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프, 돌아오지 않는 강가에서

주마간산 여행기 (20)

by vankorwriter

밴프, 돌아오지 않는 강가에서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수영을 못 해서 자연히 물가에 가지 않게 되고 산을 찾는다. 그러나 산속을 흐르는 계곡 물은 좋아한다. 강이나 바다와 달리 구태여 수영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물살에 깎여 동글동글해진 조약돌이 계곡 물 속에 있어서 좋다. 서정주 님의 시 '국화 옆에서' 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고, 소쩍새 피 울음 울던 나날들은 모두 가버리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노년기에 있으니, 치열한 삶을 위해 나날이 칼을 세우던 내 마음은 이제 조약돌로 남았다.


공자는 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물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쉬임없이 흐른다.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은 흘러서 바다로 간다. 더 원대한 꿈, 더 위대한 목적을 향해 물은 흐른다. 막힘이 없다. 그게 지혜로운 사람의 자세이다. 남보다 더 슬기롭고 현명하여서 삶에 막힘이 없다. 항상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닦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 그건 젊은이의 자세다.


젊은 시절, 나는 바다를 좋아했다. 아득한 수평선 넘어 사라지는 외항선을 보며 낯선 나라, 낯선 포구에서 울고 웃고 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비좁고 답답한 한국 땅에서 사소한 일로 부딪치고 깨어지며 살아가는 나날이 싫었다. 버스 좌석도 항상 앞자리만 고집하던 나는 뒤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하였다. 더 넓고 화려한 곳으로 흐르기 위한 나의 물줄기는 쉼 없었다. 아득한 절벽 바위에 부딪혀 물거품으로 부서지기 까지는. 해서 이제는 바다가 '별로'다. 타국에 살면서 때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 세월을 반추하다 보니 더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미 '꿈' 속에 사는 데, 태평양을 건너면 내 꿈은 사라질 것 같은 착각 때문이리라.


공자는 또한 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산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에 묵묵히 순응한다. 노루, 사슴, 토끼, 곰, 호랑이도 머무르게 하지만 지네, 거미, 하루살이 등 작고 하찮은 생명도 포용한다. 이런 미물들이 생존을 위해 산의 품 안에서 야단법석을 해도 산은 요동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생명이 산의 품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요 가운데 자연의 섭리를 지키는 의리를 지닌다. 그건 늙은이의 자세다.


노년이 되면 산을 닮아야 한다. 산의 편안하고 푸근함을 배워야 한다. 산짐승들뿐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허용하고 베푸는 산의 관용을 배워야 한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산의 의지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가 존중하고, 의지하고, 허물없이 찾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


밴프 국립공원의 산들을 찾은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로키산맥 동남단에 자리 잡은 밴프는 1883년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인 '캐나다 태평양 철도(Canadian Pacific Railway; CPR)' 선로작업 인부들인 윌리엄 맥카델, 토마스 맥카델, 프랭크 맥케이브가 설퍼 산(Mt. Sulpher, 해발 2,285m) 기슭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내려가다가 종유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지하동굴 온천을 발견하면서부터 그 화려한 관광명소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철길도 놓였겠다, 온천도 발견되었겠다, 게다가 설퍼 산에서 바라보는 주변 환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소유권을 두고 아웅다웅하다가 결국은 1885년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1888년 객실 250개 규모의 '밴프 스프링 호텔(Banff Springs Hotel)이 당시 캐나다 태평양 철도회사 사장이던 윌리엄 호언(William Cornelius Van Horne)의 지시하에 건설되면서 호텔, 상가, 주거지 등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오늘의 밴프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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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 스프링호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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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건설자 윌리엄 호언의 동상


