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 오브 호러스>
미국의 한 차이나타운, 신비롭고 화려한 도시에 나이도 성별도 본명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 ‘D백작’이 운영하는 기묘한 펫숍이 있다. 이 펫숍은 개와 고양이 같은 일반적인 반려동물부터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 동물까지 다양한 동물을 취급하는데, 이들을 분양해 가는 주인에게만큼은 그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의 형태로 보인다. 소문을 듣고 D백작을 찾아온 사람들은 원하는 어떤 동물도 얻을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리석음과 안일함 때문에 금기를 어기고 재앙을 당한다.
이 만화 [펫숍 오브 호러스]는 ‘호러’ 장르이기 때문에 에피소드 대부분이 금기를 어긴 주인이 입양한 동물에 의해 잔인한 죽임을 당하는 엔딩을 맞는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주인들은 단순히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또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동물을 입양한 사람들로,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반면 몇 개의 에피소드는 주인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진심으로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 주인들은 동물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눈먼 소녀 ‘카렌’과 도베르만 ‘드라이첸’의 이야기였다.
나의 고양이 ‘꼬냑이’를 만난 건 2021년 6월 6일이었다. 전날인 5일엔 9급 지방 공무원 공채시험이 있었다. 가답안으로 점수를 셈해본 뒤 하룻밤의 망설임 끝에 ‘이제 공무원은 포기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날이었다. 4년의 수험기간에 종지부가 찍혔다. 끝내 ‘합격’이라는 결과를 내지 못한 지난했던 시간은 한순간에 무의미해졌다. 부모님은 그저 ‘알겠다’고만 하셨다.
사실 시험의 당락은 채점 따위 해보지 않아도 당사자가 뻔히 아는 법이었다. 나는 시험을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떨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시험을 얼마 앞둔 시기부터 어떤 결심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홍성군 광천읍이었다. 광천은 아주 작은 시골 동네였다. 그 동네는, 사람은 너무 없었고 키 큰 나무는 너무 많았다. 나는 마을을 서성이며 밧줄을 매달 적당한 높이의 나무를 찾곤 했다.
원인도 시작점도 알 수 없는 어두운 감정에 속절없이 잠식되던 시기였다. 나는 삶이 조금 어려워진다 싶으면 금세 도망치는 쪽으로 발을 돌리며 비겁하게 살아와, 대단히 패망한 적도 없으면서 패배 의식에 절어있었다. 공시 역시 현실도피에 불과했고, 그 핑계로 세상과의 모든 연결을 차단하고 스스로 고립시켜 버린 것이 그간 원래도 건강치 못했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극이고, 괴로운 자극에도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부정적 생각을 반복하며 내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 단정 짓고 모든 기회와 희망을 포기했다. 그러다 쉽고 간단한 답을 하나 찾았다. 당시엔 그것이 정말 합리적이라 믿었다. 어떤 생각을 해도 그 모든 생각의 끝이 단 하나로 귀결됐다.
거대 자산가의 영애인 카렌은 자택에 침입한 무장 강도의 공격과 방화로 인해 양친을 잃고, 충격으로 시력마저 잃는다. 고아가 되어버린 후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외사촌, 에드워드의 권유로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위해 D백작의 펫숍을 방문한다. 카렌의 사연을 들은 D백작은 보디가드를 겸할 수 있는 맹도견, 도베르만 ‘드라이첸’을 추천한다.
하지만 강아지를 향해 반갑게 내민 카렌의 손에 닿은 것은 건장한 인간 남성의 손이었다. 개가 아닌 사람은 살 수 없다고 기겁하는 카렌에게 D백작은 ‘그는 목숨을 걸고 당신을 지켜줄 개’일 뿐이라며 믿을 수 없는 말만 한다. 어쩔 수 없이 드라이첸을 입양한 카렌은 자신 외의 사람들 모두 그를 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해진다.
공시를 그만두겠다 말씀드리고 우울한 상념에 빠진 지 채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날 점심 엄마가 삑삑 소리가 나는 종이상자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혼자 길바닥에서 울고 있지 뭐니! 동네에서 못 보던 애야. 어미가 버리고 갔나 봐!”
상자를 열자 시끄럽게 삑삑대던 소리가 뚝 그쳤다. 상자 모서리에 조막만 한 털 뭉치가 꼬물거렸다. 결이 곱지 않은 노란 털이 꾀죄죄하고 얼굴에 까만 진드기를 잔뜩 매달고 있는 못생긴 새끼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이미 잔뜩 웅크리고 있으면서 더 웅크리기 위해 애썼다. 주워도 뭐 이런 못생긴 걸 주워 왔지? 첫인상은 그랬다. 나에게 고양이를 맡긴 엄마는 밭일을 가야 한다며 금방 나가버렸다. 집에 고양이와 나, 둘만 남았다.
