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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Nov 12. 2021

억새와 같은 마음으로

단독주택에 살겠다는, 그것도 2020년 바야흐로 원더키디의 시대에 한옥에 살겠다는 결심을 하였으니, 그 마음을 동네방네 공표한 이후로 당연스럽게 주변이 용기보다는 공포를 주는 말로 가득 찼다- 물론 좋은 의도로.


단독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재건축도 안되지 않느냐, 환금성이 나빠 나중에 팔지도 못할 거다, 마당 있으면 하루 종일 풀만 뽑아야 한다, 관리는 누가 할 거냐, 단층집은 "뷰"가 나쁘잖아, 산이 근처면 모기가 많을 거다, 낭만도 하루 이틀이다, 얼어 죽는다, 대단지 최신식 아파트가 얼마나 편한데……. 꿈꾸는 자에게 건네기에는 적잖게 모진 말이지만 모조리 현실적이고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들. 물론 나도 할 말이야 많았지만 막상 집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말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끙끙 앓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도시한옥에서의 일상을 말과 글로 선뜻 나눠주시는 분, 아직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님에도 전문적인 조언을 주시는 분, 불안을 잠재우고 무지를 채우기 위해 읽어보면 좋을 책 목록을 정성스럽게 작성하여 건네주시는 분, 이런 분들 덕분에 이래저래 먹구름 가득했던 마음에는 다시 반짝 빛이 들고, 어느새 또 용기가 솟는다.


제주의 오름에 오르면 바람이 보인다. 도시에서는 만나기 힘든 그 거센 바람을 맞으며 온 몸이 하루 종일 흔들려대는 억새풀을 떠올린다. 오름의 억새는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때로는 꺾이면 꺾이는 대로 그렇게 자리를 지키지만 결코 뽑히지는 않는다. 나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람이 불면 크게 흔들리고, 그 바람이 너무 모질면 때로는 꺾이기도 하지만 뽑히지는 않으리. 그렇게 꼭 이 긴 뜀박질을 완주(完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주의 오름에서(2018), Pentax MX/Fuji Superi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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