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인생이다. 세상을 방문할 때가 있고 세상을 떠날 때가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 세상으로 왔을 때 내지른 울음소리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형제자매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던가. 생명은 그저 아무렇게나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달을 준비하였다. 미지의 세계를 해쳐갈 뼈와 살을 형성하느라.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날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기대에 가득찬다. 어디에서 몇일밤을 묵을 것인가. 어디어디를 가 볼 것인가. 맛집은 어떤 곳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 어떤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까.무엇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기 위한 준비기간은 설레임 그 자체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 같은 캐나다이지만 무언가 달라 보이는 오타와 공항에서의 첫 발검음. 보는 사람들마다 우리-아내와 나-를 환영하는 듯 했고, 가는 곳마다 색다른 사람, 색다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데스크의 영어 어눌한 프랑스 종업원, 아침 뷔페식당의 씩씩한 흑인 웨이트리스, 멕시코에서 왔다는 수다쟁이 젊은 택시운전사, 미소가 환상적인 국회의사당 건물 안의 금발 여성 안내인. 고색창연한 의사당 건물, 전쟁의 역사와 아픔이 배어 있는 전쟁기념비와 전쟁박물관, 칼튼 대학, 바이워드 시장, 차이나타운, 캐나다 역사박물관----,
그러나 여행은 인생이다. 마침내 왔던 곳을 떠나야 할 날이 오고, 우리는 피곤한 몸으로 여행의 흔적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는다. 늙고 병들어 곤한 몸으로 지난 날의 추억 속에서 지내다 때가 되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우리네 삶처럼.
다른 점이라면 여행은 다시 여행지를 가 볼수 있으나, 인생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곳을 두세번 가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처음의 기대와 신비가 느껴지지 않는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면 기쁠까? 아픈 기억만 있었던 사람들은 천만에일 것이다. 그래서 삶은 한번 밖에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열심히, 신나게,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을 떠날때 후회가 덜 남을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오타와에서의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하루를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시내지도를 펼쳐 놓고 하루동안 방문할 수 있는 명소 간의 동선을 그려 보았다. 이미 이틀동안 시내버스를 잘 이용했던 터라 이번에도 1일 버스표(Day Pass)를 구입, 현지인들처럼 자신있게 오타와 시가지를 누벼 보기로 했다. 밴쿠버와 마찬가지로 1일 버스표를 구입하면 하루종일 버스와 전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구태어 돈내고 승용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탈 필요가 없었다. 크지 않지만 오타와 도심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수도 답게 사통팔달이다.
밴쿠버에서는 전철을 스카이트레인(Skytrain)이라 한다. 지하보다 고가철로가 많아서 이다. 맨 앞 차량에서 밖을 보면 마치 하늘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다. 노선도 엑스포라인, 밀레니엄라인, 캐나다라인 등 세 개로, 닿지 않는 지역은 환승버스로 연결되어 편하다. 오타와 전철은 오-트레인(O-Train)으로 불리며 단선이다. 전철역도 다섯에 불과하다.
그런데 차량의 외관이 참 예쁘다. 앞머리는 유선행으로 고속열차처럼 생겼다. 20여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본 신간센열차와 비슷하다. 미적 감각은 더 뛰어난 듯 하다.
하기는 한국고속철도 차량도 그 외관이 날렵하게 생겼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탑승해 보지 못했다. 내가 캐나다에 온 이후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 몇번 갔어도 이상하게 탑승기회를 놓쳤다. 다음에 서울 가면 제일 먼저 해볼 일이 부산까지 고속철 여행이다. 두 시간여 걸린다니 다섯시간 걸리던 새마을 열차에 비한다면 상전벽해일 터다. 외양은 인터넷에서나 보아 왔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고속철 차량 수준이 전국의 시내 전철에 운행되었으면 한다. 전 세계 도시의 세련미는 건물, 차량, 옷차림 등에서 보이는 미적 감각이 주도한다는 개인 생각이다.
도심 쪽 종점인 베이비유(Bayview)에서 두정거장인 칼튼 역에서 내렸다. 칼튼대학(Carleton University)은 1942년 설립된 종합대학이다. 스펙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은 캐나다 10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오타와대학(University of Ottawa)을 제치고 왜 칼튼대학을 가보았느냐고 할 지 모른다. 다운타운에 가까운 큰 대학보다, 도심을 벗어난 작은 대학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혹 칼튼 출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오해 없으시기를 바란다. 상대적 비교에 따른 부지의 크기를 말함이지 결코 교육수준 및 학생들의 연구능력 등이 작다(못미친다)는 뜻이 아니다.
