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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Nov 02. 2021

퇴사하고 뭐하지?

일단 막막해했다.

퇴사하고 뭐하지?


일단 막막해했다.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나는 깨달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사실을. 그리고 그게 문제라는 사실까지.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문제라는 사실이 이상하다는  나도 알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없어서 있다는  앞뒤가  맞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가 일을 하면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쌓이는 중이었다.  전전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비슷한 느낌의 스트레스였다.


전전 직장은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동시에 이 한 가지 문제가 결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월급이 안 나왔다. 순항 중인 줄 알았던 배가 알고 보니 난파선이었고 선장은 선원들을 버릴 계획만 짜고 있었다. 앞에서는 선원들을 달래면서 뒤에서는 1인용 구명보트를 만들고 있었다. 월급이 안 나오니까 모든 것이 문제가 되었다. 상사에게 업무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돈도 못 받고 일하는데 왜 이걸 제대로 해야 하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회사도 너무 멀게 느껴졌다. 회사 사람들이 웃으면 웃는 대로 싫고 안 웃으면 안 웃는 대로 싫었다. 대학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이라 원래 이렇게 월급 좀 밀리는 거 별 일도 아닌데 나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몇 번이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내가 괜히 사람들 흔드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두 달 반을 더 다니고 퇴사했다. 밀린 월급을 받아내려고 사장과 연락을 시도하고 노동청에도 다녀왔다. 내가 퇴사하던 날 그 당시 내 사수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 일 하지 마, 여기 이런 일 비일비재해”


나는 ‘그래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들어간 곳은 인공지능에 활용되는 챗봇 데이터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회사였다. 나는 예시 문장을 같은 의미의 다른 문장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예를 들면 ‘밥 먹었어?’ 같은 문장이 있다면 ‘식사는 했어?’ 같은 문장으로 바꾸는 식이다. 4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고 퇴사 후 들어간 곳이 바로 문제의 문제가 없어서 문제인 회사였다.


문제의 회사는 월급이 밀렸던 전전 직장과 같은 업계의 회사였다. 나는 사보, 그러니까 회사 잡지를 만들어주는 대행사에 다녔었다. 주로 공공기관의 소식지나 지역 신문 제작 일을 맡아서 했다. 문제가 없는 회사는 몇 가지 잡음이 있긴 했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고 전 직장보다 돈도 많이 주고 출퇴근도 용이하고 점심도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여섯 시 땡 치자마자 퇴근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 계약직도 아니라 웬만해서는 잘릴 걱정도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 한 달에 열흘 정도는 할 일이 없어서  친구들과 메신저로 사담을 나누다 퇴근하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지향하는 생활 문학인의 삶을 꾸리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근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전전 직장은 문제가 많은 곳이었으니까. 사흘에 한 번은 취재가 있었고 한 달에 열 개도 넘는 원고를 써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지방 취재를 가야 했으니까. 왕복 네 시간 가까이 되는 회사를 매일 같이 왔다 갔다 했으니까. 그런데 심지어 월급까지 안 나왔으니까. 충분히 스트레스가 쌓일 만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취재는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였고 그것도 지방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서울 혹은 서울 근교에서 진행되는 취재인 데다가 분량도 길지 않았다. 나에게 모질게 구는 사람도 없었다. 밥 먹고 마시는 커피도 상사들이 다 사줬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는 대체 뭐지?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 그 무렵 상사들은 내게 ‘이쪽 일 계속할 거면 성격을 좀 더 외향적으로 바꿔야 돼’ 같은 말이나 ‘이쪽 일 계속하려면 더 배우고 더 잘해야 돼’ 같은 말을 했었다. 이쪽 일을 계속하려면. 나는 이쪽 일을 계속하기 위해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고 싶지도, 더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다. 그냥, 그냥 1년만 버티자 싶다가 이번 달만 다니자 싶다가 이번 달을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그래서 일단 퇴사를 했다. 이다음에 어떻게 할지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퇴사부터 했다. 사람들에게는 글 쓰고 싶어서 나간다고 했지만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는 걸까? 친구들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데 서른 살도 훌쩍 넘은 나이에 싫다고 나가는 건 너무 철없는 행동 아닐까? 싶었지만 철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


퇴사 날짜가 정해지고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기도 했다. 이제 어떡하지? 퇴사하고 나면 그때부턴 뭐하지? 일단 나는 막막해했다. 어떻게 하면 생활 문학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조급해했다. 퇴사는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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