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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Dec 04. 2021

할머니의 장미 꽃다발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투명한 유리문 냉장고 안엔 계절이 무색하게 화려한 빛의 장미들이 가득하다. 내가 찾은 이 꽃집은 특히 장미가 눈길을 끈다. 갖가지 색의 로맨틱하고 앤틱 장미부터 하늘하늘한 빈티지 미니장미들이 안개꽃, 미니국화, 미스티 블루, 유칼립투스, 레몬트리 같은 식물들 사이에서 싱그럽게 반짝이고 있다. 사장님께선 꽃을  선물 받을 분의 취향을 묻곤 따뜻한 느낌의 파스텔톤 장미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특히 붉고 노란빛이 그러데이션 된 주홍장미는 할머니의 정원을 떠올리게 했다.



 할머니의 정원은 앵두, 석류, 대추 같은 열매가 철마다 열리고 그 아래 계절 꽃들이 갖가지 색으로 피어나, 싱그런 잔디와의 어울림이 풍성했다. 특히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엔 향기마저 돋아나 그윽한 생기가 집안을 감쌌다. 봉오리를 펼친 장미는 더러 내 얼굴만 한 것도 있었는데 할머니께선 크고 가장 예쁠 때 장미를 잘라 집 안에 꽂아두고 선물도 하셨다.

 그날도 학교 가려고 나서는 길에 함박 피어난 장미를 다듬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다. 가시를 다듬은 빨강, 노랑, 하얀색의 장미꽃을 한 묶음 손에 쥐고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에 누구 주시려나 보다 생각하며 마당으로 내려서던 참이었다.


 "해야. 선생님께 꽃 좀 갖다 드려라."


 벙글벙글 웃으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곁에 서서 장미꽃들이 이쁜 포장지에 싸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할머니는 마루에서 신문지를 가져다 조심스레 꽃을 싸시는 것이다. 하늘 같은 선생님께 드리는 꽃인데 꽃집에서 파는 안개꽃을 두른 장미는 아니어도 신문지에 싼 화단의 장미라니 화끈 부끄럼이 일었다.


괜히 받았다는 생각에 꽃을 들고 걷는 길이 더디기만 했다. 다리 위를 지날 때면 저 강물에 던져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미 꽃다발을 든 내 손이 땅으로 축 쳐지면 꽃들은 쏟아질 듯 땅을 보고, 할머니를 떠올리며 가슴께로 고쳐 들면 꽃들은 다시 하늘을 향해 숨을 쉬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교실에 들어서고,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은 해야가 장미꽃을 들고 왔다며 내게로 몰려들었다. 수업 준비하시던 선생님도 나를 쳐다보시니 어쩔 수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께 꽃다발을 내밀었다.


"너무 이쁜 장미네. 누가 키우신 거야?"

"할머니께서......"

"할머니께서 솜씨가 좋으시구나! 이렇게 탐스러운 장미를 키우시려면 손이 많이 가실 텐데.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선생님께선 캐비닛에서 화병을 꺼내 물을 담고 장미를 꽂아 선생님 책상 위에 놓아두셨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차던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싱그럽게 빛나던 장미들. 선생님 책상 위 한자리를 차지한 장미들을 힐끔대며 자꾸만 두 볼이 빨갛게 익어가던 그 날, 그 시절들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할머니와의 아름다운 기억이다.




 풍성한 주홍과 노란빛의 빈티지 장미를 메인으로 싱그러운 그리너리로 빈 공간을 채우며 투명한 비닐지에 심플하게 쌓인 장미 꽃다발을 건네받고 거리로 나섰다.

 너에게로 가는 길. 맑고 시린 초겨울의 바람 속에 장미 향이 스민다. 우리는 순간의 이미지로 많은 것들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문득 주홍 장미가 오랜 기억 속 어느 날을 생생하게 살려내듯이.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너에게 기억될까......

가슴께에 끌어안은 장미 꽃다발이 두근두근 너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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