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혼나고 싶은 날
매일 엄마 기저귀가 나오다 보니 쓰레기봉투를 매일 갇다 버린다. 제일 작은 쓰레기봉투를 쓰는데 오늘 딱 떨어졌고, 큰 것밖에 없다. 큰 쓰레기봉투에 반도 안 채우고 갖다 버리기는 아까워서 뭘 더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옷장 속에 오래된 다리미, 신발장 열어보니 한복 입을 때 신는 신발과 뒤축이 벗겨진 운동화, 욕실에 오랜 얼룩이 있는 수건 등 엄마라면 버리지 않았을 것을 보이는 대로 집어넣었는 데도 아직 공간이 남았다. 갑자기 작년 가을 다 버리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작년 가을 엄마 뇌출혈 수술하고 퇴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엄마 서랍장 정리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원해서 서랍장에서 뭘 열심히 찾고 있길래 뭘 찾냐고 물었더니 속옷이 없어졌다면서 나한테 버렸냐고 물었다. 응, 낡고 늘어난 것만 버렸다고 했더니 그걸 왜 버렸냐고, 더 입을 수 있는 건데 하면서 화를 냈다. 웬만해서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엄마여서 낯설고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라고 낡고 고무줄 늘어나고 구멍난 것도 있었다고 항변하고, 새것도 많은데 왜 하필 그런 것만 입냐며 아끼면 똥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 입장에서 아직 쓰레기봉투에 들어가지 않아 다행인 헌 속옷을 기어이 가져가서 서랍장에 개어 넣고 다시 입었다.
그때 이후로 뭘 잘못 버렸다가 엄마가 화를 낼까 봐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 쓰레기봉투 속 공간이 비어있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공간을 작년에 못 버린 엄마의 헌 속옷, 목이 늘어난 양말로 채웠다. 벌떡 일어나 내 등짝 스매싱을 하면서 그 아까운 걸 왜 버리냐며 난리 치는 엄마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넣었다 뺐다 하기를 몇 번, 최종적으로는 쓰레기봉투를 꽉 채워서 마음 바뀔까 봐 쓰레기봉투를 빨리 갖다 버리고 왔다.
엄마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평화롭게 자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다. 화 내는 모습도 귀여울 것이다. 또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는 엄마는 헌 속옷이 든 쓰레기봉투 찾으러 대충 아무거나 신고 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도 따라가야지. 쓰레기봉투가 벌써 사라진 걸 알고 당황스러워하겠지. 낙심한 얼굴로 돌아와 서랍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을 할 것이고. 그렇게 헌 속옷이 가득하던 서랍장에는 새것만 남아있겠지. 그렇다고 설마 노팬티, 노브라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제 어쩔 수 없이 새것을 주섬주섬 입겠지. 그러면 나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혼나고 춤을 생각하니까 신이 난다. 이참에 엄마의 헌 옷도 하나씩 갖다 버려야겠다. 엄마가 일어나면 세게 혼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새로 사 입히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