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만 있을 뿐

스웨덴 날씨 이야기

by N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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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안부 인사의 소재로 날씨 이야기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날씨 이야기에 임하는 스웨덴 사람들은 단지 스몰토크를 나누고 있다기엔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이 사람들… 날씨에 진심이구나!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으로 스웨덴에 머물며 겨울을 나는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학교 생활을 할 때 챙겨야 할 것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마음을 챙기기였다. 강연자 선생님은 겨울에 우울감(depression)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도인 스톡홀름의 기온 자체는 사실상 한국과 비슷하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우울감을 언급할 만큼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이 온다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눈보라를 맞고, 하루에 햇빛을 쐴 수 있는 시간은 운 좋으면 3시간 내지, 흐린 날이 이어지면 해를 며칠간 보지도 못하고 지낼 수도 있는 날들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겨울은 넉넉잡아 이듬해 4월까지는 이어진다.

겨울에는 길거리도 휑하다. 아예 장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 사람들이 퇴근길에 오갈 만한 여러 길거리 상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중에 돌아오겠다 써 붙였다.



그렇다면 스웨덴 사람들은 겨울에 무얼 하며 보낼까? 스웨덴 학교에는 겨울 방학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낼 수 있는 있는 짧은 휴가만이 주어진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직행하는 것이 다반사다. 스웨덴의 어른들은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Det finns inget dåligt väder,
bara dåliga kläder”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만이 있을 뿐.


아이들이 궂은날이 이어지는 겨울에도 밖에 나가 놀도록 독려할 때 주로 쓰인다는 노르웨이 속담이다. 나의 눈에는 스웨덴의 부모들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추위를 겁내지 않도록 기르는 것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유모차를 끌고 밖을 산책하는 부모들은 약과다. 자전거 앞에 유모차를 장착하고 추운 거리를 쌩하고 달리는 부모들, 유모차를 끌고 언덕 위를 조깅하는 부모들을 보았다. 놀이터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두툼한 스키복을 장착하고 흙바닥에 신나게 구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속담은 날씨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그 날씨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준비가 미비했던 나에게는 추위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또 예고 없이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4월에 갑자기 추위가 눈 녹듯 사라지고,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어느 날 친구들이 민소매에 선글라스에 반바지를 장착하고 나타났다. 나는 그때 전날 입은 니트와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다. 스웨덴에 오래 살았던 친구들은 날이 풀릴 조짐이 보였다고 했다.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대가로 온종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여름이 오면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마트에서는 아이스크림 할인을 시작한다. 겨울까지는 스웨덴에 길거리 노숙인이 없는 줄 알았다. 여름이 오니 다른 도시들의 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제야 나타났다.


날이 풀리면 사람들은 자연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놀기 시작한다. 산책하고, 풀밭에 드러눕고, 베리를 채집하러 다니고, 호수에서 헤엄도 친다. 호수 헤엄이 일상인 스웨덴의 젊은이들은 어떤 호수가 들어가기 적합하고 아닌지를 눈대중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까지 한다. 여름이 되면 반대로 밤이 굉장히 짧아진다. 이에 따라서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시간도 늦어진다. 낮이 길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맞추어 모두의 생활 패턴이 변한다.


스웨덴에서 낮이 가장 길 때는 미드소마(Midsommer)가 있는 주간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 큰 축제를 보면 스웨덴 사람들이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매년 금요일에 가장 성대한 축제가 진행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주말은 한국의 추석 연휴처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미드소마에는 축제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 여름이 절정에 달하는 때이기에 1년 중 가장 신나지만, 이제 해가 점점 짧아지고 추워질 일만 남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여름을 떠내 보내는 날이기도 하다. 미드소마에는 화관을 만들어 쓰고, 노래를 부르며 강강술래 같은 민속춤을 춘다.



겨울과 여름에 만나는 북유럽의 풍경은 서로 다른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뭉크의 그림 속 노르웨이 오슬로의 칼 요한 거리에는 죽상을 한 얼굴들이 다가온다. 그림의 음울함은 도시화로 삭막해진 분위기와 뭉크의 심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지만, 배경이 여름이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싶다. 뭉크 그림 중 태양 시리즈는 환희에 가득 타 있다. 이토록 밝은 태양빛이라니, 북유럽의 겨울을 겪고 난 뒤 햇빛이 얼마나 강렬하고 반가운 빛인지 이해가 조금은 되었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면, 눈썰매 타기,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 타기, 얼음장 같은 물에 뛰어들었다가 사우나로 쏙 들어가기, 눈 내리는 창 밖 보면서 뜨끈한 카푸치노 마시기, 겨울철에만 나오는 푸짐한 셈라 먹기, 집에서 따뜻한 조명을 달고 책 읽기… 나열하고 보니 많다!

아무것도 하니 않아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날도 있지만, 늘 날씨가 내 맘 같을 수는 없다. 겨울의 스웨덴에서는 궂은 날씨에도 기분 좋아지게 하는 것들을 찾으려는 일상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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