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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n 21. 2022

일렁이는 보랏빛 주얼리

삶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언니의 선물


언니에게 자수정 주얼리 세트를 받았다. 반지와 목걸이 구성인데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우니 딱 맞다. 보랏빛 물결이 일듯 자수정 반지가 조명 아래 반짝인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 따라 시장 다니길 좋아했다. 내 눈엔 미로처럼 얽혀 있는 시장통을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찾아다니던 언니는 어른들 심부름을 곧잘 하고 필요한 것들을 사다 날랐다. 시장 조사도 철저해서 목표한 물건을 최저가에 사 와 칭찬도 많이 들었다. 집에서부터 시장이 멀었기에 크고 무거운 할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언니는 씩씩했다. 마음만큼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차와 사람이 섞여 다니는 복잡한 시내 길에선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런 게 언니의 즐거움을 막을 순 없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좋은 물건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언니의 숨 쉴 틈이라고 웃는다.


 생각해 보면 언니와 나는 성향도 취향도 다른 자매라 많이도 투덕거리며 정을 쌓은 듯하다. 쇼핑에 별 관심 없던 내가 매번 언니의 꼬드김에 넘어 동네 시장부터 부산 남포동 거리, 백화점, 쇼핑몰을 많이도 다녔다. 지칠 줄 모르는 언니의 체력에 혀를 내두르며 결국 화내고 싸우다 돌아오기 다반사였지만 그때가 지나면 또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다. 그런 언니가 시집을 가고 한동안 얼마나 적적하던지. 한방을 쓰느라 언니 눈치 보며 듣던 라디오도 맘껏 듣고, 밤 늦도록 불을 켜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데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런 게 언니가 시집간 거구나! 창문을 열지 않아도 어딘가 바람이 새어들 듯 허전함이 윙윙 돌아다녔다. 그 빈자리에 언니의 마음이 담긴 선물들이 대신해 우리 집에 찾아들었다.


  이곳저곳 발품을 파는 언니답게 보내주는 품목도 다양했다. 옷, 신발, 가방은 물론 생필품 전반에 걸친 물건들이 택배 상자에 담겨 배달되기도 하고 만날 수 있을 땐 직접 선물처럼 주었다. 어느 해부턴 언니를 꼭 닮은 아기자기한 주얼리를 선물해 주기 시작했다. 아마 엄마를 챙기다 보니 또 동생이 맘에 걸렸나 보다. 이쁜 걸 좋아하는 천성이니 자신도 꾸미고 싶을 텐데 한결같이 스스로는 검소하고 알뜰하게 생활하면서 가족을,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언니다. 언니가 내게 준 진주 목걸이, 금팔찌, 반지 등 예쁜 주얼리를 보고 있으면 그 속이 궁금해지곤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걸 먼저 챙기게 되는지라 예쁜 물건 앞에서 자기 대신 동생 걸 사는 언니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언니도 나도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닌데 언니가 가족에게 쓰는 마음은 넉넉하여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가, 걱정했다가, 부담되기도 다. 열 개를 받으면 한 개라도 보답해야 도리인데 시장 물정에 밝은 언닌 내가 고른 물건이 품질에 비해 비싸다며 마다하고, 차선으로 맘에 드는 거 사시라 현금을 주면 다시 내 물건을 사서 되돌려 준다. 억지로 매장에 같이 가면 동생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저렴한 물건을 고르는 다정하고 여린 언니라 고마움과 더불어 나의 부채감은 늘어만 갔다. 이런 나이기에 언니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가고 언니 일이면 감정이 먼저 달려들어 참견해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놓치고 있음을 그 당시엔 몰랐다.


 가끔 사는 게 별 재미없다는 언니의 푸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득해져선 어느 구멍으로 언니의 행복이 새 나가는지 신경 쓰였다. 언니와 통화를 하다 보면 자신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듯하여 그것도 염려되었다. 최근 서점에 가보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나다운 행복을 찾아가는, 관계 중심 사고에서 개인 중심 사고로의 전환을 다룬 책들이 눈에 띈다. 내가 행복해야 나와 관계 맺는 타인도 비로소 행복해지지 않나 생각하는 나이기에 이런 시류에 동의하는 바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언니의 이타적인 삶의 모습이 관계에 중심을 두고 참고 견디는 삶인 듯하여 안타까웠다. 그러기에 언니의 작은 투정에도 발끈하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런 나에게 언니는 그냥 좀 '힘들었구나.' 하고 들어주면 안 되냐며, '어쩜 너는 나에게만 그렇게 잔소리를 하냐'라고 한숨지었다. 그러면 난 또 미안하고 답답해지길 반복했다.


 가족이기에 우린 서로를 걱정한다. 크고 작은 일에서부터 조그만 욕망에 까지. 서로를 위해 작은 도움이 되고자 마음도 쓴다. 때론 그 마음이 지나쳐 상대를 오해하기도 하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주입시키려 애쓰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주입인지 본인은 깨닫지도 못한 채. 나도 언니에게 그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들었다. 사랑하는 언니와의 소통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지점이 어디일까? 파사삭 깨져 버리기 전에 이해의 밴드를 붙여야 하는데 그 지점이 뭔지 이 글을 쓰며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언니는 관계가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끼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마음 쓰는 것이 내 마음 돌보기보다 더 우선인 사람. 고마운 마음이고 귀한 마음이다. 내가 갖지 못한 언니만의 장점이고 고유한 성정이다. 언니가 보내는 하루하루엔 그 다운 선택이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가 보람되거나 힘들 때도 있을 테지만 모든 것이 언니 삶의 고유한 질서다. 나는 그 질서를 흔들고 상처 낼 권리가 없다. 단지 동생으로서 그런 언니와 함께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앨리스 워커의 소설 <컬러 퍼플>에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 거라는 문장이 있다. 세상엔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세상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감사하면 그뿐. 거기에 무슨 이유와 분석이 필요할까. 언니가 보여주는 마음. 그 마음엔 가족을 챙기는 따뜻함과 애틋함이 가득하다. 그 마음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언니가 물들이는 보랏빛 세상을 함께 공유하고 느끼고 사랑하면 된다. 손가락에서 자수정 반지를 빼 보석함에 꽂았다. 목걸이와 한 세트로 반짝이는 주얼리가 참 예쁘다. 언니가 좋아하는 것들이 내 삶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조명 빛에 일렁이는 보랏빛 자수정 너,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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