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코우브(Deep Cove), 길 잃은 파도의 안식처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한 마디. 백발의 남자가 건강진단을 하러 병원을 찾았다. 연세가 여든이라고 하시는데 건강 지수는 육순입니다. 무슨 비결이 있으신지요? 의사의 물음에 여든 노인 답하기를, 60년간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놀란 의사. 부부싸움으로 위기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여든 노인. 신혼 초에 우리 부부는 약속을 했지요. 부부싸움을 하면 아내는 부엌에서 칼로 도마를 내리치며 화를 풀고, 나는 바깥에서 뜀박질로 화를 풀기로. 궁금해진 의사. 그게 선생님의 건강유지에 무슨 영향을 끼쳤지요? 육순 몸매의 팔십노인. 6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뜀박질을 했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이 지속되는 기간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라고 한다. 사랑이 시작되면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고 싶고, 좀 더 서로를 잘 알고 싶어진다. 그러나 눈꺼풀에 덮힌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말다툼이 시작되고 첫 위기가 닥치려 할 때, 아이의 출산은 구세주의 역할을 한다. 곧 여자는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고 남자는 직장에서나 운영하는 사업체의 성공을 기원하며 앞만 보며 인생길 달리느라 바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장성하여 각각 제 짝을 찾아가고, 빈 집에 둘만 남으면 다시 공포의 계절이 닥친다. 더 이상 남성의 구실도, 돈도 벌지 못하며 늙어가는 남자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어려운 집안 살림을 잘 꾸려온 여자는 발언권이 강철주먹이 된다.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이 잦아지는데 이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헤어지게 된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사유이다.
밴쿠버도 예외가 아니다. 교민사회가 좁은 바닥이서인지 한 두 사람 건너서 남의 잘못 된 이야기는 빛의 속도로 퍼진다. 타인의 성공 이야기는 거북이 걸음으로 알려지거나 아예 한 사람의 입에서 묵살되어 버린다.
부부싸움 이야기로 서두를 장황하게 장식한 이유는 따로 있다. 10여년 전 우리 가족이 밴쿠버로 이주한 것이 내게는 마치 신혼의 시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때는 7월, 세계의 관광객이 밴쿠버로 몰려 오는 황금의 계절에 우리 가족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5위권' 안에 든다는 이 도시로 왔다.
눈부신 태양,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항진하는 유람선, 흔하다 못해 질려버린 녹색의 잔디밭, 집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볼 수 있는 하늘 찌르는 삼나무 군락, 개나리, 진달래, 왕벚꽃, 수국, 튤립, 히야신스, 장미, 수선화 등 온갖 꽃들이 만발한 동네 공원, '하이' 하며 눈 인사하는 금발의 서양 미녀들, 노인들이 전철 안에 들어서면 불에 댄 듯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의 에티켓, 길거리 악사들의 공연, 장애자들을 위해 버스 앞문의 발판을 땅에 닫도록 내려 주는 대중교통 운전자들의 배려, 이러함이 나의 화려한 신부, 매혹의 반려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여기도 사람사는 세상. 깡패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거지도 있고, 좀도둑도 있고, 밴댕이 속을 가진 이웃들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불행하게 하는 것도 자연보다는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채 그녀(밴쿠버)와 신혼생활을 한 지 1년이 되지 않아서였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옛 유행가사 한 귀절 처럼,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금전적 손해-밴쿠버 사람들은 신고식이라고들 했다-를 보고 나서야 이 여자, 밴쿠버와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국 생활에 시달리고 지치면 딥코우브를 찾았다. 서두의 백발노인과 다른 점은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였다는 것.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아내와 지난 날의 좋은 추억을 이야기하면 어느 새 삶의 간난신고는 연약한 파도와 함께 태평양으로 흘러 들었다. 딥코우브는 한국의 동해안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캐나다 서해안의 해안선에 도달, 휴식을 취하고 다시 태평양으로 흘러 드는 길 잃은 파도들의 안식처였다.
딥코우브에서 본 인디언 암 해협
카누 및 카약 센타
사실은 밴쿠버 동북단 스콰미시 릴루엣 지역의 볼드윈(Baldwin) 산에서 발원된 인디안 리버가 다시 인디언 암 해협(Indian Arm Inlet)으로 흘러 들어 바다가 되는 데, 딥코우브는 인디언 암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소금기가 스며 있기 때문에 인디언 암은 '해협'이라 해도 무난할 듯 하다.
