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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Aug 29. 2024

엄마 옷 갖다버리고

엄마한테 혼나고 싶은 날

매일 엄마 기저귀가 나오다 보니 쓰레기봉투를 매일 갇다 버린다. 제일 작은 쓰레기봉투를 쓰는데 오늘  떨어졌고,  것밖에 없다.  쓰레기봉투에 반도  채우고 갖다 버리기는 아까워서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옷장 속에 오래된 다리미, 신발장 열어보니 한복 입을  신는 신발과 뒤축이 벗겨진 운동화, 욕실에 오랜 얼룩이 있는 수건  엄마라면 버리지 않았을 것을 보이는 대로 집어넣었는 데도 아직 공간이 남았다. 갑자기 작년 가을  버리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작년 가을 엄마 뇌출혈 수술하고 퇴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엄마 서랍장 정리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원해서 서랍장에서 뭘 열심히 찾고 있길래 뭘 찾냐고 물었더니 속옷이 없어졌다면서 나한테 버렸냐고 물었다. 응, 낡고 늘어난 것만 버렸다고 했더니 그걸 왜 버렸냐고, 더 입을 수 있는 건데 하면서 화를 냈다. 웬만해서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엄마여서 낯설고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라고 낡고 고무줄 늘어나고 구멍난 것도 있었다고 항변하고, 새것도 많은데 왜 하필 그런 것만 입냐며 아끼면 똥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 입장에서 아직 쓰레기봉투에 들어가지 않아 다행인 헌 속옷을 기어이 가져가서 서랍장에 개어 넣고 다시 입었다.  


그때 이후로 뭘 잘못 버렸다가 엄마가 화를 낼까 봐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 쓰레기봉투 속 공간이 비어있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공간을 작년에 못 버린 엄마의 헌 속옷, 목이 늘어난 양말로 채웠다. 벌떡 일어나 내 등짝 스매싱을 하면서 그 아까운 걸 왜 버리냐며 난리 치는 엄마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넣었다 뺐다 하기를 몇 번, 최종적으로는 쓰레기봉투를 꽉 채워서 마음 바뀔까 봐 쓰레기봉투를 빨리 갖다 버리고 왔다.


엄마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평화롭게 자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다. 화 내는 모습도 귀여울 것이다. 또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는 엄마는 헌 속옷이 든 쓰레기봉투 찾으러 대충 아무거나 신고 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도 따라가야지. 쓰레기봉투가 벌써 사라진 걸 알고 당황스러워하겠지. 낙심한 얼굴로 돌아와 서랍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을 할 것이고. 그렇게 헌 속옷이 가득하던 서랍장에는 새것만 남아있겠지. 그렇다고 설마 노팬티, 노브라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제 어쩔 수 없이 새것을 주섬주섬 입겠지. 그러면 나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혼나고 춤을 생각하니까 신이 난다. 이참에 엄마의 헌 옷도 하나씩 갖다 버려야겠다. 엄마가 일어나면 세게 혼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새로 사 입히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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