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관장이나 본사 높은 사람들이 601호 병실로 위문 화분을 계속 보내왔다. 하지만, 병실에는 화분을 배치할 공간이 부족했다. 본부장 비서와 공보담당이 화분 리본에 적힌 직위와 영향력, 그리고 본부장과의 친소관계 등을 판단하여 선택된 화분만 병실에 배치했다. 그것도 고정된 자리가 아니고 추가로 화분을 보내오는 사람의 신분과 영향력에 따라 그 자리를 곧 비워야만 했다.
또, 병실 방문 시간에 맞추어, 잠시 동안이지만 그 사람이 보내온 화분으로 바꾸어 놓는 것도 비서 업무이었다. 꽃의 향기 나 모양, 크기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리본에 적힌 사람 이름의 영향력만으로 판단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리다툼에서 밀려난 화분이 계속 늘어났다. 보낸 사람의 영향력이 상대적 열세로 처음부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거나 이미 문병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화분들이 602호실로 밀려왔다. 601호실 대기실 역할뿐만 아니라 자리다툼에서 밀려난 화분 보관실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선오의 사고 소식을 듣고 친척이나 친구들이 몇몇 병실을 찾았지만, 대기 인원으로 북새통인 병실 분위기와 넘쳐나는 화분과 리본에 적힌 이름 등에 주눅이 들었다. 1+1이 아닌 선오를 1로 여기고 문병 온 사람들은 병실을 잘 못 찾아온 것처럼 한쪽 귀퉁이에서 오히려 눈치를 보면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긴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 날이었다. 몸을 꼼지락거리기만 해도 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병상 머리맡에 누가 보다가 버린 석간신문이 있었다. 아마도 소파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문지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접어서 갔다 둔 것 같았다. 왼손으로 겨우 펼쳐 보았다.
대구 지방지인 ‘대아 신문’ 3쪽 사회면이었다. 지면 오른쪽 하단 구석에서 조그마한 1단 기사가 보였다. 기사 제목이 ‘보국공사 안석병 본부장 교통사고’이었고, 내용은 ‘어제 오후 6시 30분경, 구마고속도 성서 부근에서 보국공사 안석병 영남본부장이 탄 승용차를 마주 보고 달려오던 포항 동북제철 소속 철강 코일 운반 차량이 브레이커 파열로 반대 차선으로 넘어와 충돌했다.
현재, 안 본부장은 2주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이다. 동승했던 직원 1명은 8주 진단을 받았고 운전기사도 1주 진단이라고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 담당이 확인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흔한 기사일 뿐이었다.
지역본부에서도 어제 본사에 석간신문 기사와 비슷한 내용으로 교통사고 경위를 보고했다. 본사에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비서실에서도 의례적으로 회장 명의로 본부장에게 소정의 위로금과 난 화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