빙하기부터 형성된 피요르드 식 해협은 동으로 밸카라, 서로는 딥코우브가 있는 노스 밴쿠버를 사이에 두고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버라드 해협과 조우한다. 왜 이름을 '인디언의 팔'이라고 명명하였느지는 모르나 아마도 1792년 이 지역을 발견하고 탐사한 죠지 밴쿠버 선장 일행이 버라드 해협에 이르기까지 20km 정도 뻗어있는 이 물길을 인디언의 팔 처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바다에서 한참 떨어져 수면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더구나 세이무어 산자락이 병풍처럼 딥코우브를 감싸고 있으니 비 바람과 싸우며 태평양을 넘나드는 성난 파도들이 조용히 안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여름이면 카누장이 성황이다. 정확히 말해서 4월 부터 10월까지다. 딥코브 해안 주변에 형성된 마을은 성수기면 밴쿠버 주민들 뿐 아니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 중에서 뱃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카누와 카약 등을 빌려주고 초보자에게 강습까지 해 주는 곳이 있다. 딥코우브 카누, 카약 센터이다. 마을 남동쪽에 위치한 이곳은 현 위치에서 30년간 운영되어 왔다. 노젓기(paddling) 뿐만 아니라 배가 뒤집혔을 경우 회복법, 회전 시 균형 유지법, 심장발작 및 뇌졸증 등 응급상황 발생시 처치법, 물에 빠졌을 경우 대처법 등을 기초부터 고급단계까지 가르친다. 배를 대여해 주기 전에 안전교육을 먼저 하고 준비운동도 시킬 뿐 아니라 반드시 구명자켓을 착용하도록 의무화한다. 기본에 충실하려는 캐나다 사람들의 정신이 엿보인다.
카누와 카약이 어떻게 다른가? 카누는 배 이름이고 카약은 카누를 타는 것이라고 이해했던 내 무식함이 딥코우브에서 들통 났다. 카누는 단단한 통나무를 배어 속을 파낸 형태의 소형 배, 카약은 나뭇가지를 모아 뼈대를 만든 다음 짐승의 가죽으로 덮어쒸운 것 것이란다. 자세히 보니 카약은 양 쪽으로 노를 젓게 되어 있는 반면 카누는 한 쪽으로만 저을 수 있다.
또한 카약은 앉는 곳에 덮개가 있어 발부터 허리까지 몸이 물에 잠길 수도 있지만 카누는 덮게가 없으니 허리까지 물에 잠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카약은 폭이 좁고 길게 만들어져 가볍고 날렵하며, 스피드가 뛰어남으로 거친 물살에서도 탈 수 있는 반면 카누는 폭이 넓고 카약에 비해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둥그스럼한 느낌의 형태. 잔잔한 물에서 타기 좋아 안정감이 있다.
두 시간 기준으로 일인용은 캐나다달러 40불, 이인용은 55불이란다. 딥코우브를 방문할 때 마다 한 번 타보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D은행 중계동 지점장 재직시 직원 단합대회차 연천 한탄강 계곡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레프팅을 한 적이 있었다. 40대 중반이었는데도 노젓기에 힘이 달리어 젊은 직원들에 비해 한참 뒤쳐지던 자존심 손상의 추억 때문이리라. '이제와 세삼 이 나이에' 자존심 상할 일이 더 무엇이 남아 있으랴. 다음에는 기필코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어 보지만 딥코브에 올 때마다의 1회성 각오에 그치고 만다.
코우브(Cove)란 작은 만, 즉 바다가 육지 쪽으로 굽어 들어온 곳으로 해안선에 둘러싸인 수역을 말한다. 여기에 딥(Deep), 즉 깊다는 뜻이 더해져서 딥코우브는 바다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온 해안선이라는 뜻이 된다.
이 지역은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원주민 스쿼미시 살리시족의 오랜 어로지역이었다. 스페인함대와 영국함대가 이 지역을 발견 탐사하기 시작했던 18세기 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딥코우브 해역에서 고래가 잡혔고, 껍질이 벗겨져 살은 살대로, 뼈는 빼대로 가공처리작업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부터 딥코우브는 밴쿠버 거주자들에게 상당히 인기있는 여름 휴양처가 되기 시작했다. 벌채된 통나무와 채굴된 화강암으로 지어진 집들이 속속들이 이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이어 요트클럽, 댄스홀, 일반 상점등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외부인을 위한 휴양지와 내지인을 위한 하나의 작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오타와 국립도서관에 그림이 걸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이자 저술가인 챨스 반 샌드위크가 그의 10대를 보냈고, 아카데미 상 두번, 골든 글로브 상을 세번 받은 헐리웃 미남배우 밴 에플렉이 2000년대 초반 여기서 살았다.
