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 그 짧은 만남
살다보면 지독한 불행이 엄습하는 경우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이 문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오타와 방문이 그랬다. 10여년의 밴쿠버 거주기간 동안 캐나다 동부는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거짓말처럼 그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여행경비 일체를 캐나다 국회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2014년 9월 22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수상이 한국과 캐나다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동의안에 서명한 적이 있다. 캐나다 연방 하원의원 국제무역상임위원회에서는 국회비준절차를 앞두고 청문회 비슷한 것을 했는데 내가 한국교민 측 참고인 자격으로 초대되었다. '무역실무 연구'로 경제학 박사를 받았지만 한국에서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내로다 하는 쟁쟁한 인물들이 쌓였을 터니. 이론적으로 무역실무를 잘 알고 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설명해줄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10월 7일 10시에 국회 별관에서 참고인 진술을 해 달라는 요청을 불과 일주일전에 받고 보니 무척 마음이 급했다. 미리 사면 반값정도인 오타와 국내선이 한국가는 비행기요금과 맞먹을 정도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표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도 주고, 교통비도 주고, 숙박비도 준다고 해서 숟갈 하나 더 얹는다는 가벼운 심정으로 아내를 동반했지만 백이십여만원의 아내 몫 비행기표에 흠짓 놀랐다. 그것도 겨우 5시간여 비행하기를. '뭐, 일부러라도 여행갈 양인데 괜찮아' 했지만 10월 9일의 밴쿠버 총영사관 주최 교민행사에 참석해야 하니 오타와 구경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이틀, 그중에서 잠자고, 밥먹고, 청문회 참석하고 어쩌고 하는 시간을 제하면 한나절 반이 고작이었다.
세시간의 시차 때문에 10월 5일 오전 10시 밴쿠버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타와공항에 오후 3시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현지시간 오후 6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퀘벡주에 도착했다. 불과 강건너 다리하나 사이에 퀘벡주와 온타리오주가 엇갈렸다. 수백년전부터 프랑스인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퀘벡주는 프랑스어가 우선적인 공용어이다. 캐나다속의 프랑스. 저녁먹으로 식당에 가니 프랑스어로 주문을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 본토처럼 아주 프랑스어 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영어도 통한다. 간혹 나보다 더 더듬거리는 영어를 하는 프랑스 백인을 보게될 때면 그는 영락없이 최근 프랑스어 사용권 국가에서 이민온 사람으로 생각해도 무관했다. 캐나다에서의 내 밥그릇 수가 더 많음을 과시하기 위해 공연히 혀를 굴리면서 영어를 말했다. 좀 어쭙잖기는 했다.
오타와는 온타리오 주에 속하는데 왜 퀘벡주에 숙소를 잡았는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틀림없이 오타와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 숙소는 퀘벡주에 있는 가티노 시에 있고 국회의사당은 호텔 창문 밖 강 건너 언덕에 서 있는데 행정구역이 온타리오 주 오타와 시이다. 숙소에서 걸으면 20여분, 택시로 5분정도 걸린다. 원래 캐나다의 수도를 정할때 몬트리올로 하려다가 퀘벡의 프랑스계를 보듬어 안기 위해 양 주의 경계선에 자리잡았단다. 그렇게 지척이니 예전에 영국계 주민들이 '우리가 남이가?' 했어도 프랑스계 주민들, 별 할 말이 없었겠다.
