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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Nov 12. 2021

하늘이 많이 보이는 집

아파트가 왜 그리 싫었을까.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아랫집 이웃의(이렇게 말하지만 참 선량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음주가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추운 겨울 실내온도를 간신히 24도로 유지하는 주제에 60여만 원이 찍혀 나온 고지서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가끔씩 어딘지 모를 윗집에서 화단으로 자유 낙하하던 액체 괴물 때문이었을까. 모두 불만이었지만 아마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느 순간부터 남들과 같은 건물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졌을 뿐이고, 15층짜리 건물 사이로 보이는 좁은 하늘이 답답했을 뿐이다. 어쩌면 주택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과, 개발의 물결에 휩쓸려 '나의 동네'가 사라지는걸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아파트를 떠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서자 '그러면 과연 떠나서 어떤 집으로 갈 것인가'가 라는 의문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앞선 모든 이유를 버무려 마음속에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1. 아무쪼록 하늘이 많이 보일 것

2. 재건축이나 재개발로 내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없을 것

3.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을 것


저층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 따위의 건물 분류가 다양하게 떠올랐지만, 모두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가 나의 발목이라고 특별히 곱게 놔두어줄 리 없기에 선택지는 빠르게 좁혀졌다. 무슨 골칫거리냐 하면, 바로 사물의 가치를 대변하고, 내 자유를 담보해줄 수 있는 존재, "돈"이다. 돈이 많았더라면 우리 집으로 한옥을 고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초동에 이백 평짜리 대궐을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딘가의 나지막한 테라스 아파트를 샀을지도 모른다. 누가 아나? 아파트가 싫다고 해 놓고서는 번쩍번쩍한 주상복합의 펜트하우스로 이사를 가버렸을지.  


하지만 현실에서 내 손에 쥐어진 선택지는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의 매매 물건이나, 빌라 정도였다. 아파트는 정말 떠나고 싶던 상황이라 가능하다고 해도 고르고 싶지 않았고, 빌라의 경우 조금 무리를 하면 제법 그럴싸 한 곳으로 갈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아파트와 큰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날 중 동네의 고급 주택가에 현수막이 잔뜩 나붙는 일이 일어났는데, 서초동에서도 유명한 타운하우스 단지 중 한 곳에 기존의 집을 허물고 빌라를 짓기 시작했기 때문. 다른 집에 살던 주민들이야 오죽했겠냐만 옆동네 아파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내게도 '동네의 대궐집 마저 재건축의 여파는 도무지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싶었기에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옥은 바로 그때부터 내 마음속의 로망이 되었다.


시내에 남아있는 한옥의 경우 1. 마당이 있어 나만의 하늘을 가질 수 있고, 2. 내 집이니 누가 부수겠다고 할 일도 없으며, 3. 한옥보전지구로 묶여있는 경우 주변의 변화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 한옥이라는 독특한 목조건물이 주는 따스한 느낌이나 아름다움은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막상 알아보니 가격마저 아파트보다 저렴한 것 같아 '그래 이거야 말로 내가 찾아 헤매던 루비반지구나' 싶었던 것. 그런 설렘 속에서 나는 마음에 드는 '동네'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삼청동 한옥(2021), Pentax MX/Yashic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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