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원 Dec 06. 2023

4회 : 대기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무실에서 강선오 대리의 직속상관인 기획실장과 부장이 이 병원에서 유일한 VIP 병실 601호실에서 본부장의 눈도장을 받은 후, 바로 아래층 503호 병실에도 들렀다. 부장이 양손에 박카스와 구론산 한 통을 들고 왔다.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넸다.  

    

 통증이 심하여 사람을 대하기도 싫었고 대꾸하기 조차 힘들었다. 부장은 실장에게 강선오 대리가 전담하고 있는 ‘특별보고서’ 작성이 걱정이라고 보고했다. 실장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부장에게 간부들이나 직원들은 업무 시간 중에는 가급적 병원에 오지 말고, 퇴근 시간 이후에 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일과 시간 중에는 대외기관장이나 유관 단체장들이 문병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강선오 대리는 자기 병실에 찾아와서 부하 직원의 안위보다도 601호실 위문 계획과 보고서 작성을 걱정하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자기 처지가 마치 편의점에서 1+1로 판매하면서 덤으로 주는 물건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약 10분 정도 머물다가 두 사람은 바쁘다면서 병실을 떠났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 간부들이 줄지어 왔지만, 601호실에는 외부 기관이나 단체에서 위문하러 온 사람이 많아 병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기하는 동안 503호 병실에 들렸다. 대개 음료수 한 통씩 들고 와서 비슷한 유형으로 1+1 문병을 하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대기하는 임직원들이 늘어날수록 503호 6인 병실은 무척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노골적인 항의도 있었다. 상황을 보고 받은 본부장 비서실장이 강선오 대리의 병실을 601호실 같은 층 옆방인 602호 병실로 옮기라고 했다. 

    

  602호 병실은 2인실이지만 마침 비어 있어 다른 환자를 받지 아니하는 조건으로 병원 측과 협상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강선오 대리의 사정이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본부장을 위한 조치이므로 그 정도의 번거로움이나 희생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선오 역시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602호 병실로 옮겨 갔다.   

  

 함께 병실을 사용하는 다른 환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직원들과 병원 관리자들이 몰려와서 침대 하나를 꺼내고 그 자리에 어디선가 사용하던 5인용 소파를 가져다 놓았다. 선오가 사용할 침대는 한쪽 구석으로 몰아놓아 병실이라기보다는 대기실로 보였다. 601호 병실 방문을 순서를 기다리면서 대기하는 사람은 자꾸 늘어나 도떼기시장처럼 되고 말았다.           


이전 03화 3회: 기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