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라 19 극복
몹쓸 바이러스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외톨이가 되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마스크 증후군에 걸려 멋진 미소와 예쁜 입술을 못 본 지도 오래다.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공중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작은 욕조에서 오그리고 앉아 씻다 보니, 허벅지에 있는 흉터가 더 뚜렷하게 보여 그때 일이 생각났다.
반백 년도 더 지난, 얼치기 농사꾼 시절 이야기다. 낮에는 주로 지게질을 하고, 밤에는 통신 강의록으로 독학하면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애면글면하던 시기였다.
추수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가끔 미열이 나다가 추워지기를 반복했다. 으레 몸살·감기쯤이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동안 구토와 설사를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읍내 병원으로 실려가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았으나 오히려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읍내 작은 병원에는 정확히 진단할 의료진이나 의료장비도 없었다. 문진(問診)한 의사가 '전염병인 장티푸스로 의심되지만, 치료할 시기를 이미 놓쳤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애걸복걸해서 며칠 동안 더 입원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숨쉬기조차 힘들고 종종 까무러치기도 했다. 원장이 ‘이 병원에서는 더 치료할 것이 없으니, 도시 큰 병원으로 가든지 아니면 퇴원하라’라고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 재산의 절반이 넘는 소를 팔아 그때까지 병원비는 어렵사리 부담하고 있었지만, 더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어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고열로 혼절을 거듭하다가 사나흘째 되던 날 밤, 호흡이 매우 어려워 아마도 내 생의 마지막 날이 아닌가 싶었다. 부모님도 짐작하시고 내 머리맡을 지켰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을 향하여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매달렸다.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도 했다.
이 땅에 태어나서 꿈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온갖 정성으로 키워 주신 부모님에게 효도는커녕 먼저 가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해 달라고 애원도 했다.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이었다. 내 머리와 팔, 다리가 각각 다른 독립된 개체로 분리되어 서로 격렬하게 싸워댔다. 탐독했던 현대소설의 주인공들이 여러 명 등장해서 싸움을 구경하면서 부추겼다. 또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 서너 분이 나타나서 ‘여기서 당장 돌아가라!’라고 꾸짖었다. 깨어난 후에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벽녘에 심하게 구토를 했다. 마치 선지 같은 피고름이 반 요강이나 나왔다. 오장육부가 녹아서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다시 쓰려졌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병이 난 후,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호흡이 좀 편해졌고, 정신도 한결 맑아졌다. 어쩌면 살아날 수도 있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이 몸속 어디선가 꿈틀거렸다. 보름 가까이 곡기를 입에 대지 못하다가 그날 처음으로 쌀뜨물을 한 사발이나 마셨다.
사흘 후, 오른쪽 허벅지가 몸통처럼 부어올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 포항에 있는 큰 병원에 갔다. 의사가 진찰하려고 가위로 바지를 찢자, 허벅지에 곪아 있던 부위가 저절로 터져 피고름 줄기가 천장에 닿을 만큼 솟구쳤다.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온 후 풍선에 바람 빠진 것처럼 주저앉았다.
'오랫동안 고열로 몸속에 쌓여 있던 고름 등 불순물을 병원에 오기 전에 환자가 일부는 토해냈고, 남아 있던 것이 허벅지로 모여 곪아 터진 것이다. 흉부나 복부였더라면 아주 위험할 뻔했고, 많은 후유증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안심해도 좋으니 새살이 빨리 돋아나도록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라고 의사가 알려 주었다.
병원비도 빗으로 겨우 감당하고 있는데, 고기 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는 헌 양동이를 이고 포항 죽도시장 생선가게에서 팔 때 잘라서 버리는 꽁치 대가리와 꽁지 등을 얻어 와서 푹 고아 주셨다.
빠르게 상처가 아물어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아들에게 고기를 계속 먹이기 위해서 아버지는 꿩이나 오리를 잡으러 야산과 저수지에 금지된 독극물을 놓는 등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하셨다.
부모님이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덕분에 차츰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다. 오른쪽 허벅지에는 아직도 재생의 증표처럼 큼지막한 흉터가 남아 있다.
욕조에서 흉터를 볼 때마다 지긋지긋한 코로라 19도 새봄에는 극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해진다. 이보다 더한 병마도 이겨 내었는데 고작 코로라 19에 쓰러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멋진 미소와 예쁜 입술을 실컷 보면서 떠들고 웃는 일상의 행복을 되찾게 해달라고 비손이라도 하고 싶다.
(2020년 겨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