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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Feb 06. 2022

무기력의 동굴

#우리#이렇게#이겨내요

화장실에 다녀오다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까맣게 꺼진 눈과 마주쳤다.

깊게 파이기만 해서 동굴의 입같이 보이기도 했다. 빛이라고는 한 줌 없는.
맞다. 나는 요즘 긴 무기력의 동굴을 지나는 중이다.



처음엔 그냥 되게 잠이 쏟아진다고 생각했다.

방학 내내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공간이 보이면 눕고 시간이 나면 잠들었다. 원 없이 자고 일어나서 새해 계획도 세우고 책도 읽으리라.

며칠이 더 지나니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나는 자동적으로 나의 게으름을 비난했다.

고 며칠 사이에 나태함을 습관화했느냐고, 어서 당장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라고.

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이러냐 하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 생각마저 사라졌다.

더 이상 잠이 오지도  무언가 먹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저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 거였다.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 동영상만 훑어 내리면서 멍한 눈으로 화면만을 응시했다.
이래서야 내가 동영상을 보는 건지 동영상님이 나를 봐주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기력하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무기력이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 아픈 걸까?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우울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그냥 무기력했다. 공허했다. 배고프지 않은데 허기가 졌다.

 


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오래간만에 옷을 바꿔 입고 선크림을 발랐다. 드라이브라도 다녀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준비가 다 끝나도 도무지 의자를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였다.  이쯤 되니 나에게 찾아온 이 무기력의 동굴이 덜컥 겁나기까지 했다. 나 영원히 여기 갇히는 거 아니야? 계속해서 마음으로 소리 질렀다. 당장 일어나! 뭐라도 하란 말이야!


결국 제자리였다. 해가 지고 방안은 캄캄했다.  등불 없이 홀로 계속 걷는 기분이었다. 주변은 고요한데  내 숨소리는 너무 컸다. 출구는 있을까, 아득했다.


그런데 이 긴 동굴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저절로 느껴지는 게 있었다
아. 지금 내 어딘가에 구멍 난 곳이 있구나.
어딘지모를 큰 구멍이 났고 그래서 공허하고 무기력하구나.
그리고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그 구멍을 메우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그러니 나한테 일어나라 잔소리하지도, 당장 움직여라 윽박지르지도 말아야겠구나.


길에 난 구멍 하나를 메우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지런히 흙도 퍼서 덮어줘야 하고  단단히 다져도 줘야 한다. 또 몇 번의 비와 바람도 지나가야겠지. 단시일에 되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게 난 구멍을 메우는 사람 역시 바로 나다. 지금 고장 난 것처럼 보여도, 나 자신을 튼튼하게 고쳐 낼 나를 안다. 다시 건강히 내 마음을 작동시킬 나를 신뢰한다.

그러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일 것이다. 동굴의 끝에서 눈부셔하며 나올 나를, 나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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