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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6. 2022

오랜만이에요 브런치.

10월 5일의 일기


마음에 태풍이 한바탕 불고 지나간 저녁이었다.

특별히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평소처럼 공부하고 할 일 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오늘 저녁만큼은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신경썼다.




계기는 삼성 서류 발표였다. "원인"이 아닌 "계기"다.

취준생이라면 대부분 쓰는 삼성. 나도 지원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사실 예상했다. 삼성 자소서를 두 분 정도께 평가받았는데 혹평을 받았고, 나도 수긍했었다. 이정도면 못 쓴 자소서가 맞다고.

그래서 뽑히는게 더 기적이겠다 싶었다. 서류 탈락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라서 익숙했다.

다만 이번에는 내 1순위 기업 중 하나에서 떨어졌고, 또 지금까지 여러가지를 병행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졌는지 - 불합격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가족들과 전화하면서 목놓아 울었다. 힘이 나지 않아, 최소한의 할 것만 하고 고시반에서 나왔다.

그렇게 안락하게 여기던 고시반이 오늘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캠퍼스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다.

삼성 탈락을 계기로 하게 된 이 생각들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그래서 잊기 전에 여기에 적어보려고 한다.




삼성만 회사인 것도 아니고 삼성에 대해서 미련이 남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생활에 있어서 무언가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일상은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꾸준히 가질 수 있는 일상"이다.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며, 오늘 있었던 일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 등 스스로를 성찰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머리로만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찰한 내용을 글로 쓰고 내면화하는 시간이 일과 중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시간을 가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헐레벌떡 준비해서 학교에 오면, 그날 들어야 할 수업 + 학회 + 취준 관련 일을 모두 처리하고 중간중간 식사하면 하루 일과가 그냥 끝나버린다.

적어도 숨은 쉬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성찰과 글쓰기는 호흡과도 같다.

그런데 호흡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진심을 다하며 즐기고 싶다.




단적인 예로 삼성 자소서를 쓰던 날의 기억이 나에겐 좋지 않게 남아있다.

그날은 삼성과 현대차 자소서 마감일이었다. 삼성은 오후 5시까지, 현대차는 자정까지.

그래서 수업 외의 시간에는 자소서를 쓰기에 바빴다.

모든 자소서는 당일에 썼으니, 문제의 의도와 내가 담을 수 있는 최선의 소재에 대해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시험문제 풀듯이 문제를 보고 생각나는 내 이야기를 급하게 써 내려갔다.

삼성 자소서를 쓰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나 이것보다는 잘 쓸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글이 별로일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봐도 별로였으니, 인사담당자 눈에는 얼마나 더 별로였을까.

적어도 상사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삼성물산 자소서는 이전부터 천천히 고민하며 완성해도 되었을 법도 한데,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럴 여유가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뭐 떨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삼성과 현대차 모두 떨어졌다.

이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심을 다하기를 원하고,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데 삼성 자소서를 쓸 땐 안 그랬다. 괴로워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이런 일상에 이제는 변화를 줄 때가 왔다.

많은 고민을 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내 삶을 쭉 그려보며 내가 한순간이라도 여유를 갖고 산 적이 있었나 돌아보았다. 없었다. 아예.

당장 여유로운 일상을 누리기는 힘들다. 어쨌든 지금 지속하고 있는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다 중요하다. 그래서 다 가져가야 한다.

다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멀티태스킹을 하게 되면 결국 정신이 분산되고 일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멀티태스킹을 하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일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할 것이다. 레포트를 쓸 때는 레포트만 쓰고, 자소서를 쓸 땐 자소서만 쓰고, 수업을 들을 때는 수업만 들을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그것인 양.

수업 들으면서 취준 걱정하고, 자소서 쓰면서 학회 걱정하고,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란 말이다.

몰입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몰입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추진력이 나에게는 여유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참 많이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 눈물 속에 숨고 싶었다. 쉽지 않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고생한 나 자신을 위해서 오늘 저녁만큼은 눈 감아주고 싶었다.

이제 그만 숨고, 다시 일상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금 내 본래의 일상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단, 한 번에 하나만. 그 하나를 진실하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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