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도 그렇고 보통의 사람들은 호흡을 의식하지 않는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공기가 내 호흡기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런데 호흡을 극도로 의식하게 되는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걸까?
나는 두 가지 경우에 호흡을 의식하게 된다.
첫째,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예상했던 결과라면 상관없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이 엇나갔을 때 숨통이 꽉 조여오는 것 같다.
둘째, 내 대처능력이 생각보다 미숙할 때. 내가 자주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지나친 예민함,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감정기복이다.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내 감정이 별것도 아닌 일에 요동칠 때 숨이 자연스럽게 쉬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나는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인 사건 혹은 요소를 맞닥뜨렸을 때 자연스럽게 숨쉬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온하게 반응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호흡이라는 건 계속 일정해야 정상인게 아니라, 때에 따라 가빠지기도 하고 고르게 되기도 하는 것이 애초에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나의 부자연스러움이 실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이 깊은 안정을 준다.
이런 느낌인 거지. 나딴에는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해서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친구가 한숨을 쉬며 "사는게 다 그렇지 뭐~"라고 했을 때, 얼핏 듣기엔 성의없어보이는 그 말 한 마디가 묘한 안도감을 준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무리 드라마틱해보이고, 내 성격이 아무리 특이해보여도 생각보다 나는 정상 범주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뭐 어때.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원래 그래. 어쩌겠어. "원래"라는 말로 복잡한 문제들에 단일한 색깔을 부여한다. 그렇게 단순해지는 것이 때로는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 준다.
가끔 숨이 매우, 매우 가빠질 때가 있다. 아마 굉장히 속상한 일을 당했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럴 때는 "내 몸이 숨을 쉬고 싶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맞잖아.
뭐 더 파고들지 말고, 그냥 몸이 숨쉬고 싶어하는 대로 숨쉬고, 심호흡도 해 주고.
당시에는 나를 힘들게 한 사건이었어도, 그 영향력의 지속 시간은 내 인생에 비하면 티끌만큼도 안된다.
기왕이면 편안하게 숨쉬고 싶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편안하게 숨쉬기만 하다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걸 여러 번 경험해봤으니까.
숨쉬고 싶은 대로 쉬어. 괜찮다.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