음씨’는 논리적 규명이 불가해 ‘선한 마음씨’를 터부시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버티는 게 능사라던, 내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만 원을 통해 배웁니다. 이 만 원은 제가 만져본 만 원 중 가장 따뜻한 만 원이었습니다.


2024년 4월 1일 월요일 저녁. 충주터미널에서 만 원을 주신 아주머니에 감사하며.


엄마, 이제 엄마 차례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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