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게이트의 진실은
“밥은 먹었어?”
“밥도 안 먹고 그냥 가려고?”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다과를 한상 가득 내어주며)
한국에서 손님을 빈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아주 드물다. 특히 밥시간에 손님이 온다면 라면이라도 끓여 내어 배불리 보내드리는 것이 한국이다. 한국 말고도 대부분의 나라에는 집에 온 손님을 음식으로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한데 이 그 관례를 깨버린 일이 있었다.
일명 스웨덴게이트(Sweden gate) 사건이다.
전말은 이렇다. SNS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스웨덴인 친구 집에 놀러 간 글쓴이.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친구는 그에게 우리 가족은 이제 밥을 먹을 테니 우리가 다 먹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스웨덴 가정집에서는 원래 손님에게 식사 대접을 안 하나? 글쓴이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친구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그 가족이 식사를 끝내길 기다렸다고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 웃기다고만 생각했다. 그 가족에게 나름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오히려 이 밈 때문에 정 없다는 비난을 받은 스웨덴 사람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친구들도 우스갯소리로 스웨덴 게이트가 정말인지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엔 정신없이 그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이 밈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스웨덴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 어떤 사람이 스웨덴 친구 집에 갔는데 식사 시간 되니까 친구 식구들이 자기만 빼고 밥 먹었대. “
그러자 그 스웨덴 친구는 “ 그럴 수 있어 ”라고 했다. 대답을 듣고 게시물의 글쓴이처럼 어안이 조금 벙벙했다. 헛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 스웨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에 익숙해지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
그 스웨덴 가정에서 식사를 대접하지 않은 건 그렇다 해도 권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그들이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라 마음까지 얼어붙어서 손님을 굶기고 자기들끼리만 오붓하게 식사를 즐겨도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당연한 도리라고 보이는 것들이, 정겹다 여겨지는 말과 행동이 스웨덴에서는 아무 의미 없거나 나아가 번거로운 것이 될 수 있었다.
배고프다는 혼잣말에 화들짝 놀라 코스 요리를 차려주시는 할머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은? 하며 끼니를 챙겼는지 여부부터 묻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도 그렇고, 한국의 많은 할머니들은 그렇다.
반면, 할머니가 북유럽 분이신 한 친구는 할머니와 함께 살지만 밥은 따로 알아서 차려 먹는다고 한다. 할머니와 관계가 소원해서가 아니라 북유럽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옆자리 친구에게 간식을 주며 친해지고, 선배가 후배 커피를 사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밥약(밥 약속)을 걸고, 활발한 친구가 점심 같이 먹을 모임을 단체톡방에서 모으는 풍경이 펼쳐진다.
말고도 학과별 개강파티에, 동아리 회식에, 교수님과의 식사 자리까지 끊임없이 먹고 마시면서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스웨덴 대학 생활에서 이런 모습은 드물다. 학교에서 먹을거리는 이미 집에서 각자 도시락으로 싸 왔다. 커피를 사주고 은혜를 갚고 하는 것도 돈이 정말 없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면 스웨덴 학생들은 “hej då”(잘 가) “vi ses”(또 봐) 인사를 나눈 뒤 각자 자전거를 타고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수업 끝나고 어디 가는지 물으면 너무도 당연하게 집에 간다고 한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팀 프로젝트를 하는 자리에서도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일은 많지 않다. 배고프면 가방에서 자기 간식을 꺼내어 먹으면서 대화한다. 심지어 중간에 자기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혼자 먹기도 한다. 한국이라면 “혼자 먹냐~” “맛있냐~” 한 소리 들었을 일이다. 그렇지만 특별히 포틀락을 하거나 피크닉에서 같이 음식을 나눠 먹자고 계획한 게 아니라면 각자 먹을 것은 알아서 한다.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스웨덴에는 예의상 하는 멘트도 잘 없다. 매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인사치레가 없는 것 같다. 카페에 들어가서도 “Kaffe, Tack” (Coffee, please) 두 단어만 있으면 됐다. 약간의 미소와 눈 맞춤만 있다면 그걸로 정말 충분하다.
가족끼리 귀여운 우리 강아지 같은 낯간지러운 표현을 나누는 것은 드물다 (귀엽다는 표현 자체도 잘 없다). 대학교 학기가 시작될 때 학생들의 서로 친해지기 위한 이런저런 칭찬, 빈말이 대부분인 스몰토크 같은 대화도 없었다. 대신에 시험 날짜, 교재, 여행 정보 등을 나누는 게 보통이었다. 처음에는 이 친구들이 서로 친해질 마음이 없다고 오해할 뻔했다.
어떤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사교적인 행동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넓은 영토에 인구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던 것이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는 좋든 싫든 사람과 부대끼고 말을 나누고 눈을 맞추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런던의 펍, 아파트 이웃끼리 매일 꼭 붙어 타야 하는 파리의 엘리베이터, 숨도 못 쉴 정도로 사람에 끼어 타는 서울의 지하철 같은 곳이 그렇다.
그런데 스톡홀름 시내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혼자 걷고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스톡홀름이 스웨덴에서 가장 번화한 수도임에도 말이다.
스웨덴에는 사람과의 소통을 대신해 주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 발달하기도 했다. 웬만한 출입문은 버튼식 자동문이어서 서로 문을 잡아줄 필요가 없고, 아직도 열쇠를 쓰지만 디지털화되는 속도가 빨라 웬만한 서비스는 모두 앱으로 전환됐고 전자 상거래가 보편화되어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부딪힐 일이 거의 없도록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리하지만 사람과의 접점이 더 줄어드는 일일 수 있다.
요즘은 한국에 무인 시스템이 많이 보급되고 있기도 하고 대도시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스웨덴에 오래 거주한 한국 사람들은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10여 년 전과는 반대로 한국이 스웨덴보다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도 한다.
다시 밥 안 줌 이야기로 돌아와서
스웨덴에서는 초대받지 않고 식사 시간에 찾아간 글쓴이의 에티켓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색해 보일 수 있겠지만 배고플 것 같았다면 먹을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알아서 싸가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음식 자체도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한국이야 밥, 반찬, 국을 쟁여놓고 먹기에 밥 한 그릇 더 떠 주는 건 큰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가정에서는 그날 식사를 위해 직전에 장을 보고, 그날 먹을 만큼만 요리한다고 한다.
음식 종류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물론, 한 사람이 더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조금 더 덜어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그들에게는 굳이 식사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밈이 되어 일파만파 퍼지자 스웨덴 사람들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걱정했는지 이제는 스웨덴 친구 집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사람들의 흔한 일상 식사 메뉴를 소개한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인만큼 밥에 그다지 진심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