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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Mar 14. 2022

20세기 떡볶이

일 인분에 오십 원. 내 곁을 지켜 준 든든한 맛의 추억


 '엄마, 나 떡볶이 배달시켜 먹을 거야.'


 서울 자취방에 아들을 데려다주러 가는 차 안에서 딸이 보낸 문자를 보았다. 결제 금액 만 팔천 원이 찍혀있다. 떡볶이를 시킨다고 했는데 웬만한 브랜드 치킨값이라 놀랐다. 운전하고 있는 남편에게 결제된 떡볶이 가격을 말해주니 그걸 시켜줬냐며 야단이다. 어떻게 떡볶이 가격이 치킨 가격일 수 있냐는 나와 같은 반응. 인생의 반 이상을  20세기에 살았던 남편과 나에게 떡볶이는 적은 돈으로 영혼도 배도 채울 수 있었던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 떡볶이 가격이 나날이 오르고 있다. 레시피가 다양하고 재료가 풍성해졌음에도 아이들이 배달시켜 먹는 엽*떡볶이, 로* 떡볶이, 달** 떡볶이 등 그 가격엔 여전히 놀란다.


 지금 우리 마을엔 만만한 떡볶이 가게가 없기도 하고 음식을 브랜드 따라 도장깨기 하듯 먹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종종 배달비까지 붙은 떡볶이를 시켜 주게 된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맛보라며 내 입에 넣어주는 맵고 달고 느끼하고 짭짤한 다양한 레시피의 떡볶이를 먹다 보면 떠올리게 되는 맛이 있다. 마치 턴테이블 위에 엘피판이 놓여 있어 무심코 바늘을 올렸을 뿐인데 지지직거리며 음악이 흘러나오듯 그렇게 아련하게 떠오르는 맛의 추억. 우리 세대는 공감하는 학교 앞 떡볶이 내지는 시장통 떡볶이의 기억 말이다.


 "당신, 떡볶이 언제 처음  먹어봤어?"

 남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엔 분식집이 없었어. 대신 방학이면 대구에 있는 누나 자취방에 놀러 갔었는데 거기 시장에서 먹었지."

 "아! 대구엔 납작 만두에 싸 먹는 떡볶이가 기가 막힌데! 캬 먹고 싶다. 그래도 어릴 때 먹던 국민학교 앞 떡볶이가 최고지! 학교 앞에 떡볶이 가게가 없었다니...... 너무 안타깝다! 나 때는 말이지......"




 '한 개에 십 원, 떡볶이판 앞에 있는 포크로 집어 먹으면 돼. 몇 개 먹었는지 기억하고, 먹은 만큼 아줌마께 돈 드리면 되는 거야.'


 국민학교 1학년 하굣길. 분식 골목엔 어묵과 떡볶이가 뿜어내는 맵고 달콤한 냄새가 거리의 공기를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그곳을 매번 무심히 지나가기는 힘들다. 콧속을 파고들어 온 기막힌 냄새의 자극은 아는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놓는다. 커다란 떡볶이판 속에서 보글보글 거품을 뿜으며 끓어오르는 붉은 양념들 사이, 윤기 좔좔 흐르는 매끈한 떡과 어묵이 엉켜있다. 주걱으로 휘휘 저을 때마다 살아있는 생선들처럼 떡과 어묵은 번뜩이며 튀어 올라 내 입 속으로 척척 들어오는 상상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 오늘은 반드시  떡볶이 다섯 개를 사 먹을 거야!'


