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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30. 2024

간병하는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

효녀라는 말

엄마 간병하고 있는 나에게 효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듣기 싫다. 제발 부탁인데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안다. 선의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거, 뭐라도 좋은 말해주고 싶고, 칭찬하고 위로해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거 안다. 알면서도 싫다.


처음 몇 달 정도는 괜찮았다. 한두 달 정도는 엄마 간병하면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정말 좋았다. 누가 효녀라고 하면, 나 정말 효녀인가, 하면서 효녀 놀이를 잠깐 즐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온가족의 지극정성과 절실한 마음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엄마는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고, 엄마의 방향을 돌려놓으려고 부던히 애쓰던 나도 이제 엄마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다.


효녀의 정의가 뭘까? 어렸을 때 부모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뒤늦게 엄마 쓰러지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엄마 옆에 있게 된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일까? 처음엔 한 달 정도만 해야지, 하고 가볍게 왔다가 계속 나빠지는 엄마 모습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 떠나고 얼떨결에 눌러앉아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까? 너무 힘들 때 그냥 이 모든 게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나 같은 사람이 들어도 되는 말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 누가 효녀라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힘들어서 그런지 그 말이 심히 거슬린다.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선악의 마음을 넘나들 때 효녀라는 말은 심한 욕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도 생기 없는 엄마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아서 뛰어나와서 커피 마시고 있다.


간병 뭐 대단한 마음으로 하는 거 아니다. 처음엔 정말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냥 어쩌지 못해 하는 거다. 매일매일 친절하게 정성을 다해 하기는커녕 대충 하기 싫은 일 해치우듯이 하기도 하고 곡소리 내며 죽지 못해 할 때도 많다. 하루하루 내적 갈등으로 괴로운 사람에게 효녀라는 말은 칭찬도 아니고 위로도 되지 않고, 자괴감과 죄책감만 줄 뿐이다. 요양원 보낼 생각하지 말고 계속 감당해내라는 무언의 압력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에 부모님 간병하는 사람 있다면 제발 효녀, 효자라는 말 절대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냥 많이 힘들지, 고생 많지, 그 정도면 정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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