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휴직을 포함한 교직 경력 10년 차였던 2020년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다른 지역에서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타시도 전입 발령을 받아 새로운 학교에서 갓 복직한 교사였고, 전입교사 치고는 무난하게 1학년을 배정받았습니다. 마침 업무도 코로나 시기 '꿀 업무'라 불리던 체험학습을 맡았고요. 여담이지만 주위에 대한 경계와 대비가 삼엄했던 그 당시 체험학습을 진행할 리 만무했고, 2년 동안 그 업무를 맡았던 저는 우습게도 체험학습을 진행해보지 않아서 추진 절차를 모르는 채로 동료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정말 할 거 없었던 업무와는 달리, 난생처음 맡아보는 1학년은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걱정을 덜어보겠다고 각종 관련 교육서적들을 사들여 읽어보았지만, 차분하게 정련된 글에서는 1학년의 역동성과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반에 30여 명 남짓. 10년 전만 해도 어림없었건만 요즘 시대에는 과밀학급이 되어야 마땅한 수의 아이들을 5월에 처음 만나게 되었고, 오랫동안 엄마와 붙어있었던 터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책상 위에 엎드려 펑펑 우는 한 아이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한 교사는 진땀을 뺐습니다. 나름 교직 경력 10년의, 초임이라는 꼬리표를 뗄 만한 교사가 말이죠. 학교는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학년당 2교시를 하면서 순환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1학년을 하교시킨 후 3학년을 임시로 두 교시동안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폭풍과도 같았던 1학년들과의 만남이 끝난 후 3학년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각양각색으로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1학년들. 아직 학교의 질서와 규칙이 전혀 습득되지 않아 들판에 자유로운 영혼이 저마다 날뛰어 도저히 한 길로 몰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들에 비하면 3학년은 그야말로 '학생들' 다웠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차분하고 집중할 줄 알며 눈치는 있으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거리는 3학년 학생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아이들을 1년 동안 가르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나요, 초등학교에서도 딱 그 말이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3학년이면 제법 학생 티가 납니다. 그들을 보면서 1,2학년때 애쓰셨을 담임선생님들을 떠올립니다. 1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의 원만한 학교 생활 적응을 위해서 사력을 다하십니다. 저만 해도 학기 초 학교에 와서 엉엉 우는 아이뿐 아니라 등교하면서 매일 놀이터에서 놀고 오느라 지각하는 아이를 지도해 본 경험도 있고요, 하교한 아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다급한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운이 없는 경우에는 사리 분별 못 하는 학생에게 구타를 당하시기도 합니다. 기사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2년 전 우리 학교 1학년 학급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업시간에 앉아만 있어 줘도 고마운 아이들과 190여 일 남짓 생활하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2학년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된 듯합니다. 키도 물론 불쑥 크고요.
하지만 2학년도 본격적인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기에는 이릅니다. 국어와 수학을 이어 배우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학습할 수 있는 수준이며, 수업 시수가 1학년과 동일하고 배우는 교과목도 동일합니다. 아이들이 부담을 덜 느끼고 '노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통합교과(옛날의 즐거운 생활,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에서 학습하는 내용과 비슷한 교과목)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2학년을 맡아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복도에서 지나가다 슬쩍 2학년 교실을 보다 보면 학습 내용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3학년이 되면 교육과정이 크게 바뀝니다. 통합교과가 사라지고 학문의 기초를 닦는 내용들을 다루는 도덕, 사회, 과학, 영어, 미술, 음악 교과가 등장합니다. 제법 묵직하고 설레면서도 부담되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3학년은 새로 접하는 교과 내용들에 대해서 열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특이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정서적으로 새로운 교과목들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을 드러내며 인지적으로 어려운 개념들을 선생님의 설명과 가르침을 들으며 이해하고,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보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흔히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3학년을 '황금 학년'이라 부릅니다. 4학년만 돼도 호기심에 반짝이던 눈들이 살짝 풀리고, 학교 생활에 대한 설렘도 때로는 지루함과 권태로 찾아오니까요. 이른 사춘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황금학년이라는 말이 교사들이 3학년 학생들을 생각하는 단어이지만, 학생들 자신에게도 교육을 받는 기간 중 황금 같은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격적으로 어려운 학문적 용어들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기억하는 습득의 과정을 처음으로 접하는 시기입니다. 대표적으로 국어시간에는 2학년 때 익혀온 문단의 개념을 확장하여 여러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 편의 글을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며, 도덕시간에는 덕의 의미와 자아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한자어를 바탕으로 우리 고장과 문화유산에 대해 학습하는 사회 교과와 생물, 물리, 지구과학의 기초 원리와 개념을 익히는 과학 과목이 있습니다. 심신을 단련하고 예술적 가치를 향유하는 체육, 음악, 미술도 어엿하게 분리가 명확히 되어 교과 시간이 분리됩니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학교에서 처음 접하는 시기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발달 과정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성장과는 질과 양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3 담임을 두 번 하면서 말입니다.
3학년을 시작할 때에 비해 마칠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는 학생들이 눈에 보입니다. 물론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학습하는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이해하고 나아가 적용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황금 같은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여느 다른 학년과 비슷하게 무난하게 지내고 4학년을 맞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누가 더 바람직하고 큰 성장을 미래에 이루어나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3학년 담임인 교사로서, 3학년을 보내고 있거나 곧 맞이하는 학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장 가능성이 큰 시기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준비하여 아이가 밀도 있게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