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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8. 2024

파묘하자는 엄마

벌초는 언제까지 하게 될까?

아침에 큰언니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벌초를  계획이라고. 여기서 큰언니란 큰집 사촌오빠의 부인, 큰집 맏며느리를 말한다.


벌초한다는 연락을 내가 받다니. 기분이 묘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우리 가족의 대표자가 된 것일까. 더불어 우리 가족보다   혈연 공동체에 묶여있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새삼 상기하게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옛날부터 너무 끈끈하고 강한 결속에 대한 거부감 같은  있었다.


다른 집은 어떤  모르겠는데 발신자가 큰오빠가 아닌 큰언니인 것도, 수신자가 아빠가 아닌 나인 것은 흥미롭다. 엄마 아프기 전에는 엄마가 수신인이었는데 지금 내가 엄마를 간병하고 있으니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이겠지만 어찌하여  집안은 며느리들이 벌초를 주관하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했다.


언니도 가려고요?

당연하죠. 우리는 며느리들도 갑니다.


아빠에게 벌초 소식을 전하며  집안 며느리들은 효부야,  대단해, 라고 말했다.나는 시댁 선산 벌초  가봤고, 가자고 해도  생각 없다. 그런 에너지 있으면 살아계신 시부모님께 잘 하자는 생각이라서.


그동안 벌초는 아빠와 사촌오빠들했고, 역시 이 집안 며느리큰엄마와 엄마, 큰언니도 따라간 걸로 안다. 작년 봄에 아빠가 다치고, 가을에 엄마가 쓰러지면서 처음으로 동생을 오게 하여 벌초에 합류시켰다. 나는 비겁하게 이럴 때만 출가외인 취급을 즐기면서 그냥 남일처럼 구경만 했다.


작년에 엄마는 큰맘 먹고 큰집 식구들이  모였을  파묘와 합묘를 제안했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부모님) 대까지는 벌초를 하겠지만, 우리도 늙어가고 있고 모두 타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벌초를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할머니 무덤을 파묘하여 할아버지 묘와 합장하고 조금 편한(낮은) 곳에 다시 모시자, 아니면  파묘하여 가족납골묘를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지금 정리하지 못하면 애들에게 평생 부담이  거라며 어렵게 총대를 맸지만 실패했다. 나는 역시 엄마는 현실적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파묘 운운하여 엄마가 벌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선산까지 가는 길이 험하다. 우리끼리 가라고 하면 절대 찾아갈  없다. 찾아갈 때마다 풀이 우거져  찾기 힘들고, 뱀과 벌때문에 위험하다. 벌초 갔다가 벌에 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수가 다른 봉우리에 떨어져 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묻히지 않겠다고(이유가 단순히 사이가  좋아서는 아니었는데 까먹었다) 하여 나중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합하지 말라고 하여 따로 썼다고 한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준 사랑하는 할머니이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자리에서 엄마는 선언했다. 자신은 절대 묘를 쓰지 않겠다고. 파묘 주장과 같은 이유다. 엄마는 평생 자식에게 어떤 부담 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가족도 일도 팽개치고 엄마의 전업 간병인으로 살고 있다. 엄마의 생각도 그러하거니와 이런 면에서 유물론자에 가까운 나랑 동생도 묘를  생각이 없다. 살아생전에도 못하는 효도를 돌아가신 부모님 묘에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모실 생각 말고 살아생전에   번이라도  자는 게  생각이다. 나는 산골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땅에 묻을 거면 가까이에서 오가다 자주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우리  감나무 아래를 엄마의 누울 자리로 제안했다. 엄마도 좋다고 합의했지만 둘만의 이야기여서 이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의 파묘 제안은 없던 일이 되었고, 벌초는 계속된다. 지난주에 다녀간 동생이 이번주말에는 바쁜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일정 맞춰서 오겠다고 한다. 엄마가 정말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벌초를 동생에게 물려준 셈이 됐다. 아침에  먹으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번 주에 벌초한대. (엄마  커짐) 막내가 와서 한대. (  커짐) 엄마는 거기 (묻힐) 생각 하지도 마. 엄마는 우리  감나무 아래로 데려 갈거야. 엄마  주렁주렁 열리는  좋아하잖아. 알았지?


알아 들은 건지  알아들었는지 눈을 꿈뻑꿈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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