호텔 건설을 지시한 윌리엄의 동상이 호텔 입구의 로터리를 오가는 차량을 가리키고 있는데 원래 호텔 정문을 현재와 반대되는 보우폭포가 보이는 쪽으로 만들려고 했단다. 그런데 철도회사 사장인 윌리엄이 공무에 바빠 호텔 신축현장에 자주 들리지 못하는 사이에 건축설계자가 그만 거리 방향으로 정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럽의 성채같이 지은 산속의 호텔은 심신을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여 소란스러운 길(지금의 Spray Avenue) 쪽으로 입구를 내었다 하여 화가 난 윌리엄이 아직도 손가락질하면서 '저, 저, 저것 좀 봐.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건 완전히 호텔이 아니라 도떼기 시장판 같잖아' 하고 있다나?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는 주로 관광안내원으로 부터 나온 것이니 너무 귀담아들을 일은 아닌 듯하다.


또는 처음 신축할 때 주변 자연환경에 걸맞은 소박하고 검소한 스코틀랜드인 주거지 형태의 건물을 지을 것을 지시하였는데 오록(J.W. Orrock)이라는 건축디자이너가 13년간에 걸쳐 개보수작업을 하면서 웅장하고 화려한 성채같이 꾸며놓아 하루 최저 숙박비가 기본 객실(standard room) 기준 50만 원으로, 돈 많은 사람들이 주로 찾게 하여 윌리엄의 뜻에 거슬리기 때문에 이를 꾸짖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것도 별 신빙성이 없는 듯한 이야기다. 그냥 재미삼아 들을 내용일 뿐이다. 왜냐하면, 건축 당시는 목재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1926년 화재로 다 타버리자 철근 콘크리트, 벽돌 등 현대식 건자재로 성채처럼 재건하여 1928년 완공하였는바 1915년 11월 몬트리올에서 사망한 윌리엄이 이를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1940년 세계 제2차대전의 발발에 따른 불경기로 문을 닫은 이 호텔은 1945년에야 영업을 재개하였다. 1999년 가을 페어몬트 호텔 그룹이 동 호텔을 인수하면서 좀 더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764개의 객실, 골프클럽, 세계적 수준의 실내온천, 회의실, 예식장 등 최신식 시설과 설비를 갖춘 고급 호텔로 거듭나게 되었다. '로키의 성(The Castle in the Rockies)'이라고 불리는 이곳 예식장에서 화려하고, 우아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 세계의 커플들이 몰려온다지만 행복하고, 우아하고, 화려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지는 서로에게 달린 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 걸려 있는 명동 YWCA 결혼식장에서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검소하고 소박하고 진솔하게 가진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황혼의 삶을 행복하고, 우아하고, 때로는 화려하게도 보내니 백년가약에 있어 장소가 무어 그리 중요하랴.

1926년 화재 때 예식장에서 긴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불에 타 죽었는데 그 원혼이 아직도 결혼식장을 맴돈다는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려진 것을 본 적이 있다. 괜히 이 호텔을 흠잡고 싶은 누군가가 퍼뜨린 것 같다. 항상 남 축복은 못 해주면서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흘린다.


캘거리에서 열린 캐나다 노인회 총연합회 결성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12명이 밴프 선택관광을 하였다. 밴쿠버,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에서 온 각 지역 노인회 관계자들은 처음 만났는데도 금세 친해졌다. 외로운 길을 혼자만 가는 줄 알았는데 길동무를 만난 심정일까? 5년을 넘게 노인회를 위해 봉사하였으면서도 한 번도 나는 노인이 아니다, 그냥 잠시 재능기부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생경하기도 하고 마음이 없는 일을 억지로 한다는 느낌도 가지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나와 비슷한 길을 가는 노인회 봉사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동병상련이랄까, 1박 2일의 짧은 밴프 관광일정 동안 모두가 친지요, 친구가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 각 지역 노인회 지도자급들인 일행들끼리 짧은 일정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회단체를 이끌어 나가다 보면 구공탄 같은 사람, 마른 장작 같은 사람, 젖은 짚단 같은 사람이 어디에나 있어 희비가 엇갈린단다. 처음 사회단체 회원가입을 하면 자기가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노라 하면서 단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고서는 금방 싫증 나서 돌아서는 사람. 마른 장작에 불붙듯 하는 사람이다. 회원가입을 하였는데 열심이지도 않고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헐뜯기만 하다가 종래는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적을 만들면서도 끈질기게 단체에 계속 붙어 있는 사람. 젖은 짚단 태우듯 매운 연기만 피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 소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구공탄처럼 쉬 불붙지 않으나 한 번 불붙으면 오랫동안 주변에 온기를 전해 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모임을 잘 이끌어 나가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들의 봉사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보람 때문에 자신의 돈과 시간을 희생해 가면서 한인 단체의 일을 한다. 사소한 견해차로 한인사회에 발걸음을 내딛지 않으려는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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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발 빙하 아래서의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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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 핫 스프링 온천


