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와 클로버>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늘 강의실 제일 앞자리에 앉았던 것이 생각난다. 학생들 대부분 제일 앞줄과 두 번째 줄까지는 피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첫째 줄에 앉았다. 학구열이 높았기 때문은 아니고, 맘껏 펑펑 울려고 그랬다. 수업 시간에 자꾸 눈물이 나니까.
뒷자리에 앉으면 눈물이 나도 숨길 수가 없었다. 수업에 늦게 들어오거나, 중간에 나가는 학생들의 눈에 띄기 쉽고,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뒤돌아봐도 들키기 쉬웠다. 반면 앞자리에 앉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면 아무도 앞문으론 들어오지 않으니까, 훌쩍거림만 잘 참으면 뒷모습으론 티가 나지 않았다. 다만 딱 한 사람, 교수님께 들키는 일만큼은 불가피했는데, 그래서 변명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왜 우냐고 물어보시면 ‘실연당했다’고 적당히 둘러댈 계획이었다.
꽤 여러 수업에서 울었지만, 다행히 한 번도 이 변명을 쓸 일은 없었다. 교수님들은 수업만 하기에도 바쁘시니까. 그렇게 나는 수업마다 ‘또 울겠거니’ 하며 작정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입학 전 나는, 미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열정과 낭만이 넘치는 '예술적인' 캠퍼스 라이프가 저절로 펼쳐지는 줄 알았다. 대학엔 천재들이 가득하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 나 역시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수업마다 찔찔 울어댈 줄은 모르고.
이 착각은 다 [허니와 클로버] 때문이었다.
[허니와 클로버]는 일본의 한 미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다섯 명의 미술학도의 생활을 그린 이야기이다. 등장인물들의 예술에 대한 여러 가지 도전과 고뇌도 잘 표현되어 있지만, '순정 만화'이기 때문에 그들의 애정 관계와 심리가 주요 주제다.
이야기는 하나모토 교수의 조카딸인 하구미가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회화, 조소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천재로, 대학 입학 전부터 이미 업계에 이름을 알린 유명 인사다. 그녀는 성년이 될 때까지 시골에 고립되어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왔기 때문에 극도로 내성적이며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 그녀를 걱정한 하나모토 교수는 그의 애제자인 타케모토, 마야마, 모리다, 야마다 등에게 하구미를 소개해 친구를 만들어주려 한다.
그 첫 만남의 순간, 타케모토와 모리다는 하구미에게 한눈에 반해버린다.
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애'로 불렸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칭찬했고, 나를 '그림'으로 기억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개성이었던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그렇게 취급받으며 자랐으니, 스스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림’은 내게, 나를 설명하는 가장 주요한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좋아’했는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왠지 답하기가 어렵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겐 딱히 힘든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일부러 노력해서 얻어내거나 발전시켜야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진학을 거듭하면서, 나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또래를 만나게 되는 일도 심심찮게 생겼다. ‘학교에서 제일 그림 잘 그리는 애’였다가 ‘두 번째로 잘 그리는 애’, ‘세 번째로 잘 그리는 애’로 점점 밀려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별생각이 없었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 태평하고 팔자 좋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만화의 주요 화자가 타케모토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타케모토, 하구미, 모리다의 삼각관계 위주로 진행된다.
타케모토는 건축과 학생으로 손재주가 좋고 성실하지만 하구미와 같은 천재적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이른바 '평범한' 학생이다. 타케모토는 너무 뛰어난 재능을 지녀 주변의 기대에 따르는 압박감에 괴로워하는 하구미를 안쓰럽게 여기지만, 동시에 자신과 그녀를 비교해 조바심과 부러움도 느끼며 심란해한다.
반면 모리다는 하구미에게 대적할만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인데, 비범한 사차원이어서 온갖 기행을 일삼는 괴짜로 유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서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고 대단한 상을 들고 돌아온다든지, 어마어마한 돈다발을 들고 돌아오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모리다와 하구미는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고 끌림을 느끼는 동시에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건강한 라이벌 관계가 된다.
하구미와 모리다, 두 사람의 기류를 감지한 타케모토는 열등감을 느낀다. 재능 없는 것은 별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이 상하고 주눅이 든다.
만화 같은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던 내 앞엔 지옥 같은 생활이 펼쳐졌다. 우물 밖으로 나와보니, 나는 '잘남'의 근처도 못 가는 평범한 개구리였다. 한 학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평범하다 못해 아예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적 재능엔 드로잉 능력 같은, '손재주'보다는 감각이나 사고방식 같은, ‘정신적 측면’을 타고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타고난 것은 기껏해야 '손재주'였고,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다.
학우들은 밤새 술 마시고 놀아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한두 시간 만에 세련되고 삐까뻔쩍한 과제를 만들어 냈다. 반면 밤새 끙끙거리며 완성한 내 과제는 언제나 유치하고 투박했다. 나는 왜 저런 생각을 할 수 없을까, 왜 나는 남들처럼 척척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까, 내 뇌를 후비고 싶은 시간이었다. 어느 교수님은 숫제 나를 안쓰러워하셨다. 과제물에 대한 컨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분야를 바꿔 전과해보라고 타이르셨다.
