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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Sep 01. 2024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게 했다

이제 나는 준비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게 한다? 그게 내가 한 짓이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사는 큰엄마는 엄마가 퇴원하여 집에 온 직후부터 엄마를 보러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오시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엄마만 생각해서 그랬다. 엄마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고 누구를 맞이하느라 애 쓰지 않아도 되고 자기만 생각해도 되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의사 핑계를 댔다.


엄마가 퇴원하여 집에 왔을 때 엄마는 뇌출혈후유증인 수두증세, 보행장애, 기억력장애, 인식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왜 남의 집에 와 있냐며, 여긴 집이 아니라며,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일시적인 섬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조차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누굴 맞이할 정신이 있겠는가. 집안의 어른 큰엄마라 하더라도 문병을 받을 여력이 없었다.


큰엄마가 받을 충격도 걱정이었다. 시집 와서 오십년 동안 늘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온 세월의 길이를 놓고 보면 서운했던 기억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결산을 해 보면 그래도 그럭저럭 좋은 동서지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 들어가며 갑자기 서로는 더욱 애틋한 사이가 되었고 서로에게 더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큰엄마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엄마를 보면 큰 충격받을 게 뻔했고, 그걸 보는 나도 감당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 내 생각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최소한 누구인지 알아볼 수라도 있을 때, 한두 마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은 보기좋게 나를 배신했고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냉정하게 좋아질 가망이 없으니 그냥 돌려보낸 거였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고, 기적이라는 게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로 반짝 좋아지나 싶은 때도 있었으나 결국 변곡점을 만들지 못했다. 계속 꾸준히 나빠졌다. 지금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한다. 눈을 못 뜰 때도 많다. 한두 마디 하던 말도 전혀 못 한다. 모든 것이 기능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겨우 눈 뜨고 밥 먹는 정도다.


지금은 후회한다. 더 좋아지면 만나게 한다는 기약은 정말 기약이 없어졌다. 이제 폐기해야 한다. 지금 추세라면 오늘보다 어제가 낫고, 내일보다 오늘이 낫다. 무더위가 가시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다.


그리고 오늘, 보고 싶은 엄마를 내가 못 만나게 한다고 큰엄마가 엄청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보고싶은 사람을 못 만나게 하는 나쁜 년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길 가다가 한참을 울었다. 뭐가 옳은 건지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게 할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엄마 생각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힘들어도 내가 제일 힘들고, 우리 가족이 제일 힘든 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까지는 모르겠고 내 마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이기심도 완전히 철수하지 못하고 내 머릿속을 서성이고 있다. 하지만 큰엄마와 엄마가 동서지간으로 보낸 시간,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인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만큼 나의 이기심이 기세등등하지는 않다. 못 만나게 했다가 누구라도 먼저 돌아가시면 그 원망을 내가 다 감당하기 힘들 거 같다. 이제 엄마가 나만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큰엄마가 엄마를 만나면 뭐라 하실지 안다. 동서, 왜 말을 못 하냐, 말 좀 해봐라, 우리 동서 불쌍해서 어쩌냐, 빨리 나아야할 거 아니냐, 그러실 것이다. 이미 우리 마음을 할퀴고 간 생각들이다. 얼마나 눈물바다가 될지도 안다. 나도 울고 아빠도 울 것이다. 엄마는 모르겠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안 된다. 벌써부터 너무 힘들다. 하지만 큰엄마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내일 당장 큰엄마를 모시고 오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생전장례식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이지만 이제 나는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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