앞으로도 나보다 남을 위해 여생을 살자고 다짐이나 하듯 일행은 까마귀 발 빙하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혹자는 '까마귀 발 빙하 아래서'라고 했는데 까마귀 발이 어디 있는가 궁금해할 것이다. 왼쪽에서부터 여섯 번째 사람까지의 머리 위를 보면 눈 덮인 빙하가 바위에 의해 두 개로 나뉜 것이 보인다. 원래 왼쪽에서 세 번째 사람 머리 아래로 다른 줄기의 빙하가 흘러내려, 멀리서 보면 세 개로 된 까마귀 발 형상을 하고 있는 데 맨 아래 빙하 줄기는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부상한 까마귀 발 빙하가 되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지 모르지만, 함께 하는 여행의 한순간만큼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숨김이 없이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설퍼 산에 있는 '어퍼 핫 스프링'에서 온천욕을 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만 살짝 가리고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다. 밴프의 목간통(?)에서도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관광안내인이 남녀 혼탕에 간다고 해서 잠깐 음침한(?) 생각을 했다. 주여 용서하소서!. 그러나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음침한 생각을 한다면 구제불능의 성도착증 환자 취급받을 것이다. 혼탕 대중 온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모르겠다. 내가 20대였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지금은 인생의 가을 길. 아무리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목청 높이 외쳐봐도 노화(老化)는 신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찾아 오는지 비키니의 젊은 여인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래도 질투심만큼은 늙지 않았는지 수영복 입은 아내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그게 백인이건, 흑인이건, 황인종이건-의 눈길이 5초 이상 머물면 도끼눈을 하고 째려본다. 아내를 향한 사랑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밴프의 '목간통'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본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설퍼 산을 오른다. 도보는 언감생심. 곤돌라를 타고 8분 만에 정상에 도달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서 정상에 도달하는 사람과 편안하게 앉아서 휙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을 오르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 산행을 세속적인 출세주의에 비교한다면 그럴 수 있다. 예컨대 직장인의 경우 누구는 평사원부터 시작하여 고생고생하며 고위직에 오르지만, 금수저 물고 태어난 재벌가 후손들이나 정치적 뒷배가 든든한 사람들은 곤돌라 타고 산을 오르듯 쉽고 빠르게 고위직에 이른다.


하지만 부러워할 것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땀 흘린 자의 보람을 곤돌라 타고 신분 상승한 사람은 느낄 수 없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오만방자하고 보통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왕따(?) 당하다가 마침내 일찍 정상에서 내려온다. IMF 때 직장에서 구조조정이 되던 사람들은 거의 고속승진하여 젊은 나이에 고액의 연봉을 받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때도 재벌가 후손들은 예외였겠지만.


