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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원 Sep 14. 2023

도전하는 삶

공무원이 된 이유

  

 안정된 일자리


 내가 퇴직하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공무원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 1위에 꼽히기도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신규 공무원들을 면담해 보면 대개 대졸자였다. 9급 공무원이 되려고 다시 학원 등을 다니면서 더 공부하였다고 했다. 또, 응시하여 서너 차례 낙방을 경험한 후 합격한 경우가 많았다. 


공무원이 된 목적이나 동기도 신분보장과 연금 혜택이 있는 안정된 일자리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세상에 안정된 일자리가 있을까 싶었다. 


선택 아닌 선택 


 나는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일찍이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당시에는 산업시설이 없던 농업사회의 끝자락이어서 청년 일자리가 매우 드물었다. 응시자격에는 하나같이 학력제한이 있어 나에게는 시험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학력 제한이 없는 곳은 오직 9급 행정직 국가공무원 시험뿐이었다. 나는 공무원보다는 세계무대에서 목표에 도전하여 성취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입사 자격이 아예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공무원이 되기로 선택 아닌 선택을 하였다. 


신문 읽기


 행정직 시험은 국어, 국사, 수학, 일반상식, 법제대의가 필수였고, 영어와 경제대의 중 한 과목을 선택하는 여섯 과목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까지만 공부를 했고 3학년 때는 진학반이 아니어서 수업보다는 통속소설 등을 읽으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도 내가 공무원시험에 도전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골에서는 신문을 일주일에 두 번씩 오는 집배원이 배달하였다. 말이 신문이지 발행일로부터 사나흘이 지난 후 3일분을 한꺼번에 받아보는 신문지였다. 


 다른 읽을거리가 없어 신문에서 기사는 물론이고 광고난의 부고(訃告)까지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읽었다. 당시 신문 지면의 대부분이 한자였다.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면서 보았다. 그 결과만으로 훗날 ‘한자 1급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기사를 읽기 위하여 백과사전을 늘 옆에 두었다. 


독학(獨學)


 시험과목 중 ‘일반상식’은 신문 보는 것 외에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고, 국어 실력은 나도 모르게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 들어 본 과목인 ‘법제대의’와 ‘경제대의’는 신문 정치·경제·사회면에서 매일 보았기 때문에 수험서를 다섯 번 정도 자세히 읽었더니 예상문제 풀이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시험 보는 여섯 과목 중 일반상식, 국어, 법제대의, 경제대의 등 네 과목은 신문 읽기로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다. 


 국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한 과목이라도 점수가 모자라면 과락(科落)이 되어 합격할 수가 없었다. 기초가 없어 중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과정까지를 교과서로 공부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모르는 문제가 있어도 물어볼 곳이 전혀 없었다. 한 문제를 풀려고 10시간을 매달리거나 밤을 새우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공무원 시험 전문학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나는 농사꾼으로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산골에는 전기 시설이 없어 호롱불 심지를 높이면서 책을 보았다. 밝은 촛불이라도 켜고 공부하고 싶었지만 초을 살 돈이 없었다. 시험에서 경쟁자들보다 학력이 낮고 환경이 불리하면 그들보다 더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합격 


 다음 해 서울신문에 발표된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수험번호와 이름을 확인했다. 내 주변에서는 신문 합격자 명단에 나온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으로만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네 명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네다섯 번씩 시험을 보았지만 필기시험 합격자가 그때까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졸인 내가 단번에 합격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후, 면접시험을 거쳐 총무처장관으로부터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도전하는 삶 


  근래 유능한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상을 나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 선배로서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에 안정된 직장이나 경쟁 없는 조직은 있을 수 없다. 공무원이 사고만 없으면 신분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해마다 다양해지고 거세지는 민원인들과 무한으로 요구하는 서비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신분보장이 어려운 시대로 되어 가고 있다.


 보수는 기본적인 생활을 겨우 할 수준이고, 그 이외 수입을 생각하는 순간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공무원의 길임을 알고 선택하기를 바란다.’ 고 말해 주고 싶다. 

나도 그때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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