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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원 Sep 07. 2023

지게대학

그때처럼

          (땔감 하러 다녔던 삼성산(592m)



생각나는 친구

                                                                                       

  아침 일찍 KTX를 탔다. 동기회에 가는 길이다. 서울을 벗어나자 바깥 풍경이 빠르게 돌려보는 동영상 같았다. 터널이 많아 옛날 활동사진처럼 자주 끊어져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번 모임에는 그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허상조(가명)'도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는 나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없겠지만, 나는 가끔 그를 생각했다.


나만 반가웠던 친구 


  졸업한 지 두 해째 되는 이른 봄날이었다. 겨우내 쌓인 똥오줌을 똥장군*에 가득 퍼 담았다. 무척 무겁지만 가득 채우지 않으면 출렁거려서 지고 갈 수가 없었다. 지게에 겨우 얹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고샅을 막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먼발치에서 교복 입은 학생 세 명이 걸어왔다. 맨 앞에 '허상조'가 보였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길섶으로 비켜서서 반갑게 인사했다. “상조야, 오랜만이다! 학교 잘 다니지?” 그러자 그 친구는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얼굴을 홱 돌려서 대꾸도 없이 뛰다시피 지나가 버렸다. 같이 오던 학생들도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따라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똥장군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렸지만, 그 친구가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때마침 소소리바람이 불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렸다. 


 그 친구도 나처럼 그냥 반가워할 줄만 알았다. 그 친구의 체면이나 고약한 냄새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다. 밭에 거름으로 주려고 힘들게 지고 간 똥오줌을 고루 뿌리지 않고 한 군데 마구 쏟아 버렸다. 



지게대학 


  나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바로 입학하기는 쉬워도 졸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지게대학생’이 되었다. 한창 학교 다닐 나이에 지게 지고 일하는 아이들을 그곳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또래 학생들에 대해 부러움과 자조, 비아냥거림이기도 했다. 


 낮에는 우리 집 일하고 밤에는 일손이 부족한 이웃집 일을 돕거나 독학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당시 들불처럼 일어났던 4-H 운동에도 앞장섰다. 가난한 농촌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보겠다는 당찮은 꿈까지 꾸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다니는 게, 나만의 아픔인 줄 알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는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심한 자괴감 때문에 넘쳤던 의욕과 밥맛까지 잃고 잠도 설쳤다. 똥장군 지고 다니는 나와 친구인 것이 그렇게도 창피했을까? 이대로 살아서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것을 너무나 뻔했다. 

 

나만을 위한 꿈


 함께 잘 사는 농촌을 만들어 보겠다는 순박한 꿈을 접고, 나만을 위한 꿈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가 막노동을 하거나 광부가 되는 길 뿐이었다. 그 또한 '지게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응시자격에 학력제한이 없는 국가공무원(일반 행정직) 채용 시험 합격뿐이었다. 공무원이 된 것은 선택이 아닌 외곬이었다. 시험에 합격하려고 낮에는 농사에 전념하고, 밤이 되면 혼자 호롱불 심지를 돋우면서 책과 씨름했다. 공부가 힘들 때는 가끔 그날의 수모를 떠올리기도 했다. 2년 만에 시험에 합격하여 가까스로 지게대학을 졸업했다.


종착역


  이제는 동기생들도 거의 은퇴했다. 현역 때처럼 누가 출세했는지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보다는 누가 건강한지를 더 궁금해한다. 반세기가 더 지난 이제는 졸업 때와 흡사해졌다. 그때도 출발 지점과 주어진 시간은 엇비슷했지만 가지고 있었던 차표는 저마다 달랐다. ‘진학’이라는 정시에 오는 열차를 타기도, 생존을 위해 완행버스를 기다리기도, 아예 나처럼 차표를 못 구하기도 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이 차창에 얼핏 얼핏 스쳐 지나갔다. 정시에 출발한 동기생들을 따라가려고 늦게 온 KTX를 타고 오늘처럼 그저 빠르게 달려만 왔다. 종착역은 누구나 비슷함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말이다.


그때처럼


  어느새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상조'가 어떻게 변했을까 가장 궁금했다. 덕분에 좋은 자극제가 되어 고마웠다는 말이라도 넌지시 해야 하나?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모르고 있는데 나만 기억하는 에피소드(episode) 일 수도 있으니까 그냥  반갑게 인사만 해야지... 그때처럼. 

(똥장군과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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