또한 영국태생 시인이자 소설가인 맬컴 라우리(Malcolm Lowry)가 1940년대에 인근 돌라톤(Dollarton) 해변 무허가 판자집에서 무단 거주자로 살았다. 그의 대표적 소설 "화산 아래서(Under the Volcano)"는 1947년에 발간되었는데 한국에서도 '대산세계문학총서'중 하나로 2011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번역, 발행되었다. 멕시코, 캐나다 등 이곳저곳을 떠돌다 어느 곳에서도 안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알콜중독자로 지낸 그는 '빠르게 탄생하고 소멸되어 갔던 20세기적 가치에 질문을 던지며(문학과 지성사 책 소개문 일부 인용)' 외롭게 투쟁하다 47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살던 무허가 판자집은 화재로 소실되어 사라졌고, 현재는 딥코우브 지척 케이트공원에 작은 기념판(Plaque)만이 작가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하니 도우넛 가게
한국인이 경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산과 바다와 육지가 어울려 빚어내는 수려한 자연경관 뿐 아니라 딥코우브에서 미각을 자극하는 유명한 곳이 있다. 하니 도우넛 가게(Honey Doughnuts & Goodies)이다. 춤 잘추는 헐리웃 유명스타 죤트래블타가 이 가게의 도우넛을 사먹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온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을 가진 이곳은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 출신의 사파렐리(Saferali)라는 성을 가진 아시파(Ashifa), 아삭(Ashak) 부부가 30여년전 유럽스타일의 가정식(Homemade) 요리와 도우넛을 만들어 팔면서 시작되었다.
아침 6시 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이 식당은 오전 7시 부터 오후 4시까지 계란, 베이컨, 가정식 감자빵, 프렌치 토우스트, 오트밀 등을 브런치(Brunch)로 제공한다. 점심시간이 되어야 갓튀긴 아삭아삭한 허니도우넛을 맛볼 수 있는 데 가게 안 테이블은 고작 10여개 정도, 실외 테이블도 10개를 넘지 않는다. 스프와 함께 머핀, 스콘, 쿠키, 커피 및 음료 등도 사먹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고객들은 10여분 이상을 기다려 가며 갓 튀긴 도우넛을 찾는다.
신선한 기름에 도우넛을 튀겨 진짜 꿀에 재워 만든다는 이 도우넛은 첫사랑 맛이다. 주인 이름처럼 아삭, 아삭한 맛은 꿀맛과 함께 혀를 녹이는데 두개 째 맛은 좀 덜 하다. 세개 째를 먹으면 달콤한 꿀맛이 느끼함으로 바뀌고 발효된 밀가루 덩어리의 맛이 오히려 역하게 느껴진다. 배가 불러 간혹 남는 것을 집에 싸가지고 가는 데 식어버린 도우넛의 맛은 영 별로다. 식어버린 첫사랑 맛이다. 기억하는 가. 무조건 감칠 맛 나던 그 첫사랑의 감촉을. 그래서 이제는 딥코우브에 가도 딱 한 개의 도우넛만 사 먹는다.
느끼함을 씻으려면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제 격. 옆가게인 '젤라또 익스프레스'를 찾아 이테리식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 문제 해결. 여름 더위 뿐 아니라 삶의 고단함까지 싹 날려 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째 광고성 문구 같다. 이유가 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부부가 7년째 운영하고 있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건너 온 물줄기가 딥코우브에 정착하여 열심히 살고 있다. 입으로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고 어쩌고 할 것 없다. 대신 입으로 젤라토 아이스크림 가득 채우면 그게 민족사랑이다. 잘 되지 않는 영어 보다 한국말로 주문하며 "꾹꾹 눌러 담아 주세요"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정겹고 좋은가. 이역(異域)에서.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동포가 운영하는 가게라면 열심히 찾아 주시기를.
도우넛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면 걸어야 한다. 둘 다 당분이 높으니 혈당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특히 가벼운 산책으로 좋은 땀을 흘리며 당을 몸 속에서 배출해야 한다. 딥코우브를 경유하거나 거기서 시작하는 산책로, 즉 트레일(Trail)은 여러 곳이 있지만 나는 보통 걸음으로도 2시간 만에 왕복할 수 있다는 4km 길이의 퀴리락(Quarry Rock) 트레일을 즐긴다.
