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술을 먹었었지-
며칠 전 사내 동호회 모임 후 뒤풀이 행사에 참석했다. 약 30명 정도가 노래방 기기가 있는 큰 홀에 모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기는 정말 오래간 만이었다. 운동 후 먹는 소맥의 맛이란~ 캬! 여기저기서 '짠~'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건배사가 등장 했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뭐를 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를 위하여 '짜 잔 짠짠짠~' 어느 정도 얼큰히 취하자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마시기 시작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섞여서 말이다. '오늘 정말 잘했네, 그동안 서운했네, 이런 모임을 자주 가져야 하네.. 등등' 오래간만에 약간 어색한 사람들과도 말을 트며, 아랫사람은 윗사람들에게 향후 충성을 맹세한다. 점점 텐션이 올라가더니 드디어 동호회 회장님이 마이크를 드셨다. '좐인한! 여자라~' 소친휘의 'Tears'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앞으로 나간다. 동호회 회장님의 맞춤형 코러스가 되기 위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브루스를 치며 한껏 흥을 돋운다. '남행열차,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누이....'
재밌었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이런 회식이 너무 좋았다. 신입사원 때는 윗분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하시지?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특히, 우리 회사만 있을 것 같은 '술잔 돌리기'와 '건배사'에 대해서는 아주 할 말이 많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고 몇 잔씩 윗분들께 술잔을 올려야지, 윗분들이 '이 친구랑 술을 좀 먹었군'하고 생각들을 하곤 하셨다.
술잔을 돌리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1단계는 본인의 소주잔을 살짝 털고 상대에게 바로 주는 것이다. 2단계는 조금 깔끔한 사람이 쓰는 방법인데, 왼손 바닥으로 소주잔의 윗부분을 쓱~ 한번 닦고 상대에게 건네는 것이다. 3단계부터는 아주 깔끔한 사람이 즐기는 방법으로 소주를 마신 후, 형광물질이 뒤덮여 있는 티슈로 소주잔의 윗부분을 몇 번씩 벅벅 닦은 후 상대에게 건네는 방법이다. 4단계, 상당히 고위층만 쓰는 방법인데, 일단 바로 옆에 깨끗한 물을 반 컵 정도 따른다. 본인이 소주를 마신 후 거꾸로 잔을 들어 담겨있는 물컵에 손톱 정도의 깊이로 잔을 넣었다 뺐다 한다. 내 침을 아주 깨끗이 씻은 후 기분 좋게 상대에게 건넨다. 단 고위층이므로 보통 열명이 넘는 아랫사람들이 술잔을 올리는 데, 그 컵의 물은 절대 갈지 않는다는 사실...
코로나 3년을 제외하고도 나는 15년을 이렇게 회사에서 술을 마셨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는 사라진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술자리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신입 때 처음 마주친 이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술을 정말 이렇게 마신다고? 술잔 돌려야지, 건배사 준비해야지, 폭탄주도 제조해야지...
세월이 지났다. 연차가 쌓이고, 후배도 생기고, 승진도 하고... 한 십 년 차 이상이 되다 보니, 희한하게 술자리에만 가면 나도 후배들이 나에게 술 한잔 먼저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꼰대가 되어감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환경에 참 적응을 잘한다. 그 문화에 적응하고, 타성에 젖고, 익숙한 것에 더욱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그 집단의 모범적인 꼰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젊은 세대와 갈등이 생기고, 새로운 것은 받아 들이기 귀찮고, 바깥 세계와는 단절된다. 결국 나 혼자 만의 세상에서 점점 더 외로워 진다.
어쨌든, 나는 이번 동호회 회식이 너무 반가웠다. 사실, 코로나 3년 동안 매일 마스크를 쓰면서, 과연 이런 날이 다시 올까 싶었다. 여기는 코로나 완전 종식을 선언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제약을 다 풀고, 감기가 걸려도 더 이상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려서 마음 놓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이 시간들이 꿈만 같다.
그러다가 너무 많이 마셨다. 다음날 너무 힘들어 또 후회했다. 앞으로는 조금만 마셔야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