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물속의개구리
끓는 물속의 개구리
날씨가 덥다. 덥다 못해 뜨겁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다. 방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선풍기를 더 세게 틀었다가 펜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다시 낮췄다가 반복한다. 그러다 새벽에 잠들기 일쑤다.
작업도 집 앞 카페에서 하고 있다. 그 이상은 걸어갈 자신이 없다. 버스를 타고 작업실에 갈 수도 있지만 작업실은 에어컨이 없다. 지하의 습한 공기를 견디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작업실에 있는 노트북 충전기도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기껏 구입한 블루투스 키보드는 잘 쓰지도 않고 있다. 노트북 스페이스바가 잘 안 눌려서 샀는데 사자마자 다시 잘 눌린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건 계절이 아니라 재난이야.
요새 들어 이 말을 자주 한다. 정말 재난처럼 느껴지는 날씨다. 인간이 드디어 업보를 치르는구나 싶다. 최근에는 환경 관련된 기사도 많이 보고 있다. 많이 찾아보는 건 아니고 그냥 많이 보인다. 우리가 버린 헌 옷이 다른 나라에 산처럼 쌓여있다던가 하는 기사들.
분명 여름 날씨다. 원래 여름은 더운 게 맞다. 근데 이번 여름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위화감이 드는 요즘이다. 며칠 전에는 양산도 하나 장만했다. 양산을 써도 뜨거운 건 마찬가지라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주변에서도 양산을 산 사람이 더러더러 보인다. 중년 여성분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무더위 앞에서는 그런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제는 폭염 특보인가 경보인가가 있었는데 그렇게 안 더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더위에도 익숙해지는 걸까? 어쩌면 멸망은 펑하고 폭발하듯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멸망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멸망하는 거 아닐까? 그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실험처럼 말이다.
이 재난 같은 더위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올 겨울은? 내년 여름은? 어느새 마스크도 답답하지 않고 더위도 처음보다는 견딜만한 것 같다. ‘코로나 끝나면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은 이제 ‘밥 한번 먹자’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세상이 통째로 끓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근데 그 불을 우리가 올렸다. 그 불을 우리가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