10월 6일. 우선 청문회 장소인 국회의사당 별관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동부는 비가 오지 않으려니 했는데 아침부터 사납게 비가 쏟아졌다. 비오는 도시 밴쿠버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자는 건가? 내부라도 구경하려고 들어갔더니 출입증이 내일 발급된다고 한다. 용건없이는 못들어 보낸다는 관공서 방침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캐나다 국회 국제무역상임위원회(Standing Committee on International Trade)에서 필자가 '한캐자유무역협정의 상호 이익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실은 며칠동안 준비한 내용을 A4용지 세장 정도로 간추려 그냥 읽었다. 필자 앞의 팻말이 증인들(Witnesses)이라고 되어 있어 좀 기분이 이상했지만 법원의 증인이 아니고, 계약체결전에 캐나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의원들이 방청하는 절차라서 그냥 소신껏 이야기했다. 어쨋던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별관에서 몇불럭 북쪽으로 올라가니 국회의사당(Parliament building)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미국 워싱턴 케네디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이 눈에 띄였다. 천연가스로 점화된 불꽃이니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불어도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심지어 불꽃 주변으로 형성된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솟구쳐도 함께 있는 불꽃은 꺼지지 않는단다. 불꽃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아가며 화살촉처럼 생긴 12개의 암각문양이 대석에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캐나다 12개 주 및 준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각 주의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다.
사실 그 불꽃의 정확한 이름은 '백주년 불꽃(Centennial flame)'이다. 캐나다 12주가 함께 모여 연방(federation)을 결성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의 첫날인 1967년 1월 1일에 불꽃분수대가 만들어졌다. 어? 연방결성일이 현재 캐나다데이로 기념하는 7월 1일인데? 그리고 준주까지 합치면 13개 주(州)인데? 이 글을 읽고 금새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캐나다 역사에 밝다고 할 수 있겠다.
영국왕실에서 공포한 영령북미법령(British North America Act), 즉 캐나다법령에 의해 온타리오,퀘벡,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등이 모여 신생국 캐나다를 만든 것이 1867년 7월 1일. 그 이후 메니토바, 브리티시컬럼비아,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서스캐처원, 알버타, 뉴펀들런드 레브라도 주 및 노스웨스트 준주, 유콘준주 등이 연이어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12개주가 되었고, 누나붓 준주는 1999년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준주가 되었기 때문에 그 문장은 불꽃분수대의 대석 위에 장식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7월의 100주년 기념일을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협동, 단결하는 캐나다인의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철거하지 않고 둔 것이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국회의사당 본당
센터니얼 플레임 분수대
국회의사당을 둘러보기 위해 안내자 동반 견학대열에 합류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철저한 보안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공항검색대처럼 소지품을 상자에 담아 엑스레이 검사장치를 통과시켜야 하고 사람도 따로 아치형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캐나다의 심장부 중의 심장부인 국회의사당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쯤은 감수해야 했다.
오타와를 신생 캐나다의 수도로 정한 사람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란다. 수도유치를 두고 토론토, 몬트리올, 킹스턴, 퀘벡 등의 도시가 치열한 경쟁을 벌렸는데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가는 겨우 형성된 신생국가가 분쟁에 휘말려들 판이었다.
그당시의 오타와는 작은 도시로, 도로포장도 되어있지 않았고 주변에는 벌목장 막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곳이었다. 어부지리(漁父之利). 지역이기주의의 폐혜를 막기위한 여왕의 현명한 선택이 빛난다. 그래서인지 의사당 도서관 가운데 자리잡은 빅토리아 여왕 입상이 우러러 보인다. 내 키가 작아서 위로 올려볼 수 밖에 없기도 했지만. 아무튼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주변의 반대도 무릅쓰고 퀘벡과 온타리오를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오타와를 수도로 정하고 그 지역에 국회의사당 건설을 지시한 여왕이 있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부상할 수 있었던가 보다.
마침 하원(House of Common)이 회기중이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국회 본회의장 배열은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부채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모든 국회의원들이 연단에 집중하게 되어 있는데 캐나다는 여당석과 야당석이 분리되어 있었다. 정사를 논하는 토론장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 하라는 뜻인가?
