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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션샤인 Nov 27. 2022

감동이다.

 감동이다. 아파트 화단의 개나리, 진달래가 아직 한창 꽃 몸살 하던 2020년 4월, 자전거 4대와 함께한 한강공원에서의 사진 한 장, 정말 감동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먹고, 걷고, 장보고, 자전거 타고, 웃을 수 있는 그러한 일상에 감사하다. 

 올해 2월 무사히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너희가 기다리고 있던 가양역 3번 출구를 잊을 수 없다. 마스크를 끼고, 못 보던 겨울 잠바를 입고, 떡볶이 냄새를 풍기며... 가양역 출구를 빼꼼히 쳐다보던, 너희를 보는 순간 감사의 눈물이 핑 돈다. 6년간의 타지 생활... 이제 그 마지막에서 ‘코로나’라는 무시무시한 훼방꾼을 피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눈물과 함께 너희에게로 왔다.

 

 감동이다. 2014년 7월, 체감온도 52도, 달아오른 모래알을 밟지도, 만지지도 못할 만큼... 얼굴로 흐르는 것이 땀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모를 만큼.. UAE 사막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하루 일을 마쳤다. 그리고 돌아온 나의 숙소, 18도의 에어컨 바람... 와!! 정말 감동이다. 

영상통화 너머로 피아노를 쳐주고, 노래를 부르며, 병아리를 키우며 “아빠 힘내세요!”를 외쳐주던 너희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너희들을 보며 이집트산 수박을 먹는 아빠... 그냥 감동이다. 

 

 보고 싶어도, 안고 싶어도, 함께 웃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시간들은 아빠에겐 아픔이었고, 너희들에게는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가족이 떨어져 있다는 것, 그 그리움과 허전함은 평범한 아빠인 내가 또, 6살 9살이었던 너희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난여름, 잠깐의 휴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와~우! 숨이 헉 막힌다. 내가 살던 헌 집은 갔고, 친환경 황토로 도배된 39평 새집이 내게로 왔다. 정말 감동이다. 여보! 고마워

 

 감동이다. 2011년 5월, 우리에게 작은 텃밭이 있었다. 그해 초부터 언 땅을 파고, 비료를 뿌리고, 흙 고르기를 했다.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호박, 오이를 심었다. 매일 아침 4살, 7살 너희들과 함께 물을 주고, 사랑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었다. 비가 온다. 봄비가 장마처럼 몇 차례 내리고, 여름 햇살을 몇 번 머금고 났더니, 초록 토마토가 생겼다. 작은 고추가 자라며, 싱그러운 상추 향에 코 끝이 찡하다. 행복하다. 어린 너희들과 물장난인지, 흙장난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때론 장화를 신고, 큰 장갑을 낀 귀여운 우리 아들, 그 뒤를 쫓아가던 우리 딸.. 그렇게 너희들이 알알이 새빨간 토마토를 만들었구나. 한 입 톡 터지는 싱그러움... 그 토마토의 맛이, 상추의 내음새가 고추의 아삭함이... 이 모든 것이 감동이다.

 감동이다. 2010년 12월, 미안하다 아들아. 추운 겨울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나는, 아이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재빨리 아들을 목욕시키는데 동참했다. 아뿔싸, 의욕이 앞섰나 보다. 세수 대야 물에 푹 들어가 있던 아들에게 가까이 가려다, 그만 욕실 바닥에 내가 미 끌어지면서, 세수 대야를 동시에 밀었고, 아들, 너는 그 길로 세면대 하단에 얼굴을 심하게 부딪쳤다. 순식간에 바닥은 피바다였고, 울음바다였다. 초보 아빠는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소리 내어 같이 엉엉 울었다. 응급실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의 판결을 기다릴 때의 그 두려움이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애가 영어 발음이 좋아지겠어요. 허허, 혀와 혓바닥 연결부위가 찢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혀가 잘 굴러가게 생겼네요. 별일 아니니 걱정 마세요” 다행이다. 아들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아들이 울면, 나도 운다. 아픔을 함께하는 것, 그게 가족이며, 그게 감동이다. 아들아... 그런데 너는 왜 영어 발음이 그 모양이니? 아마 돌팔이 선생님이었나 보다.

 

 감동이다. 2009년 3월 18일 12시 20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예삐’가 드디어 우리에게 왔다. 까만 머리에 작은 눈, 오뚝한 코, 우렁찬 ‘응애’ 소리...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너를 직접 보는 순간... 아빠는 그냥 감동이었다. 귀엽고 깜찍한 ‘예삐 콩콩이’ 우리 귀요미 딸... 너는 아빠의 마음이고, 사랑이고, 모든 게 감동이야. 산통으로 녹초가 되었지만, 너에게 젖을 물리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그 고통을 같이 하지 못했고, 살면서 그 고통보다 더한 아픔을 주었고, 쉽게 그 아픔을 치유해주지도 못해, 정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감동이다. 2001년 9월, 찰랑찰랑한 생머리, 양쪽 보조개, 은근한 미소, 톡톡 쏘는 말솜씨, 참이슬, 우산, 손 편지, 이자카야... 당신을 처음 만난 날... 그날이 나에겐 감동이었다. 흰색 스커트를 입은 당신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공원 벤치에서의 그 해 여름...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웃고, 울고, 싸우면서 함께한 17년... 

내 곁에 있는 당신, 당신은 내게 가장 큰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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