오타와 전철
칼튼대학 전경
칼튼대학교는 설립당시 시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던 건물과 교회 지하 등에서 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실시하던 교육기관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50여개의 학과, 약 1만6천여명의 학생들과 스텝들로 성장하였으며, 젊고 다양한 창조적인 연구활동으로 캐나다의 신흥 명문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학건물이 수도인 오타와 시에 위치해 있는 덕으로 연방 정부의 각 부처, 연구소, 국가 기관, 외교부서, 오타와에 상주한 첨단 기술분야의 기업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칼튼대학교 캠퍼스는 강과 운하 그리고 호수를 배경으로 위치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자연 속에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부럽다.
대학 구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불현듯 17,8년 전의 모대학 지방 캠퍼스가 생각났다. 학생들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통학하던가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수려하고 아름다운 구내가 외래교수로 강의하던 내 마음을 무척 끌었다. 학생들도 참 순수하고 착했다. 전임교수가 아니고 외래인데도 스승의 날을 챙겨주며 꽃다발도 주고 '스승의 은혜' 노래도 합창해 주었다. 먹먹해진 나는 '사랑으로'라는 '해바라기' 노래를 보답으로 불렀다. 학생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속이 시리고 아렸다. 잔잔한 슬픔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당시는 IMF사태로 기업체들이 구조조정에 열을 올릴 때였다. 있는 종업원들도 내 보내는 판인데 신입사원들은 어림없었다.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최악이었다. 하필 그때 졸업반이었던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턴데 해맑은 모습으로 외래교수를 대했다. IMF의 희생양으로 문을 닫은 직장에 있었던 나의 속이 아프고 시릴 수 밖에 없었다.
이 동네 저 동네 보따리 들고
하찮은 지식 팔러 다니던 나더러
교수님. 목 마르실 텐데---
수줍은 오렌지 주스 한 캔
교탁에 올려 놓았었지
학점 쫌만 올려 주시면
이번 학기 장학금 신청 할 수 있어요
밤늦은 알바에 공부시간 부족했다며
그리 애원 하였더랬었지
무정한 거절에 마음 아팠지?
졸업 앞두고 갈 곳 없는 현실에
직장 잃은 보따리에게도
하소연 하던 너는 아이엠에프(IMF) 졸업학번
무참한 시절은 또다시 다가 오고
자네는 이제 시집을 갔겠지, 혹
불황에 떠는 남편과 자식 걱정에
형편 쫌만 낫게 해 달라고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께
그리 애원하지나 않으려는지
무정한 거절에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거라
어려웠던 시절 꿋꿋이 넘긴 너는
용감무쌍하던 아이엠에프 졸업학번
(필자의 시 '여제자 진양')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 절대평가 과목의 경우 A,B 학점을 난발해 주었건만 졸업후 취업했다는 소식은 가믐에 콩나듯이었다. 모두들 이제는 40대의 중년이 되었을 터. 아픈 시절은 결코 단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인생진리를 깨닫고 세파를 잘 헤쳐 나가고 있으리라.
다시 다운타운으로 들었다. 명품상점이 즐비한 바이워드 마켓(Byword Market)을 둘러 보았다. 명품을 사러 간 것이 아니고, 마켓 주변에 한국식당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는데 도무지 찿을 수 없었다. 사흘 내내 양식만 먹다보니 김치와 얼큰한 국물생각이 났던 거이다. 열심히 물으면 친절히 답해주어서 찾아가보면 중국이나 일본식당이었다. 이사람들에게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똑같이 여겨지는 모양이다.
차이나타운 쪽에 한국식당이 있다고 누가 귀뜸해 주어서 그 방면의 버스를 탔다. 밴쿠버 도시인이 오타와에서는 촌놈이 되어 버렸다. 운전사에게 몇번이나 물었는데 아직 멀었다는 대답 뿐, 버스는 계속 낯선 곳을 달리기만 했다. 이러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감에 뚫어져라 앞을 응시하는데 저만치서 차이나타운 관문의 상징인 천하제일문이 보였다. 여기냐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렸다. 그런데 관문은 다섯블록 앞에 있었다. 차로는 금방이지만 걷기는 수월치 않다는 것을 그만 생각하지 못했다.
