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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Aug 15. 2024

책 읽어주는 엄마, 책 읽어주는 선생님

 책 읽어주는 엄마,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콘셉트로 잡았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그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노는 천성도 아닐뿐더러, 말재주도 뛰어나지 않은 나로서는 이를 돌파할 거의 유일한 무기는 책 읽어주기다.


 책 읽어주기는 10여 년 전쯤, 대학원에서 아동문학 강좌를 듣던 중 소개받은 책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 당시에는 자녀가 없던 시기라 인상 깊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책 읽어주기는 중요하고, 해 주면 좋은 활동이라는 느낌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후에 책 읽어주기 활동을 다시 가까이서 본 경험은 3년 전, 같은 학년 부장님으로부터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 가입하여 어린이와 관련된 문학작품, 도서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계신 분이었다. 아직도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너무 실감 나게 읽어줄 필요는 없다. 내가 전달자라고 인식을 할 수 있을 만큼 건조하게 읽어줘도 된다.”

 

무엇보다 산뜻한 충격은 그분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다. 아무런 시각적인 자료 없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아이들에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낭독을 해주던 그 부장님의 모습. 아이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아이도 있었고,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경직되어 있지 않은, 부드럽고 자유롭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하는 듯한, 마치 그 선생님의 목소리에 다들 한쪽 귀는 열고 있는 듯한 교실의 분위기를 제삼자인 내가 창문 너머로 감지했었다.


  그때의 신선한 광경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처음 목격한 것이었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다.

  수업 후 그 선생님 교실에 찾아가 창가에 마련된 그 선생님만의 가지런한 서가를 구경하고, 아이들에게 잘 팔리는 책도 빌려왔다.

 다음날부터 짬날 때 그 책을 읽어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이 재밌다고 조그마한 쪽지를 써서 내미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좋은 반응은 그 책이 끝이었다.

 

 당시 내 아들들은 5살. 10살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책을 읽을 리 없었다. 집에서 5살 배기들이 읽는 그림책을 가져와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생들이 흠뻑 빠져들만한 도서를 도서관에서 빌려와 미리 읽어보고 청자들의 마음을 예상한 후 학교에서 읽어주고 싶은 열의도 없었다. 그 후로 선생님의 책 읽어주는 시간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교사에게는 버거운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장난을 치는 시간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끝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유야무야 학교 일과 속에서 그 시간은 없어졌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내 아이들이 1학년으로 입학을 하였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의 마음가짐과는 달라졌다. 교사일 때는 몰랐던 엄마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은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그런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 1년이 흘러 아이들이 2학년이 되었고, 나는 3학년 중간 담임으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 읽어주기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접근 방식을 달리 했다. 집에서 미리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 둥이들과 나는 그 책에 대한 감상을 미리 느껴보는 1차적 실험 대상이었다. 학교에서는 매일 15분, 집에서는 30분 읽어주므로 읽어주는 양이 차이가 나고, 집에서 읽어주는 양이 훨씬 많았다. 집에서 읽어줬던 책들 중 나의 가슴을 후벼 팠거나, 감정이 메마른 어른까지 눈물이 나오게 한다거나, 어떤 대상에 대한 관점을 바꿔준 책이나, 아이들이 재밌다고 한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 책을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학교에 가져가서 선생님이 이 책을 너희에게 왜 읽어주려 하는지, 읽고 나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선생님이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느 지점에서 선생님이 펑펑 울어버렸는지, 어디에서 선생님 가슴이 쫄깃해졌는지 등등을 미리 얘기해 준다. 그러면 반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책에게 이미 절반정도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적중률은 높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준 4권의 이야기책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려는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 책을 부모님께 졸라 구매해 와서 같이 읽는다. 매일 선생님이 읽어준 부분을 읽고 3줄 독서록 주제를 발표해서 글쓰기를 해 온다. 어떤 모범적인 아이는 이 책을 같이 아이들과 읽고 싶다며 읽어달라고 나에게 책을 가져왔다.    



   지난 일요일,  둘째가 아파서 병원에 수액을 맞으러 갈 때 책을 챙겨서 아이가 링거 맞는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어주었다. 수액실이 다인실이라 행여나 읽어주는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소심한 나는 잠시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병원에서 책을 읽어주기는 처음이라 아들과 나는 순간적으로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어색함과 타인에 대한 의식을 뒤로하고 한 장 두 장 넘겨가며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아이는 수액 맞을 때 불편하고, 걱정되고, 불안한 느낌을 전환시켜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긴 나 같아도 지루하고 불편한 시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낭독해 주는 오디오북도 찾아서 듣는 판에.

 강아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말하듯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엄마 강아지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네요.”

라고 아이가 첫 소감을 말했다. 겨울이 배경이었는데, 주인공이 고드름을 신발주머니로 치며 달려가는 장면에서 할머니 시골집에서 고드름을 따고 만져본 경험을 같이 이야기하고, 할아버지가 하셨던 사투리가 책에서 그대로 나올 때는 같이 웃었다. 벌서러 나온 학교 복도에서 비눗방울을 불던 장난꾸러기를 따라 하면서 침으로 풍선을 만들어 보였다.  

 


  방학을 맞아 나는 다시 한번 10여 년 전 느낌만 존재하는 그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오래된 책이지만 책 읽어주기의 오래된 역사, 객관적인 연구 자료 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책 읽어주기는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양치질처럼 필수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머리와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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