딥코우브 주차장에서 왼쪽 보도로 걸어 올라 가면 바든 파우웰(Baden Powell) 트레일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인디언 암의 장관이 펼쳐 지는 천연 암석으로 이루어진 조망대(Look Out)가 나온다. 거기가 끝이다. 수만 수십만년 전 부터 흘러내려 마침내 바다로 가는 물길을 만든 자연의 조화에 티끌같은 인간의 경외심은 한이 없다.
아름다운 나무계단과 다리를 건너고 바위 틈새로 수줍게 흐르는 개울물을 건너는 호젓한 트레일이지만 주말이면 북적이는 인파로 산보 체증이 있다. 뭐,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색다른 표정들을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여유있는 표정들에서 삶의 동질성을 느낀다.
세월이 어지간히 흐르고서야 나도 그들의 대열에 서게 되었지만 처음 딥코우브를 만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내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그녀, 서울과 이별하고 조금은 낯설지만 기대를 안겨 주던 또다른 그녀, 밴쿠버와의 사랑이 식어갈 무렵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할 때 나는 해질 녁 물끄러미 인디언 암을 바라보고 있던 챨스를 만났다. 그는 내게 순식간에 사라질 삶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잠시 그의 의자에 앉아 '저무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에 귀 기울이며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다.
챨스 씨
당신이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가로등 불빛 아래 외로이
우연이었는지
그날은 당신의 생일이었지요
그날은 내 생일 하루 전이기도 했었지요
세 살 나보다 많던데
우리는 서로 다른 별 아래 태어나서
이제는 같은 별 아래 마주보고 있군요
외롭고 서러운 타향살이 넋두리
당신은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만 있었지요
우리는 영혼으로 대화하였고
겨우 세 살 많은 당신은
고매한 스승처럼 내게 권했지요
‘잠시 앉으세요(Sit a while)
저무는 해를 바라 보세요(Gaze at the sunset)
바다 소리에 귀 기울이며(Listen to the sea)
휴식을 취하세요, 웃으며(Relax, smile)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세요(And remember me)’
그래요. 세상은 항상 나를 버렸지만
당신은 언제나 나를 반기지요
바다가 보이는 딥코브(Deep cove) 그 언덕 위에서
그래요. 힘들 때 마다 난 당신에게 가서
당신의 충고를 듣겠어요
당신의 그 소중한 한 마디를 떠올릴 때 마다
내 실없이 허둥대던 나날은
조금씩 여유를 찾아 간답니다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건데
당신이 그리 서둘러 떠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을 내 기억하리다(In Loving Memory of)
챨스 리차드 맥런 씨(Charles Richard McLarn)
내 고단한 이방인의 삶에 휴식을 주려고
향기 나는 시더나무 추모 의자로 남은
바다가 보이는 딮코브 그 언덕 위에서
(필자의 시 "챨스")
퀴리락 트레일 중간중간 놓인 나무다리
챨스의 메모리얼 밴치
인간의 불행은 외적(外的)인 것에서 오는 가 내부에서 오는 가. 물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외적인 것에서라고 한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그는 거짓이었어. 고귀한 인품을 가졌다고 알려진 그가 나를 힐난하고 모욕했어. 고위층 지인을 이용해서 내 자리를 빼았았어. 힘없고 배경없는 나는 그냥 졸(卒) 신세일 수 밖에. 뼈빠지게 일해 봐야 버는 돈은 있는 사람 껌값에 불과해. 사람이 싫다. 세상이 싫다. 나는 옳고 바른데 남은 모두 위선자고 사기꾼이야.
그리고 그런 생각은 우리 내부에서 분출된다. 때로 내가 남의 '보기 싫은 남'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 비교의 대상은 모두 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해 지는 것이다.
나는 챨스의 조언을 들으려고 한다. 불과 갓 60, 아직은 아까운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는 '웃으며, 나를 기억하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랴. 다만 나는 그가 울고, 웃고, 싸우고, 이기고, 만족하고, 절망하면서 여전히 치열한 나날들을 살아 왔지만 결국은 시더나무 의자로 남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나는 '내 탓이요. 모두 내 탓이로다'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면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사후에 나를 단순히 하나의 묘비명으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문학'을 하기 위해 힘썼던 사람으로 기억되어지기를 원하며 다짐한다. 해질녁 딥코우브 챨스의 의자에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