비 오시려는 듯 흐린 날씨에 후덥지근하기 까지 한데 사흘간의 객지생활로 피곤해져서인지 한블록이 수만리였다. 관문까지 버스정거장이 세군데나 더 있는데 조급하게 내려버린 결정을 무척 후회했다.
다행히, 뜻하지 않게, 우연히, 걷다가 한국음식점을 발견했다. 늦은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었다. 육개장과 비빔밥을 시켜 천하제일미인듯 맛있게 먹었다.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고 박동진 명창의 TV 광고 멘트가 절로 생각났다.
못보던 한국사람이서인지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오타와 사세요? 아니면 서울서 오셨어요? 밴쿠버에서 왔어요. 국회 청문회 참석하느라고요. 경기는 좀 어떠세요? 마지막 질문은 손님없는 식당을 보면서 할 내용이 아니었다.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오구요. 중국사람들도 많이 와요. 지금은 때가 지나서 그렇지 저녁에는 좌석이 모자라요. 식당하면서 아들 딸 교육 다 잘 시키고, 먹고살고 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이민이라고 생각해요.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버릇처럼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섰다. 과연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일까? 한 세상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헛된 약속을 남발하는가. 오타와에서도 우리 민족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감흥만 남기고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캐나다 역사박물관(Canadian Museum of History). 다행이 숙소가 있는 가티노에 있었다. 객실 창문에서 보이는 곳이라 천천히, 나중에 보면 된다고 했는데 그 나중이 순식간에 왔다. 뭐든 그렇지 않은가. 밴쿠버로 돌아갈 날도 순식간이고 하늘로 돌아갈 날도 순식간이리. 의무처럼 세상구경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 불현듯하다.
역사박물관은 2013년 12월 12월 캐나다 문명박물관(Canadian Museum of Civilization)에서 개명되었다. 시작은 1842년 캐나다 천연자원부(Natural Resources Canada) 산하에 캐나다 지질조사청(Geological Survey of Canada)이 생기면서 전국의 광산물, 에너지 및 수자원을 조사하기 위한 탐사단이 작업중 발굴한 원주민들의 흔적을 모아 전시하면서 비롯되었다. 지질조사청의 수집품들은 여기저기 분산, 전시되어 오던 것을 1910년 오타와 멧카프거리의 빅토리아 여왕 기념 박물관 건물을 점유, 한 곳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0년 인근 국회의사당 화재로 박물관이 임시 국회건물로 사용되자 소장품들은 새 국회청사가 건설될 때까지 창고 안에서 보관되었다.
1989년 완성된 새 박물관인 퀘벡주 가티노로 옮겨지기 까지 소장품들은 국회건물 또는 이곳 저곳 다른 박물관으로 떠돌이처럼 옮겨져 전시되었다.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루어져서 인지 오늘날 전시된 소장품들은 전혀 손상됨이 없어 보였다.
캐나다 역사 박물관은 오타와 건축사에서도 경이로움을 남기고 있다. 더글라스 카디날이 설계한 곡선형 벽에는 찰랑이는 썰물의 형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석굴암 부처 좌상에서 느끼는 부드러움이 돋보인다. 건물 내부를 들어가면 바닥에서 천장까지 연결된 유리창문을 통해 오타와의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1층 원주민 전시관(First Peoples Hall)에 들어서니 우리와 닮은 원주민들의 생활상이 파노라마처럼 연출된다. 배재대 스페인어학과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발해유민들이 러시아의 춥지반도와 캄차카반도에 이르러 배를 타고 알류산열도를 지나 아메리카 전 대륙에 퍼졌다고 하는 데, 캐나다 원주민들이 남긴 역사, 예술, 문화의 흔적들을 보면 전혀 근거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사박물관 전경
원주민 전시실의 토템군
전 세계에서 토템폴을 가장 많이 소장한 이곳에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정인가? 아득한 옛날 같은 피를 가진 조상들이 간난신고끝에 새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도 옛 생활풍습을 버리지 않았고, 비록 변형되었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애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침략자들에게 도륙되고 역사와 문화가 파괴되면서도 끈끈히 살아남은 그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시대로 날아가 현대의 지식을 알려 주어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도록 하고 싶다. 내가 공상과학영화에 너무 심취해 있는 것일까?
