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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Jul 14. 2024

통(通)하기 위한 편지(信), 통신

뜻을 알면 개념이 쉬워지는 마법같은 한자어 - 초3 교과서에 등장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초점 잃은 눈동자를 구원해주고 싶은 영웅적 심리가 내 속에 있는 걸까요? 나의 설명 덕분에 아이들이 '아'하고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뿌듯함이 속에서 올라오는 걸 느낍니다. 그럴때면 '교직이 천생연분은 아니어도 지난 15년간 내공이 쌓이긴 한건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시각적인 이미지나 짧은 동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까요? 교과서는 단원 제목 글씨에도 그림을 그려 넣어 공부할 내용을 알려줍니다. 사회 교과서의 '통신수단의 발달'이라는 단원에서는 단원명의 자음, 모음에 봉수를 그려넣고, 편지 모양의 종이를 그려 넣었더라고요.


교과서에 등장하는 친절한 단원 제목

 


매 차시마다 그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요, 그림 속 인물들은 말주머니를 달고 있습니다. 글자로 이루어진 텍스트는 몇 문장 되지 않습니다. 텍스트를 배우기 위한 목적이 있는 국어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글보다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어릴 적 사회 교과서와 비교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습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사회 교과서 페이지




  아무리 그림으로 예쁘게 포장해 놓았다 한들 단원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통신 수단'이라는 단어가 낯설기 때문이지요. 이 단원뿐 아니라 사회 다른 대부분의 단원명에도 한자어가 등장합니다. 고장과 지도에 대해 배우는 3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1단원, 문화유산에 관련된 2단원,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에 대해 배우는 3단원은 그 개념들 자체가 모조리 한자어입니다. 2학년때는 접하지 못했던 한자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부담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가능성이 있지요.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사회를 어려운 과목으로 많이 꼽고, 사회 시간은 특히나 멍한 눈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통신 수단에서 수단은 제외하고라도, 통신이 무슨 뜻일까? 3단원을 가르치기에 앞서 통신을 뜻하는 한자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부끄럽게도 한자어의 뜻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음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합니다. 옛날엔 옥편이라는 한자사전이 있었지만 이제는 포털사이트에 '통신 한자로' 라는 문구를 입력하면 몇 초만에 결과를 알 수 있죠. 찾아보니 '통할 통'에 '편지,믿을 신' 자 이더군요. 통신이란 '통하기 위해 주고받은 편지'에서 유래하는구나, 작은 유레카를 얻었습니다. 통신수단이라는 단어가 사회로 막 내딛는 초 3 아이들에게 커다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 느끼기도 했구요. 통신수단이라는 무겁고 진지한 단어 대신 '통하기 위해 주고받은 편지와 다른 방법'이라고 풀어서 기술할수는 없을까? 고민하긴 했지만 한자어는 한글이라는 언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한자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 역시 학생들이 키워야 할 능력이니까요.  


  이제는 전자칠판에게 가운데를 내어 준 초록색 칠판에 '通信'을 크게 써 놓고 통신의 뜻, 통신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된 유래-지금은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통신수단은 사실 옛날에는 편지로 시작되었다- 를 열심히 설명해 봅니다. 


  사회뿐 아니라 국어 시간에도 제가 새롭게 알게 된 때가 있었죠.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人物)의 마음을 짐작하여 헤아리는 학습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아닌 동물도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인가요?"

이때 또 한자어의 뜻풀이 필요성을 절감하여 일장 연설을 했지요. 인물(人物)에서 물은 만물,물건을 뜻하는 한자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인물은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대상을 일컬어 말하는 것이다. 라고요.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다른 한자어-문단, 원인, 결과, 의견-들도 한자어의 뜻을 알면 이해가 더 쉬운 개념들입니다. 한자를 미리 공부하는 학생들은 덕분에 신이 나서 한자의 뜻을 발표합니다. 


 학생들의 "안돼~"소리를 들으며 한자 공책을 펴라고 한 뒤,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들을 거의 모두 써 봅니다. 한자어가 한글에 비해 복잡하고 쓰기 귀찮은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뜻을 알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법이 한자어 속에  들어있으니까요. 

       

  초 3학년을 학교 현장에서 만나다 보니 내년에 그들이 될 제 쌍둥이 아들 둘이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내 자식들도 이렇게 멍한 눈 하고 있으면 안되는데' 올 해 겨울 방학때는 엄마가 좀 힘들더라도 교과서를 미리 구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만이라도 한자공책에 써가며 머리에 입력해 주는 선수학습을 해 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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