곤돌라가 도착한 정상에는 터미널 건물이 있다. 식당과 선물가게, 그리고 다양한 각도의 전망대가 있는데, 아래를 보면 밴프 시가지, 보우 폭포, 그리고 수려한 로키의 산하가 병풍처럼 설퍼 산을 둘러싸고 있다. '설퍼(Sulpher)'란 '유황'이라는 뜻인데 산 기슭에서 유황이 다량 함유된 두 개의 온천, 즉 동굴온천(Cave and Basin)과 밴프 윗동네 온천(upper hot springs)이 발견되자 테라스 산(Terrace Mountain)으로 불리우던 이 산을 1916년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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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퍼산 정상에서 본 곤돌라 터미널 건물과 주변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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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폭포


터미널 건물에서 온통 나무로 만들어진 보도를 걸으면서 북쪽으로 좀 올라가면 설퍼 산의 실질적 정상인 '샌손 꼭대기(Sanson's Peak)'에 도달한다. 예전에 기상관측소로 쓰이던 소박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1896년부터 1932년까지 밴프 공원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일했던 노만 샌손이 밴프 지역의 기상관측을 위해 30년간 매주 이 건물에 가기 위해 꼭대기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그를 기려 이름이 명명된 것이다.


다시 밴프 시가지에 들었다. 내려올 때도 힘들이지 않고 쉽게 내려왔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본 산하가 그냥 비디오 영상처럼 각인된다. 땀 흘리며 고생고생하며 오르내렸다면 풀뿌리, 나뭇가지, 바윗돌, 바람 소리, 새소리 하나하나 모두가 내 정신적, 육체적 감각 인자에 인지되었을 터인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가지 부근의 보우 강(Bow River)가에 선다. 밴프 스프링 호텔 뒤로 흐르는 보우강은 캘거리 시가지까지 이어진다. 대체로 조용하게 흐르는 보우 강에서 유일하게 거센 물살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 보우 폭포(Bow Falls)다. 1954년 로버트 밋첨과 마릴린 몬로가 주연한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의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영화에서 본 급류 폭포는 실제와 사뭇 다르다. 에개개? 이게 그 영화에 나왔던 폭포야? 할 정도로 낙폭이 작다. 할리우드 촬영기사들이 보우 폭포 바로 아래에서 위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기 때문에 실제보다 높게 보였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마치 하늘에서라도 떨어지는 듯한 폭포를 연출할 수 있었을 터인데 당시 기술로서는 강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하여 카메라앵글을 위로 치올려 엄청나게 위험스러운듯한 폭포를 연출하였으니 영화 촬영진들 고생이 많았겠다.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이 흐르고/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내린다./그러나 괴로움에 이어 오는 기쁨을/나는 기억하고 있다./---(중략)---/날이 가고 세월이 가면/가버린 시간도/사랑도 돌아오지 않고/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뽈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중에서)


보우 강가에서 느닷없이 아뽈리네르의 시가 생각난다. 대학 시절, 미팅에서 여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읊어대던 시구가 지금까지 먼지 나는 추억의 창고에서 흘러나온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듯 사람은 세월의 강을 흘러간다. 돌아오지 않는 강. 영화에서는 너무나 강의 흐름이 험하고, 강을 흘러내려가는 동안 도적이나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서 이름 붙여 졌지만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통해 하고, 환희하던 순간들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태평양 연어처럼 다시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제 본분대로 흘러 흘러 영원한 안식의 바다로 가야 새로운 물줄기가 산자락에서, 바위틈에서, 수풀 속에서 이슬방울, 빗방울로 세상에 내려와 실개천이 되고, 강물이 되어 먼저 간 사람들의 뒤를 따라 살 수 있다.


그러하니, 늙어감을 아쉬워하지 말자. 지금 나는 30대, 40대만 된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늙었고, 10대, 20대만 되었으면 하였다. 그런데 캘거리 한인 노인연합회 결성에 참여한 80대분들은 그랬다. 60대만 되도 펄펄 날겠다고.


지금의 흐름을 즐기자. 질풍노도처럼 흐르던 시절 지났으니 서서히 눈에 보이는 영혼의 바다를 향해 다만 느릿느릿 흘러가자.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으리니 오직 괴로움에 이어 오는 기쁨만을 오롯이 즐기며 돌아오지 않는 강을 흘러가자. 보우 강가에서의 상념은 가을 밤처럼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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