나는 하구미나 모리다가 아니었다. 타케모토였다. 내가 하구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허니와 클로버] 같은 대학 생활은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본인의 모자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길을 모색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 새 길을 찾기가 겁나서 아닌 척, 모른 척을 했다. 오히려 그게 스스로 더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너무 괴로운 날엔 수업에 가지 않았다. 꼼짝하지 않고 기숙사 방에 남아 이불을 쓰고 수업 시간이 다 지날 때까지 울곤 했다. 출석 일수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빼먹을 수 없을 때는 억지로 출석해서 괴로움을 참으며 앉아있었다.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흘러 강의 내내 멈추지 않았다. 이런 꼴을 그 잘난 학우들에게 보이기 창피하고 자존심 상했다. 그날부터 제일 앞자리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미 망했으니 시간이나 채워서 졸업장이나 따자고, 미련한 고집으로 막무가내 시간을 흘려보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하지 않고 그저 포기하고 방치했다.
타케모토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하구미의 옆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주려 한다. 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능 없음에 낙심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으려 고민한다. 고민 끝에 타케모토는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목표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목표를 찾기 위해 떠난다. ‘자아 찾기 여행’, 자전거로 땅끝까지 왕복하는 무모한 여행이었다.
행운의 신은 성실한 타케모토의 편인지, 여행 중 그에게 운명 같은 만남을 선물한다. 모자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연히 합류하게 된 절 복원 공사 현장에서 그는 ‘수복사’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수복사는 우직하고 섬세한 타케모토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다. 새 목표를 찾은 타케모토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다.
억지로 시간만 때워 겨우 졸업하고 나니, 이후 삶의 흐름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 것이 없으니 취직이 막막했고, 누군가 자리를 제안하면 어떤 조건이든 감지덕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태도는 당연히, 이용당하기에 딱 맞았다. 멋모르는 젊은 인력을 헐값에 착취하려 드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았다.
그렇게 현실의 매서움을 배우고 난 뒤, 자신감은 더 떨어져서 새로운 결심을 할 용기는 더욱 나지 않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공과 첫 직장의 경력을 버릴 수가 없어 결국 계속 같은 일, 같은 분야에 머물게 되었다. 적성에 안 맞는다고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일을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 못난 스스로에 대한 미움이 끝을 모르고 커졌다.
새로운 길을 찾고 돌아온 타케모토는 하구미에게 고백한다. 하구미가 고백을 받아 주지 않아 두 사람은 다시 친구 사이가 되었지만, 타케모토는 제 안의 열등감과 고민을 모두 해결했기에 예전만큼 괴롭지 않았다.
훗날 수복사가 되기 위해 도쿄를 떠나게 된 타케모토는 기차에 올라 하구미를 생각하며 자신의 짝사랑이 의미가 있었는지를 고민한다.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슬퍼하던 그때, 뒤늦게 쫓아온 하구미가 기차를 따라 달리며 타케모토를 배웅한다. 그녀는 작별 인사를 전하며 간식 꾸러미를 건넸다. 간식 꾸러미를 열자 나온 건 식빵 한 통을 전부 사용해 만든 거대 샌드위치로, 빵 사이마다 꿀을 바르고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넣어 타케모토의 새 출발에 행운을 비는 마음을 담은 간식이었다.
타케모토는 수많은 네잎클로버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전에 친구들과 함께 들판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봤으나, 하루 종일 걸려도 단 하나의 네잎클로버도 찾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니 이 많은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서 하구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자신을 위해 들판을 헤맸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타케모토는 비록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하구미를 좋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만화는 끝이 난다.
나는 지금 공무원이 되었다. 아예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준비하기까지 나름의 긴 시간을 보냈다. 잘하든 못하든 그림은 오랜 세월 나를 이루는 상징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 창작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자책을 그만두고, 재능 없고 평범한 나를 다시 믿어 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현재의 직업과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또래의 동료보다 직급이 훨씬 낮고,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도 많지만 위축되지 않는다. 방황의 시기를 잘 견딘 내가, 다시 새 직업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감사함을 느낀다.
어렸을 땐 [허니와 클로버]를 그저 설레는 사랑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이제 보니 등장인물들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도 생각된다.
학창 시절엔 하구미의 입장에 이입하며 만화를 읽었고 가장 좋아했던 남자주인공도 모리다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다시 보니, 등장인물 중 타케모토에게 가장 마음이 가고 그에게 이입하게 된다. 그를 매력 있는 다른 등장인물들에 치여 영 튀지 못하는 주인공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의 삶의 태도나 자세가 멋지게 보이고 다른 인물들 못지않게 매력 있어 보인다.
이 만화에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캐릭터들도 많이 나오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은 결국 ‘평범한’ 타케모토다. 타케모토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가 현실의 평범한 우리를 대표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구미가 타케모토에게 네잎클로버 샌드위치를 선물하는 마지막 장면도, 하구미나 모리다가 되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멋있는 ‘평범한’ 우리에게 ‘평범해도 괜찮다고’ 응원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더 좋은 만화, [허니와 클로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