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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시 Jul 07. 2023

아버지와의 통화시간 20초, 그래도 계속 전화하는 이유

<아버지>


“아버지 오늘은 좀 어떠세요, 어디 아픈 데 없고요?”

 

“그래, 괜찮다. 걱정 말고, 이제 끊어라.”

 

아버지와의 통화는 20초 안에 끝나버렸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몇 달째 떨어지지 않던 감기가 기어코 폐렴으로 발전하여 병원에 가셨다. 그런데 폐렴보다도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낮았다. 그대로 응급환자 집중관리실에 격리되셨다. 골수 검사가 가능한 큰 병원에 가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감염의 우려 때문에 면회도 퇴원도 불가했다. 큰 병원으로 바로 옮겨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서울에 있는 큰 병원들은 몇 달 치 예약이 벌써 꽉 차 있어 언제 옮겨갈 수 있을지 몰랐다.

 

전화 좀 자주 해드려, 혼자서 얼마나 겁이 나겠니. 엄마의 당부에 꼬박꼬박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통화가 1분이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떠신가요, 괜찮으니 걱정 마라, 단 한 마디씩 주고받고 나면 그 뒤로는 도무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고 나면, 말솜씨 없고 살갑지도 못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최근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를 읽었다. 다니구치 지로는 우리에겐 [고독한 미식가]라는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진 일본의 유명 만화가다. 그의 만화를 뭐든 하나 꼭 읽겠다고 생각했는데, 대표작 [고독한 미식가]가 아닌 [아버지]를 고르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입원하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어서였던 것 같다.

 

만화는 주인공 요이치가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이치는 아버지의 부고에도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장례식에도 썩 가고 싶어 하지 않는데, 아내의 만류에 설득당해 겨우 고향으로 향한다. 고향에 도착한 요이치는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 부녀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관계는 아주 서먹하다.

아버지는 당신을 많이 닮은 나를 자랑으로 여기고 아주 귀여워하셨다. 밖에서 얼마나 딸 자랑을 하고 다니는 건지, 아버지의 직장동료들을 뵐 때마다 ‘네가 그 잘나고 훌륭하신 딸내미냐’ 며 놀림을 받았다. 그 팔불출 성질은 나도 다르지 않아서, 서른 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가 내 종교’라는 닭살 돋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이 언제나 지켜본다는 이유로 부정을 멀리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데, 당사자끼리 친근하게 말 몇 마디 나누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중간에 어머니를 끼우지 않고는 둘이 따로 잡담을 나눈 적도 없었다. 각자 신상의 중대한 변화도 직접 말하지 않고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달받곤 했다. 어머니의 귀농 이후 아버지와 한집에서 단둘이 살 적엔 각자 방에 틀어박혀 밥도 거의 따로 먹으며 지냈다. 얼굴 마주 보고 살 때도 안 하던 대화가 전화상에서 잘 될 리가 없었다.

 


요이치의 엄마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집을 나가버린다. 오랜 기간 부부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었고, 엄마가 아빠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떠난 것이었지만 어린 요이치는 그런 사정까지는 다 알지 못해 아버지의 잘못으로 엄마가 떠났다고 믿게 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버림받았다는 슬픔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어 요이치는 점점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게 된다. 아버지가 있는 집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집을 떠나 독립할 궁리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이치도 서서히 부모님 이혼의 진짜 이유와 양친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 저절로 깨닫고 이해하게 되지만 이미 서먹해진 아버지와의 관계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특히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어머니가 생긴 후로는 가족 모두에게 벽을 세워 스스로 고립시켰기 때문에 점점 소외감이 심해진다. 결국 그는 졸업과 동시에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여 집을 나가버린다.

 


나는 남에게 알리기엔 부끄럽지만 아주 아끼는 별명이 하나 있다. ‘알시’라는 별명으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가족들이 부르던 애칭이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우리 오빠는 남들보다 입이 늦게 트여 발음이 어눌했는데, 내 본명 똑바로 발음하지 못해 나를 ‘아이시’ 또는 ‘알시’라고 불렀다. 그것을 아버지와 어머니도 장난스레 따라 하면서 ‘알시’가 내 애칭이 되었다.

 

지금은 별명의 창시자인 오빠도, 엄마도, 나를 ‘알시’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불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서른 중반에 아기 때 별명으로 불리는 징그럽고 민망한 짓은 사양이다. 어쩌다 그런 주제로 얘기가 나오면, 그제야 ‘아, 내게 그런 별명도 있었지’ 하고 기억해 낼 정도로 평소에는 잊고 살 때가 더 많다.

다만, 아주 가끔 아버지만이 가족 모두가 잊은 그 별명을 불러주시곤 한다.

 


집을 떠난 이후 요이치는 대학 시절엔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취직 후엔 일을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찾아와 주길 바라는 가족들의 바람을 모른척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 올지 모를 요이치를 언제나 기다렸다. 그가 돌아왔을 때 슬퍼하지 않도록 요이치가 두고 간 나이 많은 아픈 개를 돌보면서. 요이치가 찍은 한 장의 가족사진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아이고 우리 알시, 힘들어서 축 처졌구먼? 그래도 괜찮어! 아빠가 있는디~”

 

아버지는 내가 힘들어하거나 기가 죽었을 때, 걱정이 쌓였을 때, 나를 위로하는 순간에 ‘우리 알시’라고 불러주신다. ‘알시’가 가진 힘은 엄청나다. 듣는 순간, 기습을 당한 것처럼 순식간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진다. 걱정거리가 눈 녹듯이 녹는다. 아버지의 품 아래 고이 보호받는 연약하고 소중한 존재가 된 기분에 딱딱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말랑해진다.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은 안도감. 아니, 잘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용기. 괜찮다, 아버지가 있으니까.

 


끝내 요이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고향 집에 돌아온다. 외삼촌은 늦게 온 요이치를 '아버지 마음도 몰라주는 어리석은 놈'이라고 몇 번이고 타박한다. 장례식에 모인 외삼촌과 친척들은 생전의 아버지를 추억하며 각자가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요이치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요이치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요이치의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요이치는 아버지 생전에 그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을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다.

 


말 한마디만으로 힘을 주는 마법 같은 별명이 아버지한테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랬다면, 내가 영 말재주가 없어도 표현이 서툴러도 아버지의 기운을 충분히 북돋아 드릴 수 있을 텐데. 내가 아버지께 받았던 만큼, 나도 아버지께 힘을 드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버지께 전화를 걸 때, 끊을 때, 늘 생각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마법의 별명이 없어도, 비록 20초짜리 통화뿐이라도, 멍청히 아무 말 못 하고 끊더라도 자꾸자꾸 전화하는 수밖에! 오늘도, 밤늦기 전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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