 오빠에게 전수받은 떡볶이 사 먹는 법을 중얼거리며 주머니 속  동전 두 개를 만지작거리는 손바닥엔 땀이 배어났다. 떡볶이를 먹으려면 일단 성처럼 둘러싼 언니, 오빠들의 어깨를 뚫고 팬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도 집어먹을 포크가 없으면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동안 떡볶이가 다 팔리기도 한다고 했다. 여덟 살 어린 나에겐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이 어려운 시험 같았다. 결전의 날, 나는 무사히 내 자리를 잡았고 포크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바라본 떡볶이는 붉은 양념지게 붙은 모양새가  매워 보였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의 포크질은 계속되고 있었기에 맵기를 재고 따질 것 없이 나도 손가락만 한 떡볶이를 푹 찔러 입에 넣었다. 세상에! 몸의 세포가 움찔할 만큼 맛있었다. 처음 계획과 달리 떡과 어묵을 백 원어치나 먹어버리고도 떡볶이 옆 꼬치 어묵, 그 옆 고구마 맛탕까지 눈에 들어왔다. 안돼! 안돼! 나는 그 음식들을 외면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교사셨던 엄마가 시골 학교로 통근하게 되면서 나에게 주고 간 하루치 용돈은 이 백 원이었다. 엄마는 오후 5시 30분이 되어야 돌아오시니 그동안 이 돈으로 허기도 채우고 심심함도 달래야 다. 분식점에서 오십 원어치 떡볶이를 사 먹고 문구점에 들러 종이 인형을 살 계획을 세웠다. 떡볶이는 허기를 달래주고, 종이인형은 지루한 하굣길 상상의 친구가 되어주니 이 코스는 필수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엄마가 싸놓고 간 도시락을 먹고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다 오후의  출출함은 구멍가게 과자로 달래면 된다. 그런데 떡볶이를 먹어 본 이후 참새 방앗간처럼 분식점을 드나들며 잡비의 절반 이상을 써버려 새우깡 같은 과자는 못 사고 오래 씹을 수 있는 껌이나 네거리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를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같은 학교로 전근을 오시고 등하굣길을 함께 다니면서 분식집 나들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고학년이 되기도 했고, 엄마랑 종일 같이 있는 게 외롭지 않아 좋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국민학교 저학년 3년 동안 받은 용돈에 설렜고 혼자 보냈던 다섯 시간의 자유를 제법 근사하게 즐긴듯하여 나에겐 그 시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부모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자신의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존재다. 혼자 있기에 오감을 풀가동하여 세상을 탐색하고 위험한 것들을 예민하게 파악한다. 무엇보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거리에 집중한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길을 걸어 학교에 가고, 하굣길에 맛있는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어서 든든했고, 오후 5시 30분쯤 어김없이 고갯마루를 올라오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안심했던 나날들. 그렇게  어린 나는 살만한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서울 집에 도착하면 우리도 떡볶이 먹어야겠네."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이어지던 떡볶이와 어릴 적 나의 소회를 들은 듯 뒷좌석에 앉은 아들이 배달앱을 켜며 말한다.

 "20세기 스타일로 시킬까? 21세기 스타일로 시킬까?" 묻는다.

 "21세기 떡볶이는 뭔데?" 내가 물었다.

 "21세기 떡볶이 스타일은 개성이지. 로제, 치즈, 엽떡, 차돌박이에 오징어 들어간 떡볶이 등 다양해."

 "아! 기본 떡에 여러 재료를 섞고 어울리는 소스도 개발하며 떡볶이도 어엿한 요리의 반열에 올랐구나! 거기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배송비까지 붙으니 덩달아 가격이 높아졌고, 그렇게 생각하니 비싼 이유에 조금은 수긍이 기도 하네. 그래도 엄만 떡볶이 하면 만만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와 예상 가능한 그 맛이 좋아. 20세기 스타일로 시켜줘."

 "평점 5에 '부산 할매 떡볶이'가 있네. 여기 시킬게."

 "순대랑 쫄면도 시키고." 아빠도 거든다.

 아들은 휴대폰으로 결재하고 주문 완료를 외친다.


  어린 시절 과자 한 봉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과 몸의 허기를 채워주던 떡볶이의 기억. 언제나 곁에 있는 친구 같던 음식이 만만치 않아진 게  나는 못내 서운했나 보다. 그러나 떡볶이는 몇 세기를 거쳐 변화하는 시대상과 유행, 입맛을 사로잡으며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는 대표 간식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 한 자락 뽑아낼 수 있는 맛있는 떡볶이가 우리 곁에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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