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운 제사는 안 지내느니만 못하다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자학적 제사는 구성원에게 종법상 위계와 서열을 각인시키는 학습의 장이 되었다.
주자학적 제사에는 고대 봉건시대의 관념이 녹아 있다. 기본적으로 종법은 신분 서열을 공고히 하는 제도다. 당연히 종법의 회복을 지향한 주자학적 제사에는 종법적 서열 의식이 곳곳에 녹아 있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사당에 신주를 놓는 순서, 제수와 찬품을 나열하는 순서와 위치, 제사 주관자의 순위와 참여 시 신분에 따른 역할의 차이, 제사 참여 시 줄을 서는 순서와 위치, 절하는 순서, 제사 복식, 음복 시 헌수 순서 등에 모두 서열(序列)과 존비(尊卑) 관념을 녹여 넣었다. 제사 참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눈으로 보고 몸소 행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몸소 느끼게 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 간에도 ‘존비와 서열 순서’가 있음을 내재화해 갔다.
그렇게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파고든 종법은 조선의 가족문화를 더욱 공고한 ‘부계 친족 중심 가문문화’로 변화시켰고, 가문들은 사회의 중심이 되어 갔다. 결국 거대 가문들이 붕당 등 정치의 중심에 서면서 국가와 민족보다 가문의 번영과 영속이 상위 가치가 되는 폐단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가족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예를 다룬 유교 경전에
“제사는 자주 지내지 않아야 한다. 자주 지내면 번거롭고, 번거로우며 공경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다. 공자 역시
“(제례에는) 공경함이 부족한데 예가 과한 것보다는 부족할지언정 공경함이 남아도는 게 낫다”
는 말을 했다. 예란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동과 올바른 진심을 시의적절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다. 즉, 표현해야 할 본심과 본질이 핵심이 된다. 고대 유교로부터 주자에 이르기까지 제례의 핵심은 ‘공경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지 제물의 화려함과 번잡함, 번다함이 아니었다.
재밌는 것은, 『주자가례』의 제사상은 오늘날의 제사상보다 간소했고 의식도 지금의 명절 차례보다 훨씬 간단했다. 그럼에도 주자는 그조차 번잡하다고 느껴 개선의 필요성을 누누이 이야기했다.
“후세에 대성인이 태어나 그가 한 차례 예를 정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깨우치게 한다면, 필시 일일이 옛사람이 한 것처럼 번거롭게 하지는 않고 다만 옛사람의 글 뜻을 본떠 간단하면서도 행하기 쉽게 할 것이다.” 『주자가례』
하지만 이미 조선의 제사는 과시적 허례허식과 기복신앙 같은 욕심이 더해져 죽은 존재를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음식을 산처럼 쌓아 갔다. 이미 몇백 년 전 조선의 주자학자들도 그런 면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신 것처럼 섬기고, 귀신인데 사람처럼 먹이는 것이니, 그 모독이 심하다. _(남계)
또한 『주자가례』의 제사에는 본래 남녀 모두 공평한 역할과 자리가 있었고 남녀가 함께 준비하고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만 제사에 참여하고 여자는 부엌일을 도맡는다. 더불어 제사의 마무리인 음복 때는 덕담과 축수만 할 뿐, 예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명절에는 ‘말조심 매뉴얼’이 돌아다닐 정도이다. 5백여 년 전 『주자가례』나 조선보다도 더 기복적이고 이상한 것이 오늘날 명절 차례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