참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얻어 온 사료와 물그릇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고양이는 통 먹으려고 들지 않았다. 먹으란 밥은 안 먹고 자꾸 박스를 탈출해 짐이 쌓여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고양이 몸에 붙은 벌레가 짐으로 옮겨붙을까 걱정돼서 짐 속을 헤집어 고양이를 꺼냈다. 하지만 그놈은 아무리 박스에 돌려놓아도 내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금세 다시 탈출했다. 그렇게 서너 번을 반복하자 나는 귀찮고 짜증스러워졌다. 그냥 모른척하기로 했다.
시간은 잘도 흘러 저녁이 됐다. 밭일을 다녀온 고단한 엄마는 일찍 잠들었다.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진 나도 할 게 없어 불을 끄고 누웠다. 그때까지도 고양이는 짐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용해서 잠들었나 했는데, 방 안이 깜깜해지자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야 옹- 야 옹-. 하루 종일 굶어서 힘도 없을 텐데 쉬지 않고 울었다. 야 옹- 야 옹-. 제 엄마를 부르는 걸까,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야 옹- 야 옹-. 하지만 자기 목숨도 버리려는 인간이 다른 생명까지 챙길 마음이 들 리 없었다. 야 옹- 야 옹-. 목 놓아 우는 어린것을 두고 나는 잠이나 잤다.
드라이첸은 입양되어 함께 지내는 동안 카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매 순간 성실히 그녀를 호위한다. 하지만 카렌은 낯선 남성과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결국 드라이첸을 파양하기 위해 다시 D백작의 펫숍으로 향한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던 중, 카렌과 드라이첸은 느닷없이 돌진한 자동차에 습격을 당한다. 다행히 드라이첸의 보호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던 카렌은 부모님을 살해한 강도가 잡힐 때까지만 드라이첸의 파양을 미루기로 마음을 바꾼다. 낮의 사고로 혼자 있기 무서워진 카렌은 드라이첸을 방에 들이고 그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군용견이었던 그 역시 카렌처럼 외톨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녀는 그에게 동질감과 애정을 느낀다.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고양이는 짐 속에 숨어있었다. 엄마는 새벽에 나갔는지 이미 집에 없고, 나는 여전히 할 일이 없어서 책상에 앉아 핸드폰이나 보고 놀았다. 한참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발목에 뭔가 매달린 게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고양이가 내 바지에 손톱을 박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어? 하는 사이 꾸물꾸물 기어올라 내 어깨에 올랐다. 냐- 냐-. 고양이가 내 목과 뺨에 온몸을 비비며 귀엽게 울었다. 그것은 명백한 친근감의 표현,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도 알 수 있었다. 어제 그렇게 경계할 땐 언제고? 하룻밤 지켜본 결과 내가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보호가 필요한 어린 개체의 살기 위한 본능인 건지. 그 순진무구한 고양이는 무정한 내게 하루 만에 마음을 열었다.
오후엔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예방접종도 하고 벌레 잡는 약도 발랐다. 태어난 지는 한 달쯤, 말랐지만 아픈 데 없는 건강한 아기라고 했다. ‘꼬냑’이라고 이름 지었다. 동물에겐 술 이름을 붙이는 우리 집 전통에 따라 프랑스산 노란 브랜디 이름으로 붙였다.
꼬냑이는 집에 돌아와선 밥도 잘 먹었다. 그간 굶주리고 살았는지 식탐이 심했는데, 장이 약해서 많이 먹으면 설사를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런 고양이는 조금씩 자주 먹여야 한다고 했다. 세 시간에 한 번씩 밥을 먹였다. 할 일 없던 나도 그때부터는 엄마를 따라 농사를 지었는데, 고양이 밥 때문에 세 시간에 한 번씩 논밭길을 달렸다. 꼬냑이는 밥을 먹을 때 ‘뭉먕먕먕-’ 노래 부르는 것 같이 소리를 내며 먹었다. 밥이 너무 맛있으면 하는 행동이랬다. 나는 그 노래를 들을 생각에 논밭길을 달리며 헐떡거리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하루 중 유일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익숙지 않은 노동에 잔뜩 지친 몸으로도 나는 밤에 깊게 잠들지 못했다. 자꾸 품으로 파고드는 꼬냑이를 잠결에 깔아뭉갤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내가 똑바로 누우면 꼬냑이는 내 가슴팍에 올라와 엎드려 잤다. 자다가 중간중간 일어나 고롱거리며 내 목과 입가를 한참 핥았다. 까슬한 혀 때문에 아파서 오던 잠도 싹 달아났다. 그래도 꾹 참고 몸 위의 꼬냑이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가만히 버텼다. 고롱고롱- 꼬냑이가 내는 울림이 꼭 사랑한다는 말 같아서. 이런 건 어미 고양이한테 하는 행동이랬는데, 내가 밥 몇 번 챙겨줬다고 꼬냑이가 날 어미로 아는 모양이었다. 바보야 난 엄마가 아니라 널 주운 사람의 딸일 뿐인데.
