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아이들 얼굴을 바라본다. 지루하기만 했던 얼굴에 자기에게 혹여 발표라도 시킬까 긴장이 입혀진다. 그 얼굴들을 보고 픽 웃음이 난다.
“손 들고 말해보자.”라고 하면 입을 다무는 아이들. 수업시간 발표는 역시나 쉬운게 아니었다. 발표를 잘 시키기 위해 목소리 훈련도 한다. 전체 다 일어나서 한명씩 차례로 ‘3학년 2반 O번. OOO’를 외친 후 자리에 앉는 아이들. 그래도 발표는 어렵다. 특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은 싸한 분위기에서 손을 들어 발표를 한다는 것은, 얼음을 손으로 깰 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벤트성으로 번호 막대를 뽑아 지목의 대상이 되어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발표는 공포의 대상이다. 1학년 때만 해도 너도나도 발표하겠다고 손드는 아이들이 2년 만에 이렇게 바뀌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발표를 안 한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물론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은 있겠지만, 어찌 보면 2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우리도 떨리고, 하기 싫은 일 아닌가. 내 자식들도 발표하기를 무척이나 꺼리고, 싫어한다. 간혹 가다 오늘 발표를 했다고 하면 폭풍 칭찬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반에는 전혀 긴장 안하고, 그림같이 앉아 있다가 손을 들고 적당한 목소리 크기로 발표하는 학생이한 명 있는데 솔직히 그 아이가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단답형 질문에는 물론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는 시간에 조용해지는 것은 대한민국 교실에서 흔히들 있는 풍경 아닌가. 물론 아쉬운 현실이기는 하나 '우리 아이만'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발표는 고사하고, 우리 반에 집중 잘하면 다행인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해맑은 영혼이고 선하지만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돌발 행동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다.
어느날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양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턱을 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정말 노는거 좋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에게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것만큼이나 수업시간이 고역이었을까. 그러면서 ‘내 자식들도 학교에서 저러고 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도 한창 노는거 제일 좋아하는 9살들이기 때문에.
수업을 열심히 하고 난 후 쉬는 시간에는 편히 앉아서 쉬며 다음시간 준비하자 하는데, 웬걸, 이번엔 그 아이가 네발로 바닥을 열심히 쓸며 기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업시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쳐가며 말이다. 큰 소리로 제지하려다가 그냥 뒀다. 저렇게 하면서라도 스트레스 풀어라 하는 생각에.
자식을 낳기 전에는 반에서 학생들이 발표를 안하면 괜히 내가 초조하고,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모르겠고, 반응 없이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됐었다. 발표하라고 강제로 시키고, 왜 발표안하냐며 다그치고 말이다. 콧구멍에 손가락 넣고 있는 아이를 자식 낳기 전에 만났다면 분명 엄하게 제지하며 혼을 냈을 것이다. 쉬는 시간 두 손, 두발로 기어다니는 경우는 물론이고.
이제는 ‘내 자식들도 학교에서 저러고 있을지 몰라.’ 라는 생각에 더 엄마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게 된다. 잔소리 하나 더 할거, 그러려니 하고 내가 그냥 해주자. 솔직히 잔소리도 귀찮을 때가 있다. 말로 하며 에너지 쏟느니 행동으로 내가 하자는 주의다.
이제 방학도 하루 남았다. 콧구멍에 손가락 넣고 있던 학생이 안 본 사이 얼마나 의젓해지고 커졌는지 내일 모레 한번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