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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질 때 좋아하지 못하고

오르락내리락의 두려움

by 소요

아빠가 가래떡 한 봉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웬 떡이냐고 물었더니 요양보호사 학원 수강생 대표가 떡을 해서 세 줄씩 나눠주었다고 했다. 아줌마들이 있는 곳에는 꼭 먹을 것이 있다. 아빠는 더러 떡도 가지고 오고 과자도 들고 왔다.


가래떡 하나를 가위로 뚝뚝 잘라 세 토막을 만들었다. 나부터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리면서, 엄마 손에 떡 하나를 쥐어주었다. 엄마 팔을 반쯤 들어 올리면 거기서부터는 엄마 스스로 팔을 움직여 떡을 입에 가져갈 수 있다. 가래떡이 꾸덕꾸덕하고 질겨서 환자들이 먹기 좋은 떡은 아닌데 엄마는 상태에 비해서는 뭐든 잘 먹었고 특히 떡을 좋아했다. 한 입 야무지게 베어 물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떡을 씹기 시작했다.


엄마 떡 맛있어?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떡을 씹는 데 열중했다.


역시 떡 좋아해. 떡순이야. 떡순이. 엄마 이거 무슨 떡인 줄 알아?


기계떡


오랜만에 듣는다. 기계떡이라는 말. 주로 가래떡이라고 불리는 이 떡은 기계로 뽑는다고 기계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랜만에 듣는 그 말이 엄마 입에서 튀어나왔다.


맞지? 기계떡이지? 떡 하나 더 줄까?


언제부턴가 질문의 형식을 띠는 이 말이 질문이 아니게 되었다. 엄마의 의향을 물어봤자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하나 더 줄까?는 하나 더 줄 테니 더 먹으라는 말이다. 질문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엄마의 의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나는 이미 떡을 들고 엄마에게 가고 있었다.


떡이 또 있어?


이례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 보통 묻는 말에도 겨우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도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정도이지 질문을 또 질문으로 받아치고, 문맥마저 훌륭하게 맞아떨어져서 의미 있는 대화가 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지만 눈물이 되려는 감정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당연히 있지. 떡 하나 더 줄게.


엄마는 두 번째 떡도 맛있게 씹어 먹었다. 아빠는 내일 당장 떡 하러 가야겠다고 했다. 떡에 뭐가 든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말문이 트이게 하는가? 엄마 배 터졌어 안 터졌어? 이렇게 물었더니 엄마는 까르르, 하고 웃었다. 그 뒤로도 나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몇 번을 웃었고, 자신이 자주 가던 방앗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한참 텔레비전에 나오는 조청과 지청귀라는 엄마가 좋아하던 나물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아니 오늘 무슨 일이래.


아빠가 웃는 것도 오랜만에 본다. 아빠는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났다. 당장 떡을 사러 나가고 싶어서 몸을 들썩였다. 나는 좋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다. 갑자기 말문이 트여 이제 말문이 트이는 건가, 뭔가 좋아하는 건지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토록 수다스러운 말들을 내뿜고는 억지로 벌려도 벌어지지 않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닫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다. 예전에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왜 북한산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보다 둘레길을 걷는 게 더 힘들까.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내리막길 걸으면서 좀 편해지는가 싶은데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약이 오르고 다리도 더 아픈 느낌이었다. 엄마가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헛된 기대를 하지 않고 차라리 체념을 하게 되는데 어쩌다 한 번씩 말을 할 때마다 다시 기대하게 되고 또 다시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나를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빠는 가래떡 아니 기계떡 한 봉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떡을 한 건 아니고 엄마가 자주 가던 방앗간에 가서 사 왔다고 했다. 전날처럼 떡을 잘라서 엄마 앞에 한 접시 놔두고 엄마 손에도 떡을 쥐어주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물었다. 엄마 이거 무슨 떡이지? 이건 질문이었고, 엄마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기계떡이라는 말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저녁 먹은 걸 빨리 치우고 방에 들어갔다. 빨리 포기한 나와 달리 몇 번을 시도하고 시도하다 곧 아빠가 하게 될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니 왜 또 말을 안 해. 어제는 그렇게 잘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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