큰일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미 한번 엄마를 잃은 이 가엾은 게 나를 엄마로 아는데, 내가 없어지면 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카렌에게 또 한 번의 비극이 일어난다. 카렌과 드라이첸만 함께 있던 밤, 저택에 무장 강도가 다시 침입하여 카렌을 결박하고 총을 겨눈다. 드라이첸은 냄새로 범인의 정체를 알아챈다. 카렌의 후견인인 에드워드가 그녀의 유산을 노리고 벌인 일이었다. 드라이첸은 카렌을 지키기 위해 에드워드에게 달려들고, 한 발의 총성과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닥에 만져지는 피 때문에 패닉이 된 카렌은 드라이첸에 대한 걱정으로 번쩍 눈이 뜨인다.
시력이 돌아온 카렌에게 보인 것은 피 흘리는 에드워드의 시체와, 상처 입고 지친 커다란 도베르만 한 마리였다. 개는 다친 몸으로 절뚝거리면서도 카렌에게 다가와 그녀의 뺨에 흐른 눈물을 핥아주었다. 카렌은 단박에 알아챘다, 그가 바로 드라이첸이라는 것을.
꼬냑이를 만난 6월, 그로부터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8월에 취업이 결정됐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건들이 정신없이 벌어졌다. 마치 어떤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 것처럼. 그리고 나는 열심히 살아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바꾼 이유가 전부 꼬냑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인 것은 틀림없었다.
결심을 달리해서 신이 선물을 준 건지, 직장에 다니던 중 엄마의 간청에 떠밀려 친 공무원 시험에 어이없게 붙고 말았다. 4년간 그렇게 간절할 땐 안되더니, 너무 황당해서 기쁜 줄도 몰랐다. 다만, ‘이제 죽을 때까지 고양이 한 마리는 내 힘으로 먹여 살릴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이제 꼬냑이는 만 2살을 넘겨 어엿한 어른 고양이가 되었다. 요즘은 제가 먼저 다가와 머리를 비빌 땐 언제고, 내가 자기를 만지려 들면 질색하며 새침하게 쏙 도망가 버린다. 내 손이 닿은 곳을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 삭삭 핥아 닦는다. ‘애써 키워봐야 하나 쓸모없는’ 얄미운 아들내미가 되셨다.
나는 꼬냑이의 야옹 야옹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언젠가부터 꼬냑이가 내 하루 패턴을 깨달아서 아침 일곱 시가 되면, 내가 깨어날 때까지 시끄럽게 울어댄다.(시간은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다.) 게으른 나는 처음 한두 번은 안 들리는 척 돌아눕는데, 그러면 꼬냑이는 침대로 뛰어올라 말랑한 발바닥 젤리로 내 얼굴을 꾹 누른다. 그렇게 하면 내가 소스라쳐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을 깨울 만큼 센 힘으로 누르면서도 동시에 발톱으로 상처 내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머뭇거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발길질이다.
나는 별안간 얻어맞은 충격에 얼떨떨하면서도 이 똑똑하고 기특한 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잠들었던 버겁게 힘든 어떤 날들도, 고양이 발바닥 귓방망이로 시작하는 아침이면 씻은 듯 말끔히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풀 충전하며 일어나는 최고의 방법이다.
매일 아침 날 깨우고 당당하게 선 뿌듯한 얼굴의 내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구원받는 일이라는 것을.
호박 구슬 같은 투명한 눈, 촉촉한 분홍 코, 꼭 다문 야무진 입, 보드라운 귀, 까실하고 따뜻한 혀, 간질간질 고운 털, 만두 모양 앙증맞은 발, 말랑말랑 귀여운 발 젤리, 짧고 뭉툭한 꼬리.
세상에 모든 아름답고 귀중한 것을 모아 빚어 만든 귀여운 내 아이야,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