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 노을(대부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환자와 젊은 사람은 어젯밤에 대구 시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바로 옮겨갔고, 깨어나지 못한 환자 혼자만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환자도 날이 밝으면 그쪽 병원과 연락해서 이송해 드릴 생각입니다.”
선오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살아 있어 다행이고 고마웠다. 자기보다는 더 많이 다쳐 위급했으니 먼저 옮겨 갔을 것으로 짐작했다.
강선오는 어제 보국공사 안석병 영남본부장을 모시고 안동지사로 출장 갔다가 지역본부가 있는 대구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 일부 구간만 개통된 구마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시야가 매우 흐릿했다.
선오는 본부장 전용 승용차 앞 좌석에 타고 있었다. 차가 별로 없어 빠른 속도로 오르막길을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반대편 차선에서 집채만 한 차가 넘어와 차선 전부를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지그재그를 하면서 내리막길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도로 밖은 바위와 낭떠러지여서 달리 피할 곳도 없었다.
빗길을 달리던 속도에서 급정거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급정거가 된다 해도 사고는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차와 충돌하거나 밑으로 깔리면 끝장이었다. 순간이었지만, 제법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선호는 몸을 돌려 뒤를 보면서
“꽉 잡아요! 위험해요!”
라고 소리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꽝!’하고 충돌하면서 타고 있던 차가 위로 높이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충격으로 차 앞문이 떨어져 몸이 차창 밖으로 튕겨 나갔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본부장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뒷좌석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운전기사도 도로 위에 큰 대 자로 누워 있었고 옷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보였다. 승용차는 마치 사용하고 버린 휴지 조각처럼 구겨져 있었다.
대형차 기사도 넋이 나간 듯 혼자 방방 뛰면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선오는 자기 혼자만 멀쩡한 줄 알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반쯤 떨어져 나간 차 뒷문을 겨우 제치고 본부장을 둘러업었다.
고속도로 옆 비탈을 내려가 멀리 마을이 보이는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병원 간판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