의사당 도서관 내 빅토리아 여왕 입상
서로 대치하는 배열로 이루어진 국회 본회의장 좌석>
국회 본회의장에서 뜻이 맞지 않으면 욕설을 하고, 육박전을 하고, 오물을 끼얹고, 최루탄을 터트리기도 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회풍경에 익숙한 나로서는 캐나다 국회의 토론(debate)장면은 심심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반대의견이 나오는 경우 약간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 이외에는 그저 초등학교 학급회의 하듯 조용히 진행되었다. 가끔 자기 진영의 발언자가 옳은 의견을 내면 박수를 치거나 책상을 두드려 지지를 표현하는 정도가 회의장 내 소음의 전부였다. 이런 상황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입장전에 일반 참관인들의 휴대폰을 모두 수거, 보관하였다가 퇴장시 반환해 주었다. 내가 지지하는 야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의 당수 톰 멀케어와 원내 야당대표 피터 줄리앙의 모습이 보였지만 아는 체 할 수도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어 좀 섭섭했다. 얼굴도장 한번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국회의사당은 1927년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전체 3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른편에 있는 건물(The East Block)은 의원들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고, 왼편의 건물(The West Block)은 연방정부 장관들의 집무실과 정부요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하여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오타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의사당 밖을 나서니 숨겨졌던 캐나다 동부의 가을하늘이 멀쩡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밴쿠버보다 2-3도 정도 기온이 낮지만 인구가 적어 오염이 덜 된 탓인지 공기는 상큼했다. 10월 초인대도 어느새 단풍은 수줍던 초록의 모습을 훌훌 다 털어 낸 듯 당당하게 붉은 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서 있는 전쟁기념탑(National War Memorial)을 찾았다. 해마다 11월 11일에 열리는 캐나다 현충일 행사를 국영방송인 CBC가 실황중계를 해 주기 때문에 눈에 익은 구조물이었다.
탑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대략 21.34m인데, 폭 3.5m, 높이 8.03m의 대리석 아치 위에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5.33m의 청동입상 두개가 시가지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횟불을 들고 있는 입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여신 데메테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입상은 승리의 여신 니케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염원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아치의 아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캐나다 각 군별 용사 23인의 청동상이 놓여있다. 일정이 빠듯한 관광객들은 기념탑앞에서 후다닥 증명사진(?) 몇 장 찍고 다음 관광지로 이동하리라.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다면 23인의 동상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정면 좌측에는 1차대전 당시 주력무기였던 루이스경기관총(Lewis gun), 우측에는 비커기관총(Vickers Machine gun) 을 어깨에 둘러맨 보병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를 이어 전투기 안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공군조종사, 해군 수병, 기마병, 라이플소총을 휴대한 두명의 저격병, 육군의무대의 간호병, 기술병, 산악병, 철도병, 포병 등이 전선을 향하여 행진하고 있다. 탑의 후면에서 보면 육중한 포병들이 끌고 가는 육중한 대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쟁기념탑 정면
한국전 참전연대가 기록된 측면
이 전쟁기념탑은 1938년 10월 19일 완공되었다. 구조물 설계도 공모끝에 영국출신 건축가인 버논 마치의 디자인이 채택된 1926년 1월 18일 이후로 12년 9개월이 걸렸다. 마치는 기념탑의 의미를 전쟁의 참혹함에 두지 않고 그저 '조국과 민족의 부름에 언제든지 묵묵히 달려가는 용사들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그 용사들이 60여년전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묵묵히 한국으로 달려갔기 때문에 그때 태어난 나같은 전쟁동이가 자유천지에서 평화롭게 성장하여 마침내는 그들의 나라에 와서 이 기념탑에서 숭고한 그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1,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한국의 '내전'에 참여했다는 명분으로 한국전은 캐나다 내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1982년 5월 29일 2차대전(1939년-1945년) 및 한국전(1950-1953)에 참전하여 희생된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연도표시가 탑의 좌우측에 새겨짐으로 이제 해마다 캐나다 현충일에는 한국전이 더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마침 오타와에는 전쟁박물관이 있는데 한국전기념관도 있다고 하니 꼭 들러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매개체가 되어 한국교민들과 캐나다참전용사들과의 교류가 돈독해지고, 그로인해 발전하는 한국의 위상도 캐나다에 깊이 각인되는 듯하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피흘려 참전한 국지전이 여러 곳인데 은혜를 갚겠다고 경쟁하듯 보은행사를 가지는 민족이 어디에 있으며, 희생의 터전위에서 상록수처럼 싱싱하게 하늘로 가지를 뻗어나간 나라가 어디 있던가.
