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 쿵. 쿵. 쿵. 쿵. 곡의 시작을 알리는 베이스 드럼이 내 심장을 직구로 때렸다. 성격이 차분해지고, 카페인에 내성이 생긴 이후로 심장이 울리도록 두근거리는 느낌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하게 울리는 드럼 소리에 내 심장의 울림은 불가항력적으로 노래와 싱크가 맞춰졌고, 이 생소한 커다란 진동 덕분에 공연장이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10년 전 이매진 드래곤스의 내한 공연에 갔을 때가 생각나면서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맞아, 내가 이 느낌 때문에 밴드 사운드를, 드럼을 좋아했었지.
조금 알아서 자신감이 넘칠 때 우매함의 봉우리에 올랐다가 더 아는 게 많아져 넓은 세상을 깨닫는 순간 절망의 계곡에 빠진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 오늘 이 절망의 계곡에 한없이 추락했다. 요즘 드럼을 배우고 있어서인지 드러머 분과 드럼 소리 위주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관객의 입장이 되자 연주할 땐 못 느꼈던 부분들을 많이 느꼈다. 베이스 드럼이 얼마나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지, 라이드 심벌이 얼마나 몽글하게 울리는지, 고요 다음에 나오는 스네어 드럼이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약 조절, 스틱을 쥐는 텐션, 여유, 궤적 등 다양한 디테일들이 모이면 드럼이 얼마나 곡을 멋지게 만들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그동안 했던 건 연주가 아니라, 단순히 타이밍 맞게 정해진 위치를 때리는 리듬게임에 불과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친구에게 듣기론 그분은 거의 10년 동안 합주와 공연을 하신 분이셨고, 나는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밖에 안 되었으니 나와 그분의 격차가 나는 건 당연했다. 다만 그 격차가 생각보다 훨씬 커서, 그리고 드럼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생각보다 넓어서, 절망의 계곡에 빠져 아득함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욕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물론 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못 하는 것도, 고쳐야 될 점도, 배워야 할 것도 많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을 잘 찾아나가고 있고, 삐걱거릴 때도 있지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는 내 삶이 좋다. 하지만 오늘 드럼 덕분에 더닝 크루거 효과가 생각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존감이 자만감이 되지 않으려고 의식하곤 있지만, 어쩌면 이 자존감도 조금은 위험한 면이 있는 게 아닐까? 아직 결론을 내진 못했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 될 것 같다.
내 삶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창작이다. 돈을 벌고 싶거나, 유명세를 얻거나,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창작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의미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창작 활동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은 활동이고, 나 또한 이 과정을 재밌어하니 계속 해나갈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다. 과연 내 글은, 내 창작물들은, 드럼처럼 누군가에게 심장의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어떤 끓어오름이나 충격을 줄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과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