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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18. 2023

To know is to love

사랑과 앎에 대하여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자세하게, 깊이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그것을 사랑할 때의 기쁨과 제법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now You More - Hillsong Worship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찬양이다. "저는 당신(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살아갑니다."라는 고백이 이 노래의 골자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더 사랑하기 원한다는 고백과 같은 말이다.


신앙인으로서 큰 울림을 주는 노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는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자연스러운 끌림의 느낌과 달리 크리스찬에게는 마치 평생의 숙제와도 같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해도 외적인 끌림으로 사랑 비스무리한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부단히 알아가고 또 알아가는 일상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생각해보면 안다는 것은 사랑과 동의어로 쓰일 때가 많다. 정식으로 연애를 하기 전에 우리는 상대와 "알아가는 사이"라는 전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다 알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그 사람을 100%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간의 사랑이 앎으로 시작되어도 앎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사랑을 사랑답게 하는지도 모른다.


우선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단언컨대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삶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전혀 알 수 없다. 예상이야 가능하지만, 빗나갈 가능성도 다분하다. 결국 삶을 직면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나를 만드신 분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내 인생은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꽤나 자주) 시험도 보는 학교와도 같다.


사랑과 앎의 깊은 연관성은 사람이 아닌 것, 대표적으로 취미에 대입하면 의외로 더 쉽게 이해된다. 나는 춤을 사랑한다. 거의 매일 잠깐이라도 춤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춤은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이다. 춤을 알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연습해보고, 댄서들을 팔로우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해보고, 혼자 프리스타일로 출 때 내 신체 혹은 주변 사물이나 배경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하게 궁리한다. 이렇게 춤을 탐색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매일 춤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이 글을 쓰며 무척 행복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정말 많다, 누구라도 그럴 거다. 내 주변 사람들, 내가 속한 공동체, 내 신앙, 그 외 여러가지. 앞으로 평생 더 배우고 알아가며 사랑할 일만 남았다.


물론 알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랑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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