같은 층에는 캐나다 우표수집 전시관(Canadian Stamp Collection)이 있다. 1851년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3,000여점의 우표를 전시해 두었다. 영구 전시관으로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여 발행된 우표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캐나다 전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초등학생때 형과 함께 새 우표만 나왔다 하면 우체국에 가서 사 모으던 일이 생각난다. 공동작업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수집물이 많았고, 학교에서 숙제를 내면 앨범에 잘 넣어서 제출했다. 어떻게 이런 귀한 우표들을 수집했느냐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놀라곤 했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한때 소중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은 세월과 함께 버려지기도 한다. 물건은 버리되 사랑과 우정, 신의와 성실 같은 덕목은 내 마음속의 영구전시관에 보관해야 겠다.
2층에는 어린이박물관(Canadian Children's Museum)이 있다. 미래의 역사는 어린이들이 만들어 간다. 해서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부모들은, 또는 학교 선생님들은 어린이들에게 역사박물관을 견학시킨다. 그것 뿐이면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어린이 박물관을 만들어 둔 듯 하다.
말이 박물관이지 어린이 놀이터와 흡사하다. 캐나다와는 다른 문화권의 전시물, 소도구, 복장, 수공예품, 장난감 및 게임기구 등을 설치해 두어 어린이들이 간접적으로 다른 세계를 경험해 두게 배려하였다.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배우고, 즐기게 함으로써 아이들을 매혹한다. 한 번 들어가면 떠날 줄 몰라서 항상 어린이들이 벅적대는 박물관이다.
전형적인 파키스탄 버스의 실물
아이멕스 영화의 한 장면
이리저리 둘러 보는데 가족생활관(Family, Big and Small)에 일본 다다미방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봉쥬르, 헬로, 곤니치와(Bonjour, Hello, Konichiwa)라고 불어, 영어, 일본어 인사말이 쓰여 있는 일본 전통가옥 내부에는 아이들이 전통적인 일본 가정의 생활양식을 체험하고, 일본 아이들의 놀이인 종이접기(origami)를 하고, 옷가게에 기모노를 주문하고, 일본식 정원에서 쉬면서 하이쿠를 쓰게 하였다. 일본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진 한민족인 나는 갑자기 기분이 안좋아져서, 나머지 전시물은 보지도 않고 서둘러 어린이 박물관을 나와 버렸다.
가만히 살펴 보면 세계 곳곳에서 그들은 문화의 흔적을 남긴다. 기증하는 형식으로 살그머니 전통가옥, 전통 정원등의 모형을 여기저기 설치한다. 내가 봉사하는 버나비 문화협회의 뒷 발코니에도 일본정원이 설치되어 있다. 일본문화는 과거 백제문화의 아류이며, 한국이 그 원조이다라고 떠들면 무엇하는가. 짧은 세월동안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으며,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쓴다고 으시대면 무엇하는 가. 모두가 순간에 사라져버릴 명성들인 것을. 그러나 건축물 및 구조물은 오래 간다. 어린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캐나다 아이들은 동양문화라 하면 일본을 기억할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들은 은연중에 일본 편이 될 것이다. 문화투자에 인색한 한국정부나 국민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아이멕스 영화관. 오후 6시에 상영하는 '북극의 경이(Wonders of Arctic)'를 관람하기로 했다. 언뜻 보아 600-700석 좌석에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우리 부부 포함 열두어명이 관람객이었다. 180도 회전하는 돔 스크린의 장관 속에 아름다운 북극의 장관이 3만와트의 사운드와 함께 경이를 이루었다. 내용은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점차 사라지자, 북극곰 가족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인데, 머리 꼭지까지 펼쳐지는 장대한 스크린 덕에 비행기를 타고 북극을 여행하듯 했다.
이산화 탄소 배출 증가와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수면이 올라가면 가라앉게 되는 섬과 육지가 생길 터인데, 우리 후손들에게 '워터월드(케빈 코스트가 주연한 영화. 극지 빙하가 녹아 전 세계에 물바다가 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미래 인류들의 이야기를 영상화 함)'를 남겨주지 않으려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자제하거나 대체연료를 시급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여행은 끝났다. 오타와에는 아직도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농식품박물관, 항공 우주박물관, 과학기술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냉전박물관, 화폐박물관-----인간 삶의 흔적을 보관한 곳들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내일 떠나야 한다. 한 번 다시 옵시다. 다음에는 제대로 둘러 봅시다. 지켜질 지 모르지만 아내에게 기약해 본다. 아쉬움은 여운으로 남는다. 역사박물관 앞을 흐르는 오타와 강변에서 고색창연한 국회의사당과 스카이라인을 바라본다. 비 그치자 걸리는 오색 무지개에 여행의 짧은 추억을 살그머니 올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