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일이었다. 나는 내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 편이다. 작년에는 우연히 생일에 아이유 콘서트 티켓팅이 있었다. 생일 선물로 성공하게 해달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성공했다. 이번 생일에는 이런 이벤트도 없었다. 평범한 평일과 다를 바 없이 보냈다. 생일이란 무엇인가. 태어난 날을 1년 주기로 기념하는 날이다. 이 365라는, 정확히는 365.2425라는 숫자는 원주율이나 황금비처럼 어떠한 수학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공전과 자전의 천문 역학적 우연에서 나온 숫자일 뿐이다. 이 주기는 비슷한 기후가 비슷한 날짜에 오도록 맞춘 것으로, 과거 농경사회에서 나온 관성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서도 여행을 비롯하여 이 주기가 의미 있는 산업들도 꽤 있긴 있다. 그러나 개발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주기다. 게다가, 굳이 호불호를 논하자면, 불호에 가깝다. 정확히 365일도 아니라서 윤년을 예외 처리를 해야 하는 것부터, 매달 포함된 일수가 다른 것도 꽤나 귀찮다. 가장 귀찮은 건 달과 주의 주기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개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둘째 주 일요일이라고 했을 때 서로 다른 날짜를 생각해서 오해가 생겼던 경험이 있다면 이해가 될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둘째 주 일요일'보다 '두 번째 일요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만약에 4주씩 13달로 해서 364일이 1년이었다면 개발자로서는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365.2425일을 주기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큰 감흥이 없다.
비슷한 느낌으로 100일의 배수마다 기념하는 것도 잘 와닿지 않는다. 단순히 우리가 10진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100일마다 기념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8진법을 사용했다면 64일마다 기념했고 12진법을 사용했다면 144일마다 기념했을 것이다. 10진법이 널리 퍼진 이유는 우리의 손가락이 5개씩 달렸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손가락이 하나씩 더 많아서 12진법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1년에 달이 12번 차고 기운다는 우연은 제쳐두고도, 12는 수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12는 자연수 중 최초의 과잉수다. 과잉수란 진약수(자기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자기보다 큰 수를 의미한다. 12의 경우 1 + 2 + 3 + 4 + 6 = 16으로 12보다 크기 때문에 과잉수라고 한다. 반면 10의 경우에는 1 + 2 + 5 = 7로 10보다 작다. 이런 수는 부족수라고 한다. 과잉수라는 건 많은 수로 나누어떨어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분배의 과정에서 갈등이 줄일 수 있다. 만약 우리 손가락이 하나 적은 4개여서 8진법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개발자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환성적일 순 없다. 개발자들은 16진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10진법과 16진법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8진법을 사용했다면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혹은 8진법을 사용했다면 애초에 16진법을 안 쓰고 실생활과 같은 수의 체계에서 지내지 않았을까. 심지어 2^10 = 1024가 1000과 비슷하다고 대충 퉁 치기도 하는데, 나중에 이 괴리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GB와 GiB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10진법을 안 좋아하는 입장에서의 과장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신체를 기준으로 어떤 체계를 정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도 있다. 생물학적 특징은 수학과 달리 불변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가락의 개수가 다르게 태어난 아이는 10진법을 배울 때 소외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아무튼, 수학을 좋아하는 개발자의 지극히 개인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사회통념상 생일은 매년 기념된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당신을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그 이유를 만들어줘라."라는 말을 본 적 있다. 비슷한 느낌으로, 의미를 모르겠는 생일이 매년 돌아온다면, 그 의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미라는 건 결국 내가 부여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생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가 묘비명이 생각났다. 태어난 날에 대한 생각에서 죽음에 대한 게 생각나는 걸 보니 역시 끝과 끝은 이어져 있는 걸까.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묘비명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에, 각자 묘비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어차피 나는 죽고 없는데 묘비명에 내 삶에 대한 요약, 평가, 감상을 적는 게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반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 묘비명을 보는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여 내 묘비를 찾아오는 고마운 분들이다. 이런 고마운 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 더 나아가서, 비록 제갈공명은 아니지만,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나보다 더 잘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의외로 있었다. 바로 묵묵히 들어주기, 그리고 비밀 지켜주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 묘비명을 이렇게 정했다.
힘든 일이나 고민을 다 털어놓아도 괜찮아요.
이 비밀은 무덤까지 꼭 지켜줄게요.
생일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봤다. 내가 스스로 챙기지 않는다 해도, 생일이 되면 고마운 연락과 선물을 받는다. 이런 날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번에는 반대로, 그래도 태어남에 대한 날이니, 태어나서 살아있기에 더 잘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은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받음', '행동'이라는 두 키워드가 나오자 저절로 결론이 도출됐다. 이번 생일에는 받은 축하의 절반만큼 기부를 해보기로 했다. 페이커 패키지인 이유는 페이커 선수에 대한 팬심이고, 절반인 이유는 갑자기 타짜의 "난 딴 돈의 반만 가져가."라는 대사가 생각나서였다. 그래도 보내주신 분들의 성의가 있으니, 절반 정도는 내가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자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콩 한쪽도 반씩 나눠먹을 수 있는 위인은 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여유로울 때만 남에게 여유를 나눠줄 수 있다. 생일은 축하와 선물을 받는 날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여유로워지는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게 생일의 의미란, 남에게 여유를 나눠주기 가장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