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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Aug 21. 2021

우리만 아는 슬픔들 <9>

집 앞 공원의 배드민턴

집 앞 공원의 배드민턴


얼마 전부터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늘 하던 슬로우 버피가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몸만들기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터라 재미가 없으니까 너무 하기가 싫었다. 그냥 지금보다 좀 더 충실히 살려고 하는 건데 힘들기만 힘들고 재미가 없다. 


집에서만 하니까 재미가 없나 싶어 동네를 뛰기도 했다. 재미없었다. 뿌듯함은 동네 한 바퀴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그만 뛰고 싶으면 그만 뛰었다.  뛰고 싶지 날에는 뛰지 않았다.  사실 뛰고 싶지 않은 날은 안 뛰면 그만이다. 그만이긴 한데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은 날은 충실히 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운동이 주는 자아효능감이 큰만큼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도 컸다.


올림픽을 보니까 네트 스포츠가 재밌어 보였다. 특히 배구가 가장 재밌어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배구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배드민턴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만 있어도 할 수 있고 몸끼리 닿을 일도 없다. 사실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을 좋아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몸끼리 닿는 게 싫기 때문이었으니까. 네트를 두고 경기를 한다는 건 아주 큰 메리트였다.


이틀에 한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삼일에 한 번씩 나와 친구는 집 근처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주로 밤에 쳤기 때문에 야광 셔틀콕도 샀다. 우리는 주고받기 같은 건 하지도 않고 그냥 점수 내기만 냅다 했다. 두세 판 연속으로 게임을 하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대충 바닥에 주저앉아서 파워에이드를 벌컥벌컥 들이켜면 약간 청춘인 것 같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땀범벅이 된 채로 집에 돌아가면 브이로그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우리는 자주 배드민턴이 얼마나 우리와 잘 맞는 운동이고 이 운동이 얼마나 운동 효과가 있는지 배드민턴을 쳐서 살이 얼마나 많이 빠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배드민턴을 치는 만큼 작업 시간은 줄었지만 내게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더 중요했다. 


얼마 전에는 에어 셔틀콕을 샀다. 공기 저항을 줄여줘서 바람이 부는 날에도 배드민턴을 칠 수 있게 해주는 셔틀콕이다. 근데 또 불빛이 나는 야광 에어 셔틀콕은 없어서 밝은 곳에서 쳐야 한다. 그리고 밝은 곳은 네트가 안 달려 있어서 요즘은 네트를 하나 살까 고민 중이다. 


서브를 주다가 바람이 불면 잠시 멈춘다. 가만히 서서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데 그때 부는 바람이 꽤 좋다. 출근도 하고 운동도 하고 나는 요새 꽤 충실히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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