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know is to love
사랑과 앎에 대하여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자세하게, 깊이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그것을 사랑할 때의 기쁨과 제법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Know You More - Hillsong Worship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찬양이다. "저는 당신(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살아갑니다."라는 고백이 이 노래의 골자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더 사랑하기 원한다는 고백과 같은 말이다.
신앙인으로서 큰 울림을 주는 노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는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자연스러운 끌림의 느낌과 달리 크리스찬에게는 마치 평생의 숙제와도 같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해도 외적인 끌림으로 사랑 비스무리한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부단히 알아가고 또 알아가는 일상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생각해보면 안다는 것은 사랑과 동의어로 쓰일 때가 많다. 정식으로 연애를 하기 전에 우리는 상대와 "알아가는 사이"라는 전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다 알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그 사람을 100%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간의 사랑이 앎으로 시작되어도 앎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사랑을 사랑답게 하는지도 모른다.
우선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단언컨대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삶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전혀 알 수 없다. 예상이야 가능하지만, 빗나갈 가능성도 다분하다. 결국 삶을 직면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나를 만드신 분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내 인생은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꽤나 자주) 시험도 보는 학교와도 같다.
사랑과 앎의 깊은 연관성은 사람이 아닌 것, 대표적으로 취미에 대입하면 의외로 더 쉽게 이해된다. 나는 춤을 사랑한다. 거의 매일 잠깐이라도 춤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춤은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이다. 춤을 알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연습해보고, 댄서들을 팔로우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해보고, 혼자 프리스타일로 출 때 내 신체 혹은 주변 사물이나 배경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하게 궁리한다. 이렇게 춤을 탐색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매일 춤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이 글을 쓰며 무척 행복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정말 많다, 누구라도 그럴 거다. 내 주변 사람들, 내가 속한 공동체, 내 신앙, 그 외 여러가지. 앞으로 평생 더 배우고 알아가며 사랑할 일만 남았다.
물론 알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랑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