기념탑을 지키려는 듯, 탑 정면에는 남, 녀 두명의 경비병이 직립자세로 꼼짝않고 서 있었다. 가끔 서로 교차하며 위치를 바꾸기도 하는 데, 장기간 서 있으면 다리의 혈액순화에 문제가 생길것 같아서 예방차원에서 취하는 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었다. 스물 두셋정도 되어 보이는 건강함에 절도있는 움직임이 관광객들의 좋은 사진모델이 되는 듯, 그들과 함께 포즈를 잡는 여럿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하나가 불과 2주 후 이슬람 무장단체 아이시스(ISIS;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를 신봉하는 같은 캐나다인 과격파에게 살해당할 줄 누가 알았으랴.
2014년 10월 22일 오전 10시경 몬트리올 태생인 마이클 제하프 비보가 난사한 소총에 맞아 탑 주변을 경비하던 나단 시릴로 상병이 사망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과 일전을 벌린 이후 한번도 전쟁을 해 본 적이 없던 평화로운 캐나다의 국민들은 이 사실에 경악했다. 같은 북미주이지만 세계의 분쟁해결을 위해 주도적 직접적으로 참전하는 미국이 무장테러리스트들의 타겟이 되는 반면 캐나다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아이시스 토벌작전에 공군전투부대를 파견한 캐나다에도 보복하겠다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협박성 발언이 있은 후 설마설마 했던 터인데 사건이 벌어졌으니 전 국민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범인은 비록 리비아 출신의 아버지를 두기는 했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아이시스의 사주를 받지 않은 독단적인 돌발행위로 밝혀져 국민들의 놀란 가슴은 다소 진정될 수 있었다. 범인은 라이플소총을 들고 국회의사당 건물 안까지 진입하였으나 의회 베테랑 경비경찰인 케빈 비커스에 의해 사살되었다.
양귀비 꽃 바람에 흩날리네 플랜더즈 들판에
열지어 선 십자가들 사이에서
거기 우리들이 있는 곳이라네, 그리고 하늘에선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고 있네
포화 속에서 그 노래 잘 들리지는 않지만
우리는 죽은 이들이요. 허나 며칠 전에는
우리는 살아서, 동트는 새벽도 느꼈고, 타오르는 노을도 보았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누워만 있다네
플랜더즈 벌판에서
적들과의 분쟁은 그만 그치게 해 주오
쇠잔하여지는 우리들의 손으로 그대들에게 간구하니
그대, 약속의 횃불을 높이 들어주오
우리 죽은 자들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잠들 수 없을 것이요. 양귀비꽃 무성히 자란다 한들
이 플랜더즈 들판에서는.
(플랜더즈 들판에서-존 매크래)
생사를 가름하는 포화속에서도 문학은 존재한다. 전쟁기념탑을 지키다 사망했던, 전쟁터에서 전사했던, 용사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목숨을 바쳤다. 1차대전에 참가했던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크레 중령이 친구인 알렉시스 헬머중위의 전사를 애도하며 쓴 시는 해마다 캐나다현충일에 전쟁기념탑 앞에서 낭송되고 있다.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없도록 해달라며 붉은 양귀비꽃 무성한 플랜더즈 들판에서 죽어간 용사들의 간구는 세세년년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눈덮힌 산하, 피어린 능선에서 희생되었다. 강보에 싸인 핏덩이었던 내가 그들의 언약을 상기하며 전쟁기념탑 앞에 서 있다. 내 마음은 오타와 기념탑 뿐 아니라 한국의 여느 현충탑 앞에서도 서 있다. 용사들이여. 그대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자유를 지키려는 그대들의 염원으로, 지구촌 어느 구석이던 비오고 바람부는 분쟁지역은 마침내 햇살이 그 모습을 드러내어 밝은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약속하듯 오타와의 초가을 하늘은 언제 비 왔었냐는듯 시침을 뚝떼고, 청량한 햇살을 전쟁기념탑 위에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