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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예령 Oct 02. 2023

10. [자재] 자연의, 재료의 진정성

캐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전하는 자연주의 인테리어 이야기


   




가장(裝) 과 대채(替), 이 개념은 실내 디자인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화두였어요. 어쩌면 무언가를 ‘가장한다.’ 라는 것은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반복하고 발전시키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지요. 분명 이점들이 많으니까요. 대리석이 생산되지 않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건물을 대리석으로 마감했던 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재현하기 위해 목재 위에 대리석 질감의 칠을 했습니다. 현재는 어떨까요? 여전히 대기업 인테리어 자재회사들은, 대리석 무늬의 강마루를 (*강마루는 진짜 나무 마루가 아닙니다.), 대리석 무늬의 필름지를, 나무 무늬의 PVC 부엌장을 더 예쁘게- 더 편리하게-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건축가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 은 건축 또는 실내건축에 있어서 위조 (deceit) 를 다음과 같이 정의 했었습니다.


거짓된 구조나 지지 방식을 제시하거나, 표면을 칠해서 본래 재료를 다른 재료처럼 보이게 하는 행위이다. (Ruskin J, 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 1849)


      







인테리어 디자인/시공의 마감에 있어 ‘표면에 대한 속임수’ 는 재료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특정 재료가 가진 특정 특성을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비용이나 시간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죠. 우리는 그것 때문에 ‘재료의 진정성’을 포기하고, 그 재료가 가진 표면적인 성질 하나만을 표현하는- ‘재료의 가장’ 의 유혹에 빠집니다. 진짜 무늬목 벽과 천장으로 집안을 마감하고 싶은데, 무늬목은 비싸기 때문에- 무늬목 무늬의 필름지를 벽 위에 덧바르는 것 같은거 말이예요.      


하지만요, 특정 재료를 어떤 특정 공간에 사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재료의 진정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재료를 쓴다는 것은, 그 재료의 ‘물성’ 과 ‘특성’을 그 공간에 반영하기 위해서이지요. 표면적 무늬가 아름다워서 그 자재를 쓸 때는, 그 표면적 무늬는, 자재가 지닌 수많은 특성중에 하나이겠죠. 만약- 우드로 벽체를 마감하고 싶은데- 그게 그 우드가 지닌 ‘색과 무늬’ 뿐이다. 그럼 우드 무늬를 낸 그 어떤 다른 자재 (필름지) 등을 써도 되겠지요. (필름지가 환경을 해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요.)     

기술의 발전으로 싸고 그럴듯한 자재들이 쏟아져나오며, 표면적인 미관에 대한 욕심은 거짓 재료의 사용을 더욱 더 우리를 부추겼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이런 일들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저는 자재는-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재는, 공간의 본질과 특성을 잘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재료가, 진정성을 유지해야한다는데에는 세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표면적 진정성입니다. 어떤 자재를 고를 때 그 자재는 그 상징성을 유지해야합니다. 나무, 혹은 원목을 사용한다면, 사용한 자재가 나무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나무처럼 보이게 만든 비닐이라면, 그것은 나무가 아니겠지요?     


둘째, 기능적 진정성입니다. 가짜를 사용한다면 특정 재료가 가진 기능적 특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요. 대리석처럼 보이기 위해 칠을 한 마누 판자는, 절대로 그 대리석의 단단하고 차가우면서도 고급스러움을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나무가 아닌 나무무늬 비닐을 가공한 강마루는, 절대로 원목마루가 가지는 그 질감과 보행감을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원자재를, 그렇게 보이는 다른 재료로 대체하는 것은- 그 재료의 물리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셋째, 인간과 환경에 대한 진정성입니다. 가짜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데코타일이나 강마루) 이나 비닐 (실크벽지나 필름재)입니다. 이는 곧, 썩지 않는 환경 쓰레기를 제조하는거죠. 지구를 해치는 일- 우리 지양하는거 맞지요? 또한 이러한 것들을 ‘그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화학재료를 다량으로 사용하게 되겠지요? 색칠을 해야하고- 본드를 붙어야 하구요. 나무무늬를 내기 위해 코어재에 합성수지를 가공하는 것이 그 예인데요- 아, 포름알데히드 방출량 높아지는 소리가 저절로 들리네요.      














우리는 지금도, 재료의 본성을 일은 채 마감된 공간이나 가구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원목처럼 보이지만 나무무늬 비닐이나 합성수지를 씌운 부엌장, 진짜 마루처럼 보이지만 나무무늬 필름지를 씌운 강마루 등- 지금 바로 고개를 들어 집안을 둘러봐보세요. 세상에나- 엄청 많지요...? 일본의 유명한 자연주의 건축가 쿠마 켄고 (Kuma Kengo, 1954~) 는, "그동안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오직 ‘어떻게 보이는가’ 에만 집중했다." 고 지적했어요. 말하자면, 겉치레나 표면적인 효과를 위한 기술만으로 경쟁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건축가 쿠마 켄고 ⓒ Tatler Asia



돈, 그러니까 가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재료’ 의 진정성에 가장 큰 적일거예요. 비닐에 대리석 무늬를 입혀 벽에 바라는 일은, 원자재 가격이나, 시공 가격 등에서 차이가 나지 않으면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국내 부엌 가구 대기업에서 인조대리석과 유사하지만, 심지어 더 좋지 않은 배합물 UP (Ultrahigh molecular Weight Polyethylene) 로 만든 상판을 제조하여 이를 밝히지 않고 광범위하게 유통하여 문제가 야기 된 적도 있습니다. 이는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기업이 충분히 진행 가능한 일이지만- ‘진짜’ 로 공간을 채우는 일, 그리고 자연스러운 건축을 하는 일, 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사회적 행태이기 때문에 많이 씁쓸했어요. 우리집 바닥을 ‘가성비’를 위해 나무 무늬 필름지를 입힌 합판을 깔지, 제대로 된 원목마루를 시공할지- 혹은 우리 집 부엌 가구의 상판을 천연대리석으로 선택할지, 인조대리석으로 선택할지는 언제나 건축주의 몫입니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가격이 싸고 관리가 조금 용이하단 이유만으로 당연히 ‘인조대리석이요.’ ‘가장 견적이 낮은 거 중에 고를게요.’라고 하고 넘어가기에는,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을 수도 있지요. 우리, 다 함께 한 번만 더 고민해 볼 수 있을까요...?











l 민예령ㅣ
캐나다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했고 캐나다 밴쿠버 (KKCG / ONNI GROUP) 에서 실무를 쌓았습니다.
현재 한국에 돌아와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며 서울에서 인테리어설계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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