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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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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Aug 22. 2024

버들피리 파는 노파

시가 있는 에세이 (14)

 버들피리 파는 노파


   남영 전철역 개찰구를 빠져 나와

   바로 보이는 간이매점 옆에서 

   작고 꾀죄죄한 노파가

   자기처럼 말라비틀어진

   버들피리 여남은 개,

   신문지 한 장 크기 돌가루종이 위에 놓고

   팔고 있다.


   꼭 노파를 닮은 버들피리는 

   아무리 불어 봐도 희미하게 꺼져가는 

   소리만 낼 뿐, 사람들은 무심히 스쳐 가는데

   마음 착한 중국집 철가방이

   퇴짜 맞은 짜장면 한 그릇 슬쩍 디밀자

   반색을 하며 수삼번은 더 고맙다면서

   나무젓가락으로 허겁지겁 면(麵)을 비빈다.


   순결한 면발(麵髮)은 검은 짜장으로 하여

   그녀의 인생처럼 뒤엉키어 비벼지고 잘라지고  

   마침내는 밑바닥 보이며 다 사라졌는데

   잠시 행복하였던 노파는 

   자알 먹었다는 듯, 트림한번 하고선


   여전히 제 소리 내지 못하는 버들피리 불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

   힘겹게 팔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B시에서 은행 지점장을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김 사장과 점심식사를 자주 했었다.

 그런데 김 사장의 단골메뉴는 다름 아닌 ‘자장면’ 이었다. 처음 김 사장과 대면하여 식사하던 날, 자기가 잘 아는 맛있는 중국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해서 나는 서울 강남에 있는 ‘자금성’이나 ‘만리장성’같은 그런 으리으리한 중국집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는 허름한 뒷골목 중국집으로 들어가면서 어긋나 버렸다. 

 “이집 짜장면 맛이 B시에서 최고이지요.”

1980년대에 국어순화운동의 일환으로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바뀌었지만 김사장은 여전히 ‘짜장면’으로 부르기를 고집했다. 자장면이라고 부르면 어쩐지 면발이 퉁퉁 불어 맛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100억대의 재산가이면서도 그는 자장면을 무척 좋아했고, 처음에는 대단한 짠돌이라고 흉보았던 나는 차츰 그를 닮아가서 어느새 경쟁적으로 B시의 맛있는 자장면 집을 찾아내어 함께 순례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와 아무런 부담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던 것도 서민의 음식이라는 자장면 덕택이 아니었나 싶다.   

 1년 반 정도 지나 내가 다른 곳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장면 한 그릇 하자며 내가 몰래 알아둔 중국집으로 김 사장을 초대 했다. 

 “이집 짜장면 맛 일품이네. 식당 개 삼년에 라면 끓인다더니 이지점장도 이제는 짜장면 맛에 통달했군요.”

한 그릇 잘 비우고는 자기가 자장면을 좋아하게 된 연유를 비로소 털어 놓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종적을 감추시자 어머니도  아들 딸 삼남매를 모두 친척집에 맡겨 두고 객지로 돈 벌러 나가셨지요. 나는 큰아버지 댁에 맡겨  졌는데 조카 대접 제대로 못 받고 그 집에서 청소하고 심부름하며 밥 얻어먹고 지냈지요. 어느 날 나보다 한살 위인 사촌누나가 내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짜장면을 시켜 먹는데 어떻게 먹고 싶은지 옆에서 슬쩍슬쩍 훔쳐보았지요. 혹 남기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누나는 국수 가락만 다 건져먹고 짜장 찌꺼기만 남은 질퍽한 그릇을 내게 주더라고요. ‘밥 비벼서 먹으면 맛있다’고 하면서. 

 나는 누나의 침과 범벅이 되었을 질퍽한 짜장 찌꺼기에 다 식은 밥을 비벼 먹으며 내 눈물도 콧물도 함께 삼켰지요. 그리고 결심했지요. 반드시 돈을 벌어서 제대로 만든 맛있는 짜장면 실컷 먹어봐야겠다고.    

 그길로 나는 혼자 무단 상경하여 온갖 고생을 다 해서 돈을 모았지요. 틈틈이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두었다가 정비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부터 오늘날의 내 사업이 비롯되었지요.“  

 “사촌누나는 어떻게 지내세요?”

“그 참 딱하게도 시집가서 남편이 주색잡기에 빠지는 바람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다 날리자 집안이 풍지박산 되었지요. 남편은 병들어 죽고 아들딸은 어미 못 모신다고 다 미국으로 이민 가버리고 혼자서 달동네 판잣집에 살던 것을 내가 알고 생활비를 매달 보내주고 있지요.”

“정말 훌륭한 복수를 하셨군요.”

“복수는 무슨--- 사람이 할 도리를 한 거지요.”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좋지 않으셨다면 그 음식을 싫어해야 되지 않습니까?”

“왜요? 그때 그 사촌누나가 짜장면 찌꺼기를 내게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돈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못하고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자장면 한 그릇에 버들피리 파던 노파는 잠시 삶의 고달픔을 위로받기도 하고, 김 사장은 삶의 자극제를 만들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혹 남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베풀 기회가 있다면 생색을 내지 않고 오직 사랑과 정성으로 베풀어야 하겠다.


<되돌아 보니>

삶이 재미있는 것은 마냥 잘 되는 사람도 없고 마냥 못 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 거기서 거기다. 잘 나간다고 거들먹거리던 사람이 쫄딱 망해서 거리에 내 앉는가 하면, 지하철 구내에서 노숙하던 사람이 볼펜장사부터 시작하여 백만장자가 되는 것을 보았다. 오래 살 일이다. 나도 그렇다. IMF 때 은행 없어지고 수삼년을 이곳저곳에서 시간강사하며 세월을 허비했는데, 낯선 땅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이름도 얻고, 건강도 얻고, 보람도 얻었다. 내 말년 이만하면 족하다. 돈은 베풀지 못하지만 나의 지식과 경험을 온통 교민사회를 위해 쓰고 있다. 자랑 좀 해도 되겠지. ‘브런치’에서는 날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는 '브런치'가 아침 겸 점심 식사 파는 식당의 웹사이트인줄 알았다. ㅎㅎㅎ.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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