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대학 다니기라 하죠

스웨덴의 교육

by Nao

이번 시험엔 공부를 얼마나 하면 좋을까? 라는 질문에 스웨덴식으로 답한다면…

"Lagom!"

이라고 하고 싶다.


‘Not too much, but not too little’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한 정도라는 뜻의 Lagom. 스웨덴 사람들은 삶에서 이 Lagom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웨덴의 한 대학교 강의계획서에는 일주일 간의 권장 공부량이 있다. 공부에도 과유불급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서만큼은 '적당히'를 모르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으로서 이러한 학교 분위기는 상당한 문화충격을 주었다. 초등학생은 중등 과정 선행학습, 중학생은 고등 과정 선행학습, 매일매일 밤 늦도록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 과목별로 다니는 학원과 과외들, 이러한 한국의 입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스웨덴의 Lagom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물론, 공부를 상당히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이것이 Lagom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적당함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Lagom의 시작이다.

스웨덴 학생들이 적당히, 라곰하게(?) 공부해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학생들은 서로를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공부 실력으로 다그치지 않고, 심지어 칭찬도 잘 하지 않는다. 스웨덴 학교의 분위기는 말하자면 ‘네가 열심히 하면 배워가는 거고, 아님 말고’ 식이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들은 거의 절대평가제로 운영된다. 학생들 서로가 경쟁 상대가 아니다보니, 같이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공부 노트를 돌려보고, 배운 내용으로 서로 퀴즈를 내 준다고 한다. 1인용 독서실 책상 한 칸 씩 쏙쏙 들어가 종일 책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었다. 날씨 좋은 날 야외에서 여럿이 벤치에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공부하는 스웨덴 학생들은 얼핏 보면 피크닉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웨덴의 대학은 학비를 받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도록 학자금을 대출해준다. 게다가 대출을 갚을 의무는 있지 않아서 돈을 받고 대학을 다니는 셈이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대학에 가기로 선택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점수에 맞춰서 적당한 대학에 진학하고 이전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전공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대학가의 풍경도 스웨덴과 한국은 많이 다르다. 한국의 대학가에는 술집이 즐비하고, 밤이면 비틀거리는 새내기들이 각자의 학과 점퍼를 입고 서성인다. 대학에 입학하면 같은 학과 학생들끼리 우르르 술을 마시러 가고, 동아리에 가입하면 동아리 사람들끼리 우르르 술을 마시러 가는 문화는 없다. 대학을 다니는 것은 일상의 일부일 뿐, 하루가 온통 대학 일정과 대학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 않다. 대학 다니기는 하나의 취미처럼 생각되고, 특히 긴 겨울에는 학교 생활은 지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스웨덴 친구에게 너는 대학을 왜 다녀? 라고 물어보니 반은 진심, 반은 농담인 듯한 말투로 “심심해서”라고 했다.

점심 시간이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까 먹는다. 학교 안 곳곳에는 전자레인지들이 있다. 한 벽면이 온통 전자레인지인 복도도 있다.

스웨덴에는 ‘그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격언이 있다. 스톡홀름 구시가지 감라스탄을 돌아다니다 보면 노벨상 박물관을 발견할 수 있다. 매년 문학, 경제,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류에게 길이 남을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 스웨덴. 그러나 스웨덴의 노벨상 박물관에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곳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쓰던 손 때 묻은 일상의 물건들이 놓여있다. 설명문을 읽지 않고 얼핏 보면 민속 박물관 같기도 하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육의 목표는 특출난 한 명을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울려 살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대학 수업 첫날, “너희가 공부하는 이유는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 위함이 아니야, 너의 인생에 도움이 될 공부야.” 라는 말을 들었다. 공부의 정도(程度)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의 이유부터 물어야 한다. 스웨덴의 교육 방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런 내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곳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여유를 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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